‘연세대 에이스’에서 ‘한화 이글스 신인투수’로 거듭난 박윤철.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대학 무대에서부터 ‘독수리의 길’을 걸어온 야구 선수가 있다. ‘독수리 군단’ 연세대 야구부 에이스에서 한화 이글스 신인 투수로 입단한 박윤철의 이야기다.
2015년 연세대에 입학한 박윤철은 2018년 ‘독수리 군단 에이스’로 대학 무대를 평정했다. 박윤철은 최고 구속 147km/h 강속구를 비롯해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자랑하며 ‘대학야구 최고 투수’ 반열에 올랐다. ‘최고 투수’란 평가의 근거는 물론 성적이다.
2018년 19경기에 등판한 박윤철은 총 81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 2.33을 기록했다. 함께 ‘대학 BIG 3’로 거론되던 동아대 이정용(65.1이닝, 평균자책 2.35, LG 트윈스), 영남대 이상동(91.2이닝, 평균자책 2.93, KT 위즈)보다 뛰어난 성적이었다.
하지만 취업의 길은 험난했다. 2018년 9월 1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9 KBO리그 2차 신인지명회의’가 막을 내린 뒤 박윤철의 표정은 씁쓸했다.
이날 박윤철은 10라운드 93순위로 한화의 지명을 받았다. 야구인 대다수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늦은 순번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 ‘어깨 수술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박윤철은 턱걸이로 프로 무대에 입성하게 됐다.
그러나 박윤철에겐 씁쓸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내 박윤철은 “빠른 시간 안에 내 실력을 증명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019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프로무대에서 ‘비상’을 준비하는 박윤철의 이야기를 1월 5일 ‘일요신문’이 들어봤다.
# “예상보다 늦은 지명 순번? ‘겁 없이 도전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 들이겠다.”
‘2019 KBO리그 2차 신인지명회의’에서 10라운드 93순위로 한화의 선택을 받은 박윤철. 사진=연합뉴스
2014년 초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투수로 잠재력을 증명한 서울고 3학년 투수 박윤철은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했다. ‘2015 KBO리그 2차 신인지명회의’였다.
당시 박윤철은 최원태(넥센 히어로즈), 남경호(두산 베어스)와 함께 ‘서울고 트로이카’라 불렸다. 최원태와 남경호가 나란히 1차 지명을 받은 상황에서 박윤철의 상위 라운드 지명 가능성을 의심하는 이는 적었다. 하지만 박윤철의 이름은 예상보다 한참 늦게 호명됐다. 10라운드 103순위, ‘2015 KBO리그 2차 신인지명회의’ 마지막 순번이었다. 결국 박윤철은 연세대학교 진학을 결정하며 4년 후를 기약했다.
4년이 지났다. ‘대학야구 BIG 3’로 진화한 박윤철의 자신감은 충만했다. 하지만 ‘데자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2019 KBO리그 2차 신인지명회의가 반환점을 돈 순간에도 박윤철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5라운드가 지나고부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10라운드가 돼 있었어요.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할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평정심을 되찾았어요. ‘그래. 지명받지 못하더라도 웃는 얼굴로 자리를 지키자’고 결심했습니다.” 박윤철은 깊은 생각에 잠기며 신인지명회의 당일을 회상했다.
지명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던 그때, 한화 이글스 이정훈 스카우트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세대학교 투수 박윤철 지명하겠습니다.”
4년이란 세월을 돌고 돌아 박윤철은 다시 한번 10라운드에서 지명됐다. 전체 93순위였다. 박윤철을 선택한 팀은 4년 전과 똑같았다. 한화였다. 그렇게 ‘연세대 독수리’ 박윤철은 ‘한화 독수리’로 날개를 바꿔 달았다.
비록 예상보다 낮은 순위로 프로 무대에 입성했지만, 박윤철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박윤철은 “늦은 순번에서 뽑혔기 때문에 하루빨리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며 “절실한 마음으로 후회 없이 도전할 것”이란 각오를 전했다. 박윤철은 늦은 순번 지명에 대한 아쉬움까지 떨쳐냈다.
“또다시 10라운드에 지명된 거요? 하늘의 뜻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벼랑 끝에서 겁 없이 도전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늦은 순번에서 지명받았기 때문에 부담이 덜한 장점이 있어요. 한번 ‘10라운더의 반란’을 일으켜보겠습니다.” 루키 박윤철의 당찬 포부다.
# 박윤철의 할머니 사랑 “내 투구 TV로 챙겨보실 88세 할머니께 멋진 투구 선물할 것”
박윤철의 든든한 야구 후원자, 외할머니 국순임 씨(사진 좌측). 사진=본인 제공.
박윤철에겐 야구를 잘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외할머니 국순임 씨(88)의 존재다. 박윤철은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외할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연은 이렇다. 초등학생 박윤철은 외할머니 국 씨의 손에서 자랐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맞벌이 부부’였던 까닭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박윤철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의 맛’에 빠져 버렸다. 박윤철은 또래 친구의 제안으로 우연히 야구공을 쥐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감촉을 잊을 수 없었다. 박윤철은 고민 끝에 “야구 선수를 하고 싶다”는 뜻을 부모님에게 피력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를 반대했다. 야구를 향한 박윤철의 꿈은 무산되는 듯 했다.
며칠 뒤 초등학생 박윤철이 해질녘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주를 기다리던 국 씨는 집을 나섰다. 박윤철을 찾기 위해서였다. 손주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박윤철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공을 던지는 데 여념이 없었다.
국 씨는 야구공을 던지는 박윤철의 ‘행복한 표정’을 발견했다. 이제껏 본 적 없던 생기 넘치는 웃음이었다. 행복한 손주의 표정을 지켜본 국 씨는 박윤철의 부모님을 설득하기로 마음 먹었다.
“윤철이 야구할 수 있게 해줘라.”
국 씨의 단호하고도 간절한 부탁에 부모님은 박윤철의 바람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야구를 즐기던 소년’ 박윤철 앞엔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엔 ‘프로 입성’을 꿈꿀 만한 선수로 성장했다. 그리고 박윤철은 마침내 ‘프로야구 선수’란 꿈을 이뤄냈다.
야구와 함께라면 언제나 즐거웠던 소년 박윤철. 사진=본인 제공
“사실 제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건 할머니 덕분이에요. 여기다 항상 ‘용돈 줄까’라고 물으시며 용돈을 쥐여주시던 할머니의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젠 제가 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려 보답할 차례입니다. 그러려면 제가 야구를 잘해야 해요.” 박윤철은 외할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박윤철의 마음은 급해진다. 해를 거듭할수록 외할머니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박윤철은 “외할머니 건강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멋진 투구를 하는 손주 모습을 TV로 보여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제 박윤철은 ‘10라운더의 반란’에 도전한다. 유쾌한 반란을 꿈꾸는 박윤철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건 외할머니 국순임 씨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동기생이 바라 본 박윤철은? 손톱 깎는 데만 1시간 투자하는 성실한 투수 연세대 야구부에서 활약하는 박윤철의 투구 장면. 사진=본인 제공 연세대 야구부에서 박윤철과 룸메이트였던 동기생 장병화(23)는 “박윤철은 누구보다 경기 준비를 철저히 하는 선수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장병화는 “등판 전날 박윤철은 손톱을 깎는 데만 1시간을 투자한다. 손톱을 깎는 것에 그 정도 정성을 들이는데 다른 부분은 오죽하겠느냐. 야구와 관련해 박윤철은 정말 ‘성실의 아이콘’”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장병화는 “룸메이트로서 내 친구가 프로에서 꼭 성공했으면 한다”는 덕담을 잊지 않았다. 박윤철은 동기생의 갑작스런 칭찬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박윤철은 “내가 좀 예민하다”며 “경기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게끔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윤철은 “프로무대에서도 성실하게 한 발짝씩 전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대학야구 관계자는 “박윤철은 어깨 부상 전력이 있어 드래프트에서 저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윤철은 분명 프로에서 제 몫을 할만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잠재력과 성실성을 고루 갖춘 ‘10라운더’ 박윤철이 과연 KBO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