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다큐멘터리 ‘의렬단의 독립전쟁’ 방송화면 캡처.
# 유관순 세종대왕 장영실 등등, 위인을 다시 만나다
3·1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위인은 유관순 열사다. 꽃다운 나이에 일제의 고문 속에 스러져 간 그의 일대기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다루지 못했다. 유관순의 숭고한 삶을 자칫 잘못 그리면 안 된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영화 ‘강적’ ‘10억’ 등을 연출했던 조민호 감독이 선두에 섰다. 조 감독은 유관순의 삶과 그의 옥중 투쟁을 그린 영화 ‘항거’를 촬영 중이다. 유관순 역은 배우 고아성이 맡았다.
또한 문홍식 감독은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을 조명한 영화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작품은 독립 운동을 펼치는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일제에 맞서다 추방당한 선교사 스코필드의 눈으로 본 당시의 상황을 그린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당시 한국의 모습을 세계에 전한 독일 기자의 눈을 통해 객관적 시선을 전달하려 했듯, ‘꺼지지 않는 불꽃’은 스코필드 선교사와 조선의 독립선언을 전 세계에 알린 외국인 특파원의 시선으로 3·1운동 당시를 전한다.
우리 선조의 앞선 과학기술과 혜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도 올해 관객과 만난다. 그동안 세종대왕과 장영실을 각각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영화나 드라마는 있었지만 두 위인을 투톱으로 전면에 배치한 작품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두 역할은 각각 ‘연기 9단’이라 불리는 한석규와 최민식이 맡는다. 과거 영화 ‘넘버3’, ‘쉬리’ 등에 함께 출연해 ‘대박’을 터뜨렸던 두 사람이 20년 만에 재회한 셈이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하는 세종대왕도 만나 볼 수 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사도’의 각본을 썼던 조철현 감독이 연출하는 ‘나랏말싸미’에서 송강호는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연기한다.
영화 ‘말모이’ 홍보 스틸 컷.
# 역사적 사건에 주목하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우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에 렌즈를 들이민 작품들도 연이어 대중과 만난다. 9일 개봉한 영화 ‘말모이’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민초들의 투쟁을 그린 ‘말모이’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방점을 찍는다. 당시 일제는 일본어 이름을 쓰는 창씨개명을 강요한다. 또한 조선어 말살정책을 펴며 조선어학회 한글학자 33인을 체포하는 횡포를 부린다. 이 중 16명이 수감되고 12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는데, 수감된 한글학자 중 이윤재와 한징은 차가운 감옥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 ‘말모이’는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 분)과 그를 만난 후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뜨고 정환을 도아 전국의 말을 모으는 데 힘을 보탠 판수(유해진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또 한 편의 의미 있는 영화는 ‘살인자의 기억법’과 ‘세븐 데이즈’ 등으로 유명한 원신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전투’다. 이 영화의 뿌리는 대한독립군이 일제에 대항해 첫 승리를 거둔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다. 그 기적을 만든 독립군들의 4일간의 사투를 담은 작품이 ‘전투’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배우 유해진과 류준열이 맡아 각각 칼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독립군 황해철과 남다른 사격 솜씨를 자랑하는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를 연기한다. 공교롭게도 유해진은 두 작품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올해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해이기 때문에 이를 기리는 작품이 다수 제작되고 관객과 만난다”며 “그 의미뿐만 아니라 작품성이 뛰어나기에 송강호, 한석규, 최민식, 유해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참여한 만큼 지난해 주춤했던 한국 영화계가 다시 부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유의미한 다큐멘터리도 풍성
지상파 3사 역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중 도올 김용옥과 배우 유아인이 나란히 등장해 지난 5일 첫 방송된 KBS 지식버라이어티쇼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이목이 쏠린다.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김용옥 유아인이 우리나라 근현대사 100년을 재조명하며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고 세대를 뛰어넘으며 소통하고 교감하는 콘셉트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사진 출처 = KBS 지식버라이어티쇼 ‘도올아인 오방간다’ 홈페이지
MBC 역시 7일 ‘독립원정대의 하루, 살이’를 시작했다. 향후 3주간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메이저리거 출신 박찬호, 배우 김수로와 강한나, 원조 한류돌 김동완, 공찬 등 5인방으로 이뤄진 독립원정대가 중국 상하이부터 중경까지 임시정부의 거점 등을 방문해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 시청자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알기 쉽게 전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MBC는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대표하는 100인의 인물을, 이 시대를 대표하는 셀러브러티 100인의 ‘기록자’를 통해 새롭게 조명하는 ‘3분 캠페인’ 다큐 프로그램인 ‘1919-2019, 기억록’을 7일부터 시작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피겨 여왕 김연아가 첫 주자로 나서 유관순 열사를 재조명했다.
이외에도 SBS는 6일 1930년대 김원봉과 정규 군사조직 조선의용대 등 애국 청년들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의렬단의 독립전쟁’을 송출했다. 비밀스럽게 감춰진 최정예 군사들의 훈련장소인 ‘조선 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호화로운 모습의 의열단 본부 ‘호가화원’이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최초 공개됐고, 김원봉과 의열단은 이곳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 생전 김원봉의 육성을 통해 그들이 그곳에서 그렸던 독립전쟁의 청사진을 들여다보는 기회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