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송파구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총파업 투쟁을 하고 있는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 조합원들. 임준선 기자
노조 조합원들은 아침부터 잠실 학생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이날 파업 참가자는 국민은행 사측 추산 전체직원(1만 7000명)의 3분의 1인 5500명, 노조 추산 9000명으로 집계됐다. 8일 박홍배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10월부터 10차례가 넘는 교섭을 이어왔다. 지난 주말과 오늘 새벽까지 사측은 주요 안건에 별다른 입장 변화 없이 본인들의 입장을 강요하고 있다”며 파업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노사 양측은 전날 밤 늦게까지 성과급·임금피크제·호봉상한제(페이밴드) 등 핵심 쟁점을 놓고 최종협상에 돌입했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사실상 최종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고객 불편을 담보로 무리한 파업을 벌인다는 비판이 나왔다. 구조조정 등 생존권이 달린 문제가 아니라 평균 연봉 9100만 원인 은행원들이 성과급을 더 요구하는 파업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파업 현장에서 만난 국민은행 직원들은 알려진 것처럼 직원들의 처우가 좋지 않다고 반박했다. 30대 행원 이 아무개 씨는 “평균연봉 9100만 원은 억대 연봉을 받는 관리자급 직원들의 연봉도 포함된 것이며 페이밴드 제도 등 젊은 직원들은 업무환경이 그리 좋지 못하다“며 ”파업 찬성률이 96%나 나온 것이 이를 방증하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회사와 노조는 파업 전부터 날카로운 각을 세워왔다. KB국민은행 경영진 54명은 지난 4일 허인 은행장에게 일괄 사직서를 제출했다. 총파업으로 고객 불편과 영업 차질을 빚을 경우 전원 사퇴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이번 임단협 파행과 노사 갈등을 야기시킨 윤종규 회장과 허인 행장은 사의표명은커녕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다”며 “협상 요구에 사측이 전혀 응하지 않고 총파업을 기정사실화해 비상영업대책만 마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노조는 “국민은행 경영진이 각 부점장들에게 통지해 총파업에 참여하는 직원을 인사시스템 근태관리에 ‘파업참가’로 등록하라고 지시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파업에 참가하려는 직원에 인사 불이익을 주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노조는 파업과 별개로 KB국민은행을 부당 노동행위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KB국민은행 측은 “지속적인 영업과 고객 보호를 위해 인력운영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적법하고 정당한 인사권에 따라 수행하는 근태파악 노력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8일 서울 송파구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KB국민은행 총파업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홍배 노조위원장. 임준선 기자
그러나 당초 제기된 우려와 달리 파업이 큰 혼란 없이 마무리되면서, 노조의 협상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파업이 국민적 관심을 모으지도 못했고, 영향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노조 입장에서는 파업이 길어지면 불편함으로 국민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는 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그런데 이번에 파업이 진행돼도 대혼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장기화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총파업 당일 영업점 풍경 “사전 안내, 혼선 없어” 19년 만의 총파업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고객이 불편함을 겪는 등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남일 KB국민은행 영업그룹대표 부행장 등 임원진은 지난 3일 “3000만 고객과 함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리딩뱅크의 위상을 우리 스스로 허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총파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파업 자제를 호소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은 또 지난 8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 지역별 거점점포 선정 및 창구·ATM 수수료 면제 등 고객 피해에 대비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파업으로 인한 고객 불편 최소화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조치를 당부했다. 걱정과 달리 파업 당일은 무척 조용히 지나갔다. 비상경영체제로 거점점포 411곳을 지정했지만 전국 1058개 전 지점이 문을 열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에 위치한 KB국민은행 지점을 둘러봤다. 앞에는 ‘파업으로 업무처리시간이 지연되거나 일부 업무가 제한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영업점 창구 위 몇몇 안내판에는 ’부재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점포 내부는 한산했다. 대기표의 숫자도 3~4명을 유지했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파업 당일 비대면거래는 평소 수준이었다. 지점을 방문한 고객은 사전 안내 덕분인지 평소보다 적었다. 또 파업일이 월요일이나 월말 등 고객이 몰리는 날이 아니어서 큰 혼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 측에 따르면 모바일·인터넷뱅킹 등 비대면거래는 84%에 달한다. ATM 이용까지 더하면 90%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에는 환전 및 대출연장도 모바일이나 전화로 가능하다. 직접 영업점을 찾아 금융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든 영향”이라면서도 “이번은 하루 동안의 파업이었다. 추후 장기 파업으로 돌입하면 영업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