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위 0.1%들이 모여 사는 가상의 주거 단지 ‘SKY 캐슬’, 그곳에 살고 있는 부모들의 입시 전쟁을 다룬 JTBC 드라마 ‘SKY 캐슬’이 화제다. 그 가운데서도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인물은 서울대학교 입학사정관 출신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이다. 이곳 사람들 모두가 김주영에게 쩔쩔 맨다. 부모들은 입시 코디네이터의 관리를 받기 위해 금괴를 갖다 바치거나 무릎을 꿇기도 한다. 의사도 대학교수도 자식 교육 앞에서는 평범한 학부모가 된다.
해당 드라마가 연일 화제가 되자 입시 코디네이터의 존재 여부를 묻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입시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대신 해주는 직업이 있냐는 것이다. 극 중 김주영은 단 2명의 학생을 고등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3년간 완벽하게 책임진다. 목표는 서울의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내신 성적 향상을 위한 유명 강사진을 꾸리고 학생부에 기재할 항목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관리한다. 심지어 학생의 심리상태와 수면환경, 공부방 인테리어까지도 입시 코디네이터의 관리 영역이다.
‘대학 이렇게 가야 한다’ 사진=일요신문DB
업계 전문가들은 ‘입시 코디네이터가 실제로 있다’는 데 동의했다. 한국진로학습코칭협회 이지현 대표는 “드라마에는 재미를 위해 일부 과장된 요소가 있다”면서도 “묘사된 코디네이터의 역할만 따져보면 현실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입시 코디네이터는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들의 진로·진학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입시 코디네이터에도 여러 등급이 있는데 상급 코디네이터일수록 개인별 맞춤 관리를 철저히 한다. 드라마 속 김주영의 경우 서울대 입학사정관 출신의 일류 코디”라고 설명했다.
한때 입시학원 상담실장으로 일했던 박 아무개 씨(55)는 “입시 코디네이터는 대입 전형을 분석해 학생들에게 유리한 틈새 전형을 알려준다. 지원하는 학과에 적합한 소논문 주제나 동아리 활동 심지어 봉사활동 장소와 내용까지도 전부 설계해준다. 학교에선 해주지 않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다들 입시 코디네이터를 찾는다.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이면 엄마들이 유명 입시 코디네이터 한 명을 초빙해 학원을 꾸린다. 편의상 학원이라고 하지만 정식 학원은 아니다. 엄마들이 미리 빌려둔 오피스텔에 입시 코디네이터가 과목별 선생님들을 데려와 수업을 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이동규 입시전문가 역시 “입시 코디네이터의 존재를 묻는 질문부터가 잘못 됐다. ‘입시 코디가 있냐?’가 아니라 ‘왜 있을 수밖에 없냐?’라는 질문이 더 본질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의 말처럼 입시 코디네이터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직업이 아니다. 수험생 자녀가 있거나 그 시절을 보낸 학부모들은 “강남·목동 등 교육특구나 일부 신도시 지역에는 비슷한 일을 하던 사람이 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에는 ‘멘토 선생님’ 내지는 ‘학습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최근에는 ‘입시 컨설턴트’가 그 비슷한 일을 해왔다고 했다.
대치동 일대 학원가. 사진=일요신문DB
실제로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는 ‘학습 매니지먼트’ ‘입시 컨설팅’ 간판을 단 학원이 즐비했다. 대치동 A 학원의 원장은 “드라마 속 입시 코디네이터가 하는 일과 우리 학원의 시스템이 매우 유사하다. 공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관리 받는 것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수강료는 월 110만 원부터 시작했다. 논술이나 면접 준비 등 옵션에 따라 추가금액이 붙는다. 원장은 “드라마에 나온 억대 수강료와 비교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입시 코디네이터와 입시 컨설팅이 대치동 일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도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단기관리를 받는 학생들도 늘었다. ‘SKY 캐슬’의 상류층 사람들처럼 3년짜리 장기관리는 받지 못하더라도 교내 경시대회나 공모전, 수행평가 등의 행사가 있으면 컨설팅 업체를 찾아 도움을 받는 것이다.
마포구에 살고 있는 고2 자녀를 둔 김 아무개 씨(46)는 ‘반짝 상담’을 받는 엄마들이 꽤 많다고 했다. 김 씨는 “지난해 초 지인에게 입시 코디네이터 한 명을 소개 받았다. 코디 비용이 연 2000만 원이더라. 과목을 줄이면 금액이 내려간다고 했지만 절대 낼 수 없는 금액이었다. 대신 100만 원을 내고 교내 과학 탐구대회 준비를 부탁했다. 유독 과학 과목이 약했던 아이가 교내 우수상을 타왔다”고 말했다. 세 달 뒤, 김 씨는 다시 업체를 찾아 150만 원짜리 소논문 첨삭을 부탁했다고 했다.
이들이 단기 상담에 매달리는 이유는 하나다. 현 입시 제도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김 씨는 “수시는 등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점수를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내 아이가 어디쯤 서 있는지 모르니 부모인 나는 ‘뭘 더 해야 하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라는 입시 코디네이터나 컨설팅 학원이 ‘가자’고 하면 가는 거다. 이게 학생부종합전형의 현실”이라며 답답한 상황을 토로했다.
이동규 입시전문가 역시 지금의 대입 전형이 입시 코디네이터를 양산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과거 수능이나 논술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이런 입시 코디가 이 정도로 성행하지는 않았다. 입시 컨설턴트가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으로 어떤 학교에 지원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전문가에게 돈을 쏟으면 성공하는 게임이다. 경기권 대학을 갈 실력의 학생들이 학종으로 서울 중상위권 대학까지도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학종은 빈부차에 따라 학벌의 세습 차이도 격화되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