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인 지난해 초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 열풍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해외의 미투와는 다소 양상이 달랐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스타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카메라 뒤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제작자 등의 거물들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반면 한국에서의 미투는 스타나 유명인이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이번 심석희 선수의 사례는 세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트랙 안에서 경기를 펼치는 유명 선수가 트랙 밖 코치를 가해자로 지목한 사례인 터라 그만큼 화제성도 더욱 컸다.
지난해 한창 연예계 미투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던 당시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만약 미투의 방향이 유명 스타에서 제작진이나 매니저 등으로 확대될 경우 그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유명 연예인이 가해자로 지목되는 분위기인데 이는 개인적인 문제로 한정될 수 있다. 반면 제작진이나 매니저 등 이 바닥에서 소위 힘을 가진 이들이 가해자로 지목될 경우 연예계의 권력구조까지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김기덕 감독을 이런 케이스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는 연예계에서 다소 격리된 독립영화계에 속해 그 파장도 제한적이었다. 그렇지만 대중 연예계로 확대될 경우 연예계가 흔들리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실제로도 유명 연예인이 가해자인 경우보다 연예인이 피해자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코치와 선수의 관계는 연예계에서 신인 연예인(내지는 연예지망생)과 매니저, 연예인과 제작진 등과 유사하다. 여기서 제작진은 감독이나 PD부터 제작자, 작가 등 그 폭도 매우 넓다. 오랜 기간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선수들이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권력구조가 연예계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 게다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동고동락할 수밖에 없는 삶의 패턴 역시 유사하다. 과거 중대형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다 은퇴한 한 연예관계자의 설명이다.
“연예계는 결코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 아니다. 좋은 소속사와 작품을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런 기회는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권력구조는 분명히 존재한다. 무명이나 신인 입장에서 자신을 확실히 띄워줄 매니저나 제작진을 만나면 무조건 그 말을 들어야 한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나쁜 이들은 물론 극소수이겠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구조다. 어쩌면 이런 구조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유혹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예인 지망생이나 무명 연예인이 매니저나 소속사 대표 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건 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곤 하는 것. 그렇지만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연예계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형 연예기획사이거나 연예계와 무관한 무늬만 연예기획사들이다. 연예계 권력구조에 끼지 못하는 이들이 연예 지망생이나 무명 연예인의 절박함을 악용해 그런 일을 벌이는 것. 마치 자신에게 무슨 힘이 있는 양 속여서 벌이는 사기에 가깝다.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배우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한 중견 매니저는 요즘 연예계가 다시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심석희 선수 얘기를 듣고 과연 거기만의 일일까 싶은 안타까움도 든다. 차라리 과거에는 그런 소문이 많았다. 어느 PD는 손이 더럽고, 어떤 감독은 노골적이고 어디 제작사 대표는 술자리가 난잡하다 등의 소문이 있어 피하려 마음먹으면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소문은 거의 없다.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서 소문도 없는 것이라면 좋을 텐데 당했다는 얘기는 종종 들린다. 이젠 겉으로 티 안 나게 조심조심 악행을 저지르는 분위기다. 요즘엔 예전보다 PD나 감독 등의 힘이 약해지고 연예기획사의 힘이 커지면서 우리 쪽(매니저들)에서도 나쁜 짓 하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실 누군가 한 명, 이왕이면 할리우드처럼 스타급 여배우가 미투를 해서 이 바닥이 좀 정화됐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그렇지만 한 번 그런 일이 불거지면 정말 걷잡을 수 없이 미투가 터져 나와 연예계가 와장창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