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사 전경. 고성준 기자
조국 민정수석은 1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개혁은 행정부와 여당이 협력해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고, 사개특위(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국회 구조를 생각할 때 행정부와 여당의 힘으로 부족하다. 국민 여러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조 수석이 전담한 것으로 알려진 검찰개혁을 문 대통령 임기 내에 완수하겠다는 의지였다.
야권은 맹공을 퍼부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게 비서가 할 이야깁니까”라면서 “국회와 협조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국회를 겁박할 생각부터 한다. 국민으로 하여금 국회에 들어와 시위하라는 것인지 문자폭탄이라도 날리라는 것인지 답하길 바란다”고 했다. 여권에서조차 대통령 참모가 SNS를 통해 글을 남겨 이런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조 수석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직접 글을 남긴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여러 분석이 제기됐다. 우선, 특감반 사태로 교체설까지 나돌며 도마에 올랐던 조 수석이 본인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스탠스로 풀이된다. 최근 들어 검찰 내부가 동요하고 있다는 소식이 반영됐을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검찰을 향한 모종의 메시지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권 초 바싹 엎드렸던 검찰의 움직임이 최근 들어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도 빠지고 하니 검찰 특유의 정치 행태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 검찰을 잡지 못하면 정권 후반기, 그리고 정권이 바뀐 다음에 우리가 곤경에 빠질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앞으로 검찰과의 본격적인 기 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조국 수석의 글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검찰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정권 초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현 정권 들어 승승장구하는 일부 검찰 고위직들이 너무 청와대 눈치만 본다”면서 “이번 정부에서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해본 적은 있는지 부끄럽다”고 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도 “명목은 기수와 서열을 파괴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특정 성향 검사들을 우대하기 위한 인사란 지적이 많다. 이들이 득세하면서 검찰은 또다시 권력 아래에 놓이게 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들은 지금의 검찰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 정부가 내걸었던 검찰 독립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는 얘기였다. 검찰총장 출신 법조계 인사는 “문재인 정부는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파격 전진 배치했고,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을 무기로 검찰을 압박했다. 검찰 스스로 정권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셈”이라면서 “적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사들이랑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는데, 이번 정부에선 이마저도 없었다. 적폐로 내몰린 많은 검사들의 불만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찰 내엔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인사와 수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수사가 대표적 사례다. 검찰 최정예조직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대거 동원해 사법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들린다. 사법부 재판거래와 같은 핵심 사안을 도려내는 식이 아닌, 저인망식 기법을 동원해 사법부 망신주기를 했다는 게 골자다. 물론 그 기저엔 검찰 수뇌부가 청와대 뜻대로 움직였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걱정이 많다. 앞으로 재판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 판사들도 보다 엄격한 잣대로 재판을 진행하지 않겠느냐. 검찰을 겨냥한 사법부의 은밀한 반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검찰청 또 다른 검사는 “전직 대법원장까지 소환한 검찰 수사가 과연 재판에서 얼마나 실적을 거둘지 의문이다. 판사들이 쉽게 검찰 손을 들어주진 않을 것이다. 검찰이 사법 농단 관련 재판에서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그 후유증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전직 특감반원 김태우 수사관을 놓고서도 청와대와 검찰 간 온도차가 감지된다. ‘김태우 개인 일탈’이라고 규정한 청와대의 강경한 스탠스에 비해 검찰 내에선 동정론까지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김태우가 일 년 넘게 청와대 직속상관들 뜻을 거슬러 첩보를 만들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청와대는 6급 수사관에게 모든 것을 떠 넘겼고, 이제는 검찰이 강력하게 사법처리를 해 주길 바란다. 누구 말이 맞을지 좀 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서 ‘김태우 폭로’가 향후 청와대 뜻과는 달리 의외의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검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 친문 의원은 “김태우가 친정인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새로운 내용을 연이어 공개하고 있다. 검찰을 확실히 컨트롤하지 못 하면 김태우 건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보통 정권 후반기에 나타나던 검찰의 ‘마이 웨이’가 문재인 정부에선 보다 빨리 시작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 여권 실세들을 겨냥하곤 했다. 이 중 대부분은 새롭게 포착한 것이 아닌, 원래 검찰이 갖고 있던 파일에서 비롯됐다. 즉, 검찰이 수사를 할 ‘때’를 기다렸다는 얘기다. 이는 대통령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역대 대통령들이 검찰 장악에 공을 들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 동향에 민감한 검찰은 ‘힘이 빠진’ 정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친문 인사들이 검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배경이다.
실제 검찰은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여러 건에 대해 자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든 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지지부진하긴 하지만 가상화폐 수사엔 여러 친문 정치인들 이름이 오르내린다. 현 정권 역점 사업 중 하나인 태양광과 관련해서는 현직 장관과 정권 실세 간 커넥션 의혹이 담긴 첩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정권 고위직 인사가 특정 건설업체로부터 ‘스폰’을 받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지는데, 검찰 안팎에선 이 사건이 대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까지 나온다.
그러나 정권을 향한 검찰의 비토 기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검찰 내부적으론 불만이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문 대통령 임기가 아직 3년 이상 남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목소리를 내기엔 이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 정치 구도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그리고 ‘미래 권력’에 굳이 칼을 들이대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