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부산·울산·경남은 전통적으로 보수당 강세 지역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부산(38.71%)과 울산(38.14%)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전국 득표율 41.08%엔 못 미치지만 한국당 텃밭에서 거둔 결과라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경남 전체 득표율도 36.73%로 이 지역 1위 홍준표 후보(37.24%)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사실상 부울경에서 문 대통령이 승리한 셈이다.
이 기세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로 이어졌다. 민주당은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지사를 싹쓸이했다. 참여정부 장관 출신 오거돈 부산시장, ‘문재인의 친구’를 전면에 내걸었던 송철호 울산시장, ‘친문 핵심’ 김경수 경남지사가 승리했다. 김 지사는 ‘드루킹’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후보를 10%p 차로 이겼다. ‘문재인 프리미엄’ 덕분이라는 게 공통된 반응이었다. 지방선거 당시 문 대통령 지지율은 70% 중반이었다.
부울경 압승으로 민주당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장기 집권론’이 수면 위로 급부상한 것도 이 무렵이다. 보수진영 세가 공고한 TK(대구·경북) 고립을 골자로 하는 민주당 장기 집권 플랜이 떠올랐다. PK에서의 지방선거 승리가 원동력이었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1위를 한 이해찬 대표는 이를 공식화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만큼 민주당엔 자신감이 흘렀다. 한 민주당 친문 의원은 사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 총선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이런 추세라면 민주당이 과반 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민주당이 독주하고, 나머지 당이 나눠 먹는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비례대표식 연동형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흐름은 PK 탈환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안다. 그만큼 PK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그런데 하반기부터 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했다. 특히 PK에서의 하락세가 도드라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해 마지막 발표한 지지율 조사에서 ‘문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는 38.1%를 기록했다. 전국 최저치였다. 반면, 부정평가는 60.5%였다. 지난해 1월 리얼미터 첫 번째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PK 지지율은 65.5%(부정평가 28.2%)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확인).
PK의 돌아선 민심은 여권을 당혹케 했다. 장기 집권은커녕 다음 총선도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전략통’으로 꼽히는 민주당 관계자는 “현지를 돌아다녀보면 여론이 싸늘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PK 의원들이 ‘제발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지지율보다 체감하는 여론은 더 차가운 것 같다. 30%대 지지율 벽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들은 PK 기반 산업인 조선과 자동차부품 등의 침체로 경제 여건이 악화된 게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본다. 여기에 PK 역차별론까지 확산되면서 여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부산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사업가는 “경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니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PK가 홀대를 받고 있다는 지적은 정말 화가 난다. 부산 출신 대통령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연말 정국 당시 여권 스탠스는 이런 기류를 그대로 반영한다. PK 현안 사업을 위한 예산은 거의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거나 증액됐는데, 여기엔 민주당 지도부의 각별한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김경수 경남지사와 오거돈 부산시장이 공을 많이 들인 것도 있지만, PK만큼은 (예산을) 사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면서 “PK 사업에 많은 예산이 들어갈 예정이다. 돈이 풀리면 지지율도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12월 13일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5개 부처 장관, 민주당 원내대표 등 당정청 고위인사가 경남도청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 보고회에 참석해 지역 정가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역 경제 투어의 일환이었지만 이러한 규모는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PK에서의 위기감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지역 한 언론인은 “김경수 지사가 실세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동시에 현 정권이 PK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장면”이라고 귀띔했다.
당청은 PK 공략을 위해 ‘경제 살리기’에 올인한다는 계획이다. 이 지역 주민들의 숙원 사업도 최대한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여권 일각에선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얘기가 새어나온다. 논란 끝에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를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동안 여권의 PK 인사들은 부산 가덕도를 신공항 입지로 주장해 왔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1월 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해 신공항 건설의 백지화를 관철시키고 제3의 지대에 800만 부·울·경이 염원하는 동남권 관문공항을 반드시 이루어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TK 여야 인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설 조짐을 보이면서 신공항 문제는 올해 정치권의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PK를 어렵게 탈환했는데 다시 뺏길 순 없다. 총선은 물론 다음 대선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당을 필두로 여권 전체가 가장 공을 들여야 할 곳”이라면서 “올해 PK 민심을 되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도 “문 대통령도 PK 지지율 하락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PK 현안들을 직접 꼼꼼하게 챙길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