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사진=호반그룹
김 회장은 두 아들을 10대 후반의 나이에 최대주주로 하는 계열사들을 설립해 내부거래를 통해 급성장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석연찮게 사명 바꾸기가 반복됐다. 그 시점이 공교롭게도 일치하고 내부거래 비율이나 고배당 등 논란이 증폭된 시기에 집중돼 사명 변경으로 ‘물타기’ 시도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김 회장의 장남 김대헌 부사장은 최대주주였던 ㈜호반이 지난해 12월 호반건설과 합병하면서 통합 호반건설 지분 51.42%를 보유하게 됐다. 김 부사장은 이번 합병에 따라 호반그룹 지주회사격인 통합 호반건설을 지배해 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호반그룹 총수일가 중 통합 호반건설 사내이사 지위를 김대헌 부사장이 거머쥐면서 그에게로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김 부사장의 부모인 김 회장은 지난해 8월에 사내이사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2월에 복귀했고, 어머니 우현희 태성문화재단 이사장은 같은해 12월 호반건설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1988년생인 김대헌 부사장은 지난 2011년 6월 23세에 ㈜호반(당시 비오토)에 입사해 불과 7년 만에 그룹 승계를 위한 작업을 마무리했다. 다만 김 부사장이 경영수업을 마무리할때까지는 김 회장이 통합 호반건설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사장이 호반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역할을 한 주역은 단연 ㈜호반이다. 호반건설과 합병하면서 법인이 소멸한 ㈜호반은 2003년 비오토란 이름으로 설립돼 2013년 호반비오토, 2015년 호반건설주택을 거쳐 지난해 7월 ㈜호반으로 세 차례 사명을 바꾸었다. 호반그룹에는 지주회사 역할을 해오다 2012년 호반건설에 합병돼 소멸된 호반이 있었지만 ㈜호반은 이 회사와 다른 회사다.
주목할 점은 이 회사 사명의 변천 과정이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 비율은 2008년 38.6%에 그쳤으나 그룹 계열사들의 일감몰아주기에 힘입어 2009년 71.7%, 2010년 99.4%, 2011년 88.3%, 2012년 96.3%로 치솟았다. 이 기간 이 회사는 자회사를 하나 둘씩 늘려가며 덩치를 키웠고, 자회사들도 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으며 급속하게 성장해 갔다.
하지만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일감몰아주기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호반그룹은 이 회사의 내부거래 비율을 낮춰야 하는 과제에 당면했다. 이 회사는 당시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자회사인 호반씨엠과 에이치비자산관리를 흡수합병했다. 그러면서 사명도 비오토에서 호반비오토로 바꾸었다.
2014년 자회사들을 합병하면서 내부거래 비율은 8.6%로 떨어졌으나 2015년 39.4%, 2016년 43.6%로 다시 치솟았고 2017년엔 35.04%를 기록했다. 호반비오토에서 호반건설주택으로 사명을 바꾼 2015년은 바로 이 회사 내부거래 비율이 다시 급증하던 시점이었다. 호반건설과의 합병 작업이 본격화된 지난해 호반건설주택은 ㈜호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호반은 10년 사이 무려 157배나 매출이 급성장했다. 여기엔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물량 지원이 있었다. 이미 호반건설이라는 회사가 있음에도 이 회사를 몰아주는 식이었다. 이 회사의 2008년 매출은 166억 원에 불과했으나 2015년 연결기준 매출은 1조 2194억 원을 거두며 그해 호반건설 매출(1조 1593억 원)을 추월했다. 2017년 매출은 2조 6158억 원으로 호반건설(1조 3103억 원)에 비해 2배나 많아졌다.
㈜호반이 호반건설과의 합병에서 유리한 조건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호반건설과 ㈜호반의 합병비율은 1대 5.8875012로 확정됐다. 6배 가까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합병 당시 ㈜호반 지분 85.7%를 보유한 최대주주 김 부사장은 비율에 따라 통합 호반건설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하게 됐다.
김 부사장의 통합 호반건설 주식 취득 사유는 상속이 아닌 합병임에 따라 그는 투자 비용 없이 그룹을 승계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세율이 적용돼 부과되는 상속·증여세 부담까지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통합 호반건설은 올해 상반기 중 기업공개(IPO·상장)를 추진하고 있다. 합병에 따라 매출 4조 원에 달하는 시공능력평가 순위 10위의 대형건설사로 성장한 호반건설이 상장할 경우 김대헌 부사장의 지분가치는 급등할 전망이다. 김 부사장이 땅 짚고 헤엄치는 방식으로 그룹을 소유하고 상장 실익까지 보게 됐다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김상열 회장은 올해 27세인 차남 김민성 기타 비상무이사가 최대주주인 호반산업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타 비상무이사란 비상근 이사 중에서 사외이사를 제외한 임원을 말한다. 김민성 비상무이사는 2017년 10월 등기됐고 형인 김대헌 부사장처럼 10대 후반부터 회사 최대주주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강남구 호반건설 본사. 사진=일요신문DB
호반산업은 ㈜호반과 사명을 바꾼 횟수와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2010년 베르디움건설이란 이름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2013년 호반티에스, 2015년에 호반건설산업으로 바뀐 후 지난해 8월 현재의 사명인 호반산업으로 변경됐다.
베르디움건설에서 호반티에스로 이름을 바꾼 2013년은 일감몰아주기가 화두로 떠오른 해였다. 호반건설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한 2015년은 당시 22세의 나이로 어떠한 직책도 없었던 김민성 이사가 90% 지분을 보유한 호반티에스가 385억 원이란 고 배당금을 수령한 사실이 공시되던 시점에서 이뤄졌다.
호반티에스는 2014년 결산에 따라 완전 자회사 4곳으로부터 순이익의 57%에서 많게는 순이익의 91%까지 385억 원의 배당금을 수령했다. 자회사 4곳 모두 그룹과 내부거래를 통해 흑자를 낸 회사였다.
김 이사는 줄곧 90% 지분을 보유하다가 호반건설산업이 자회사 등과 합병 등에 따라 2017년 72.37%로 지분율이 낮아졌고 지난해 초 41.99%로 내려갔다. 이 회사는 지난해 8월부터 호반산업으로 사명을 바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회사는 ㈜호반과 마찬가지로 내부거래로 급성장했다. 2017년 창사 7년 만에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 1908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8918억 원에 비해 33%나 성장한 규모다. 2018년 시공능력평가에서도 호반산업은 33위를 기록하면서 전년 131위에 비해 무려 100계단이나 상승했다.
김상열 회장은 차남 김민성 이사가 최대주주인 호반산업에 대해 2015년부터 그룹 차원의 지원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호반산업은 2015년 내부거래 비율이 매출의 7.1%에 그쳤지만 2016년 44.3%에 이어 2017년 49.3%로 급증했다.
호반그룹 내에서 잦은 사명변경은 ㈜호반이나 호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룹의 모태인 호반건설의 시초는 1996년 설립된 현대파이낸스였다. 1997년 현대여신금융에서 1999년 신화개발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어 2000년 호반건설산업으로 바꾸며 호반이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2006년 호반건설이 됐다.
호반그룹은 2017년 자산총액 8조 원을 넘기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공시 의무대상인 ‘대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정위의 감시가 강화된 만큼 호반그룹은 내부거래 비율을 줄이기 위해 그룹 내 법인간 합병, 모회사의 자회사 흡수합병 방식을 앞으로도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10년 안팎의 세월에 사명을 서너 차례나 변경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고객은 물론 업무차원에서도 혼동을 일으키기 쉬워 사명을 바꾸는 것은 매우 신중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결정한다”며 “논란이 있었을 때마다 사명을 바꿨다는 것은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차원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호반건설 관계자는 “내부거래 비율이 높았던 이유는 대형 건설사들과 경쟁을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자회사를 통해 아파트 용지를 입찰 받아 다른 계열사에 시공을 맡기는 방식을 적용해 왔기 때문”이라며 “호반건설주택과 호반건설산업이 지난해 사명을 바꾼 것은 그룹의 모태인 호반건설과 사명 혼동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