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의 기원은 정확치 않으나 우리 역사와 함께한 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쌀이나 찹쌀로 빚어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타민B 등 영양성분도 많다. | ||
어젯밤 갈 길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본
사람에게만
보였던 눈송이 때문만은 아니다
문득 혼자라고 느낄 때
좀체로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
사람과 사람들 사이 내가
한 사발의 막걸리로 놓여져
오도마니
훈훈한 마음이 되고 싶다
-윤성택의 시‘막걸리 한잔’에서-
요즘이야‘술’하면 소주나 맥주를 연상할지 몰라도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의 대표적인 술은 역시 막걸리다. 역사가 가장 오래됐고 전국 방방곡곡 어디서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겨온 술이기 때문이리라.
‘막 거른 술’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막걸리는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하며, 6�7도로 알코올 성분이 적은 술이다. 탁주(濁酒), 농주(農酒),재주(滓酒), 회주(灰酒), 백주(白酒), 박주(薄酒)라고도 했다. 또 막걸리를 맑게 거르면 청주, 약주가 되고 막걸리의 위에 뜬 맑은 부분을 떠 밥알을 띄우면 동동주가 된다.
막걸리의 기원은 정확치 않지만 우리 역사와 함께하는 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군신화에도 햇곡으로 빚은 제주를 신농주(神農酒)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가하면 삼국시대 전인 마한의 풍습으로 5월 밭갈이할 때와 9월 농사를 거둘 때면 하늘에 제사하고 주야로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마시던 술이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가 아닐까 추측되고 있다. 일제시대에 쓰여진 <조선양조사>에는 막걸리가 중국에서 누룩과 함께 전래됐으며‘대동강 일대에서 빚기 시작해 국토의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 민족의 고유주가 되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진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고문헌에 막걸리가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다. 당시 배꽃이 필 무렵 쌀과 누룩으로 이화주(�花酒)를 만들어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막걸리는 주로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을 찐 다음 수분을 건조시켜 지에밥을 만든 후 여기에 누룩과 물을 섞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켜 그대로 걸러 짜내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막걸리는 단맛(甘) 신맛(酸) 매운맛(辛) 쓴맛(苦) 떫은맛(澁) 등이 잘 어우러지고 적당히 감칠맛과 청량감이 있어야 좋은 막걸리라 했다. 쌀이나 찹쌀로 빚어진 막걸리는 다른 술과 달리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타민B 등 영양성분이 많다. 술이면서도 취기가 심하지 않고, 음식처럼 허기를 면해주고, 힘 빠졌을 때 기운을 돋워주며, 여럿이 더불어 마시면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등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해서 5덕주로도 알려져 있다.
▲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 <주사건배(酒肆擧盃)>, 28.2x35.2cm. 주사건배란 술판이 벌어지고, 잔을 들어올린다는 뜻. 1805년 이후 작품으로 추정되며 종이에 담채. 사진제공=간송미술관 | ||
막걸리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장면이 바쁜 농사철 농부들이 들판에서 새참을 들며 마시는 모습이다. 이 막걸리 한잔이 농부들의 땀을 시원하게 씻어 주고 새로운 힘을 솟게 해주었다. 또한 도시 뒷골목 허름한 술집에서 김치찌개나 파전과 함께 마시던 막걸리는 노동자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달래준 서민주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막걸리의 흰빛에 한국인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근대 수난사와도 그 궤를 같이한다. 일제 때는 주세령과 자가 양조 금지 등의 조치로 탄압으로 받는가 하면 해방 후에도 식량난 때문에 쌀을 원료로 쓰지 못하게 금지돼 소주 등에 민족 대표주의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쌀막걸리의 부활로 막걸리는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각종 과학적 연구도 진행돼 그 질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막걸리 종류에는 재료에 따라 쌀막걸리, 찹쌀막걸리, 밀막걸리, 옥수수막걸리, 좁쌀막걸리 등이 있으며, 첨가하는 것에 따라 인삼막걸리 밤막걸리 녹차막걸리 잣막걸리 등도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막걸리는 지역마다 양조 방법이나 맛이 독특한데 그 중에서도 경기도 포천 이동막걸리와 부산 금정 산성막걸리가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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