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멘’의 동물원 장면.
촬영 전에 비행기에 벼락이 떨어지고 폭탄 테러가 터지고 자동차 사고가 일어났다면, ‘오멘’ 현장에선 천재지변 대신 동물들이 악마의 대리자가 되었다. 이 영화엔 유독 동물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 중 한 장면이 묘지 신이었다. 아들 데미언(하비 스펜스 스티븐스 분)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는 아버지 로버트 쏜(그레고리 펙 분)은 뭔가 낌새를 채고 데미언의 주변을 추적하는 사진기자 제닝스(데이비드 워너 분)와 함께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 여기서 로버트 쏜과 제닝스는 묘지에서 개들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개는 맹견으로 분류되는 로트와일러였는데, 이 개들은 갑자기 현장에서 트레이너를 공격해 분위기를 긴장시켰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닝스의 대역이었던 스턴트맨 테리 월시는 만반의 준비를 하며 완벽한 보호 장비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로트와일러 떼의 공격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어 결국 입원해야 했다.
그러나 동물원 사파리 장면의 악몽에 비하면, 월시의 부상은 경미한 수준이었다. ‘오멘’에서 데미언은 엄마 캐서린(리 레믹 분)과 함께 동물원에 간다. 그곳은 단지 동물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자동차를 몰고 야생동물의 사파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먼저 들른 곳은 기린 우리. 하지만 기린들은 데미언을 보고 황급히 도망가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개코원숭이들이 있는 곳을 사파리로 구경하는 장면이었다. 수많은 원숭이들이 있는 곳에 자동차들이 들어서면 원숭이들이 미쳐 날뛰는 장면이었다. 영화를 보면 이 장면에서 원숭이들이 캐서린과 데미언이 탄 차를 에워싸고 유리를 두들기고 보닛과 지붕 위에 올라타며, 마치 습격이라도 하듯 달려든다. 이 장면은 결코 트레이너에 의한 연출이 아니었고, 카메라에 포착된 배우들의 공포에 질린 모습은 실화였다.
영화 ‘오멘’의 난간 장면.
사실 이날 촬영은 여기서 멈춰야 했다. 이날 동물원 장면의 하이라이트는 호랑이 신이었다. 그러나 촬영이 이뤄지는 동안 이상하게도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극도의 흥분 상태였고, 맹수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급기야 시드니 뱀포드라는 22세의 사육사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일이 알려지자 영국의 언론들은 저주받은 영화라며 연일 기사를 쏟아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배우들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캐서린 역의 리 레믹은 극도로 공포에 떨었다. 영화엔 데미언이 2층 복도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캐서린을 밀어, 그녀가 난간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는 장면이 있었다. 리 레믹의 몸에 와이어를 장치하고 아래에 스태프가 든든히 떠받치며, 결정적인 추락 부분은 스턴트가 찍기로 했음에도, 리 레믹은 촬영을 거부해서 앵글을 수정해야 했다. 엔딩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시나리오엔 아버지 로버트 쏜이 데미언을 죽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레고리 펙은 거부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3개월 전 아들이 자살하는 일을 경험한 그는 비록 적그리스도 캐릭터라지만 어린 아들을 죽이는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이런 결말이 어쩌면 불러올지도 모를 재앙이 두려웠다. 고심 끝에 결국 작가와 감독은 아버지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설정으로 바꾸었다.
영화 ‘오멘’ 스틸 컷.
숱한 액땜 때문이었을까? 1976년 6월 6일 영국 런던에서 개봉된 ‘오멘’은 전 세계에서 1억 달러 넘는 매출을 올리는 흥행을 기록했다. 만약 여기서 끝났다면 ‘오멘의 저주’는 그래도 해피엔드에서 끝난, 그나마 다행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봉 후에도 사건은 일어났다. ‘오멘’의 스태프 중 일부는 당시 유럽에서 있었던 전쟁 대작인 ‘머나먼 다리’(1977) 현장으로 건너갔다. 그 중 한 명이 스턴트맨인 알프 조인트였다. 007 시리즈에서 숀 코너리의 대역이었던 그는 베테랑 스턴트맨. ‘머나먼 다리’ 현장에서 10여 미터 떨어지는 추락 신을 찍었는데, 밑에 에어백이 있었음에도 마치 가시덤불 위에 떨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껴 결국은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로 가야 했다.
특수효과 전문가 존 리처드슨.
이후 2006년에 리메이크 ‘오멘’이 나왔을 때도 신부로 등장하는 피트 포슬스웨이트의 형이 사망하고, 로버트 쏜 역의 리브 슈라이브가 현장에서 조명기가 폭발하는 사고로 부상을 입기도 하지만 원작이 지닌 ‘저주의 아우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멘’에서 악마 소년 데미언 역을 맡았던 하비 스펜서 스티븐스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배우 생활을 일찌감치 접고 부동산 개발업을 하던 그는 2017년에 폭력 사건을 일으켜 1년 징역형에 2년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재활원에 들어가 정신 치료를 받으며 15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이행 중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