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암사역 칼부림’ 사건의 두 주인공은 범행을 공모한 친구 사이였다. 이들은 앞서 13일 오전 4시 30분쯤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의 한 상점과 주차장 요금계산소에 침입해 약 4만 원을 훔쳤으나 곧 경찰에 발각됐다. 먼저 경찰에 붙잡힌 것은 B 군(18)이었다. B 군은 경찰조사에서 A 군과의 공모 사실을 털어놓았고 이에 분노한 A 군과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13일 칼부림이 발생한 암사역 3번 출구 앞. 사진=최희주 기자
13일 저녁 7시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들의 싸움은 A 군이 흉기를 꺼내 들면서 칼부림으로 번졌다. B 군과의 몸싸움에서 시종일관 밀리던 A 군은 평소 소지하던 15cm 길이의 문구용 칼로 B 군의 허벅다리를 찔렀다. 옆에서 B 군의 어머니가 애타게 말렸지만 A 군은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A 군은 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거치대에 세워진 자전거를 경찰 쪽으로 던지는 시늉을 취하기도 했다. 이 장면을 담은 영상이 13일 밤 유튜브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사람들은 A 군의 안하무인격 행동에 경악했다.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결과 A 군은 일정한 주거지 없이 이곳 저곳을 전전하던 가출 청소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기도 지역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A 군은 고교 1학년 때 자퇴를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A 군을 봐온 지인은 “A 군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결석하는 날이 많았고 결국 A 군의 어머니가 자퇴처리를 했다. 지난해 8월~9월쯤부터는 아예 집을 나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집을 나온 A 군은 서울과 경기 지역의 청소년 쉼터에서 떠돌이 생활을 이어왔다. A 군의 한 동창생은 “A 군은 주로 일시쉼터나 단기쉼터에 머물렀고 입소 기간이 지나면 다른 쉼터로 옮겨 가곤 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는 크게 일시쉼터, 단기쉼터, 중장기쉼터로 나뉜다. 일시쉼터는 24시간에서 최장 1주일, 단기쉼터는 최장 6개월, 중장기 쉼터는 2년 내외로 머무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A 군은 짧게는 1주일 길게는 월 단위로 거주지를 바꿔가며 생활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A 군이 가벼운 지적장애도 앓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A 군의 지인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A 군이 남들보다 정신연령이 조금 떨어진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도움반(특수학급)에 배정을 받았다. 도움이 필요한 아인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A 군의 동창생 역시 복지카드를 언급하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A 군은)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복지카드도 있다. 남들보다 자제력이 조금 부족했고 화가 나면 잘 참지 못하곤 했다”며 A 군의 상황을 전했다.
문제는 A 군을 맡았던 관련 기관이다. A 군을 보호했던 기관에서 보호청소년에 대한 관리 및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A 군의 지인에 따르면 과거 A 군은 절도 등의 혐의로 붙잡혀 소년법상 보호처분 7호를 받은 이력이 있었다. 7호 처분자는 A 군처럼 지적장애나 정신질환 등을 앓고 있는 소년범으로 현행법상 의료처우 대상자로 분류돼 6개월 내 의료시설에 위탁된다. 관리는 법무부가 맡고 있다. 그런데 A 군은 이미 한 차례 보호관찰 대상자로 지정돼 교정치료를 받았음에도 또 다시 절도와 폭행을 저질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업계 전문가 사이에서는 청소년 교정시설의 관리 감독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교정시설 내 열악한 의료환경과 허술한 사후관리가 오히려 교화 기능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 청소년 전문가는 “이번 사건은 A 군 개인의 일탈에서만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보호소년은 매년 급증하는데 이들에 대한 전문적 치료를 위한 의료시설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지난 10월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소년원을 출소한 청소년들의 재범죄율이 근 3년 동안 증가하고 있다”며 “교화시스템과 보호관찰 사후관리 등의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A 군이 머물렀던 청소년 쉼터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복수의 A 군 지인에 따르면 A 군과 B 군이 인터넷 방송에서 만나 친분을 쌓던 때는 A 군이 쉼터에 있었던 시기였다. 결국 A 군은 칼부림 사건 발생 며칠 전 쉼터를 이탈했다. 여러 쉼터를 돌며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였다. 거리의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쉼터가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의 일탈을 방조한 셈이다.
A 군의 지인은 “A 군의 어머니도 A 군이 쉼터를 떠도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면 부모도 강제로 데려올 수 없다고 들었다. 쉼터에서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만큼 관리도 철저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A 군의 머물렀던 경기 지역의 쉼터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개인정보보호법상 A 군이 이 곳에 있었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밝히며 ”청소년 쉼터는 가출 청소년에게 숙식을 제공할 뿐 법적으로 이들을 묶어둘 강제성은 없다“고 말했다. 관리 감독 부실 의혹에 대해서는 ”그나마 주간에는 교사는 7명 정도 근무하고 있지만 야간에는 당직 교사 2명이 아이들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며 현실적인 한계를 답답해했다.
한편 서울 강동경찰서는 A 군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상해, 특수절도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