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 2017년 초, 전경련은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아 혼란에 빠지면서 ‘회장 구인난’에 시달렸다. 당시 허창수 회장은 “더는 회장직을 연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전경련 회장을 맡을 사람이 마땅치 않자 연임하기로 결정했다. 전경련은 허 회장의 연임을 발표하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 전경련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사태를 가장 잘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허창수 회장이라고 의견이 모아졌다”라며 “허창수 회장은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다”고 전했다.
전경련 회장을 맡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경련이 기업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 중에서 회장을 선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하지만 4대그룹(삼성·현대차·SK·LG)이 전경련을 탈퇴했고, 남은 대기업들 중에서도 전경련과 관련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오는 2월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차기 전경련 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2017년 3월, 전경련은 내부 혁신위원으로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을 선임했다. 이중에서 이웅열 전 회장은 최근 경영 은퇴를 선언해 전경련 회장 취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영주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하기에는 이건산업의 기업 규모가 작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윤 회장은 지난해 말 전경련이 주최한 ‘베트남 국회의장 초청 한·베 비즈니스 오찬’에 참석하는 등 전경련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삼양홀딩스 관계자는 “김윤 회장 개인의 행보는 알기 어렵다”고 전했다.
전경련 부회장단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등이 있다. 그룹 규모로는 뒤처지지 않는 대기업 총수들이지만 전경련 회장 취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조양호 회장과 박삼구 회장은 지난해 사내 갑질 사태와 기내식 대란 사태 등으로 인해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 두산그룹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어 전경련 회장까지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준기 전 회장은 2017년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신동빈 회장과 김승연 회장도 전경련과 관련한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롯데그룹과 한화그룹 관계자 모두 “전경련 회장 관련 이슈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번에도 전경련 회장 적임자가 없으면 허창수 회장의 5연임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전경련 회장 5연임을 한 사람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1977~1987년)뿐이다. 1987년 이후로는 4연임을 한 사람도 허창수 회장이 유일하다. 5연임을 하기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전경련 패싱’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전경련은 외면 받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 2일 주최한 신년회에 전경련은 초대받지 못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0일 주최한 경제단체장 신년간담회에서도 전경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경련 입장에서는 정치권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기에 대관 소통에 능한 인사가 차기 회장을 맡았으면 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4대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마저 전경련을 외면하고 있어 차기 회장 선임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 등이 나온 건 없고 2월 총회에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문재인 정부 경제단체 위상 변화…전경련 ↓ 대한상의 ↑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한국무역협회는 ‘경제 5단체’로 불린다. 이들 각 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위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전경련이 경제 5단체의 맏형 노릇을 해왔지만 전경련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정부는커녕 재계 일부에서도 외면 받는 처지가 됐다. 경총 역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을 반대하면서 한동안 청와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총은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만, 지난해 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손경식 경총 회장을 만나 현안을 논의하는가 하면 손 회장이 올해 청와대 신년회와 더불어민주당 경제단체장 신년간담회에 참석한 것으로 보아 경총이 전경련보다는 정부와의 관계가 좋아 보인다.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과 박성택 중기중앙회장도 청와대 신년회에 참석하면서 정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위상이 높아진 경제 단체로 평가받는다. 지난 15일, 문 대통령 초청으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가한 기업인 명단도 대한상의가 발표했다. 시민단체가 경제 단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정부와 비슷해 보인다. 지난해 6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전경련 측 인사를 만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대한상의, 경총 등 기업들을 대변하는 단체들이 얼마든지 있다”며 “정부가 무엇이 아쉬워서 전경련을 만나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재계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는 정부의 의지가 없는 이상 전경련이 자생적으로 살아나긴 쉽지 않아 보인다”라며 “전경련이 정부 방침에 어떻게 협조하느냐에 따라 향후 전경련의 미래가 달려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