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큰 잔치나 장이 서는 날에는 빠짐없이 씨름판이 열렸다. 황소 한 마리를 상으로 주는 것은 우리나라가 농경 사회여서 농삿일을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일요신문 자료사진 | ||
씨름은 원시시대 맹수나 적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생존 기술로서 행해지다 차차 무예로 발전했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나 그나라 특유의 씨름이 존재한다. 일본의 스모나 그리스의 판크라치온, 네덜란드의 보스텔, 러시아의 삼보, 몽골의 부흐, 베트남의 바트, 인도 파키스탄의 크쉬티, 중국의 슈아이쟈오, 세네갈의 란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고유의 씨름은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다. 발을 제외한 몸의 일부가 땅에 먼저 닿은 사람이 지는 경기로 규칙은 복잡하지 않지만 몸 전체의 근육과 기술을 고루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씨름은 한자로 각저(角抵) 각력(角力) 각희(角戱) 상박(相撲) 등의 별칭이 있다. 상박은 일본 스모의 한자 표기이기도 하다.
씨름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는 없지만 4세기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만주의 고구려 고분 각저총 등에 씨름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있어 이미 고구려 때 씨름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쓰인 씨름에 관한 기록은 조선 세종 때 제작된 <고려사>로 고려 충혜왕이 환관들과 씨름을 즐겼다고 전한다. 또한 세종때는 씨름을 장려했으며 무예의 종목에 포함되기도 했다고 하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씨름을 하거나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그림 중에 씨름에 관한 그림이 많아 씨름이 널리 행해진 매우 대중적인 경기였음을 알려준다. 허지만 씨름이 때론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해 조선 시대 한때 이를 금지시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씨름의 종류에는 나이에 따라 어른씨름, 아기씨름, 상씨름, 중씨름, 애기씨름이 있고, 방법에 따라 선씨름, 띠씨름, 바씨름, 왼씨름, 오른씨름 등으로 구분됐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씨름의 규칙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식적인 씨름 경기는 왼씨름을 채택한다.
▲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 | ||
지기, 어깨 넘어 던지기, 자반 뒤지기 등이 있다.
현대의 씨름 대회는 1912년 단성사에서 최초로 열렸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인기 스포츠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1983년 장충체육관에서 제 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리면서다. 이만기 등 실력있는 선수들이 여럿 나오자 씨름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씨름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져 명맥만 유지할 뿐이다. 일본의 스모가 꾸준히 인기를 모으는 것에 비하면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