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을 두고 법원 내에서 나오는 평이다.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의 2심 선고가 끝난 뒤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이대로 소부에서 상고 기각이 되리라고 보는 전망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전원합의체로 사건이 회부되리라는 ‘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 소부에서 전합 회부가 의미하는 바는?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은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에 배당돼 있다. 4명의 대법관으로 이뤄진 소부이지만, 사건의 구체적인 판단을 놓고는 현재 의견이 나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원합의체 회부설이 점점 법조계에서 힘을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춘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최준필 기자
대법원 상고심은 하급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대해 법리 해석과 적용이 적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따지는 법률심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보다는 확정한 사실 관계에 대해 법리가 제대로 적용됐는지를 살펴본다.
4명의 대법관으로 이뤄진 소부에서 대법원장 포함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사건이 넘어간다는 것은, 유무죄가 엇갈릴 여지가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원합의체로 회부되려면 ▲대법관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새로운 판례가 필요한 경우 ▲부에서 재판함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 중에 전원합의체에 가야할 만큼 법률심 기준으로 쟁점이 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판사들은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가 부정한 ‘포괄 현안에 대한 묵시 청탁’에 대한 법리 부분을 단연 꼽는다.
1심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36억 원 상당의 뇌물을 챙긴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뇌물이 아니다’라고 봤다. 승계에 대한 목적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를 근거로 최 씨에게 건네진 지원금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뇌물 목적이 아니었다는 설명이었다. 덕분에 이 부회장을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구치소를 나올 수 있었다.
특히 무죄 부분 중에서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린 말 3마리의 소유권도 쟁점이다. 이재용 부회장 1심 재판부는 최 씨 딸 정유라 씨에게 지원한 말 3마리 소유권이 삼성에서 최 씨 측으로 넘어갔다며 유죄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삼성에 여전히 소유권이 있다”며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1, 2심)과 최순실 씨 재판에서 재판부는 말 부분에 대해 모두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법원 내에서 “워낙 첨예한 사안이고 비슷한 전례가 없어 의견이 나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되고 있다. 일요신문DB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2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재판부 내 판사들끼리 생각이 다르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지 않냐”며 “최고 권력자의 겁박에 따른 강제적인 뇌물공여인지 자발적인 뇌물 상납인지 판단 여부부터, 어디까지가 뇌물에 대한 부분이고 어디까지는 삼성 소유인지 의견이 나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법원에만 25년 이상 몸담은 고위직 판사 역시 “소부에서 의견이 엇갈리면 전원합의체에 가야 하지 않냐”며 “이번 사건의 최순실 씨와 박 전 대통령 등 다양한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납득할 수 있는 재판부 별 다른 판단’들이 많아 대법원에서 한꺼번에 전원합의체에 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 박근혜 재판은 어떻게? 이재용 나비효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지만, 단독적으로 전원합의체로 움직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뇌물을 준 사람(이재용 부회장)과 받은 사람(최순실 씨), 혜택을 주고 뇌물을 받도록 주도한 사람(박근혜 전 대통령)의 각각의 사건도 속속 대법원에 도착해 전원합의체로 넘어갈 준비를 끝냈다.
‘국정농단’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 원을 선고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법원 2부, ‘비선실세’ 최순실씨 상고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같은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에 배당됐다.
다만 시점은 2~3개월 이상 뒤에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 씨와 박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법리 판단을 소부에서 각각 한 뒤 전합 회부에 대한 의견을 모아 한 번에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소식에 정통한 법원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는 5~6월 열릴 가능성이 높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 확보가 용이해진 것도 전합 심리 회부를 늦추는 요인”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대법원은 올해 4월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기한(6개월) 안에 삼성 뇌물사건 상고심을 마무리해야 할 핵심 문제를 제거했다. 공천 개입 사건의 징역 2년형이 확정돼 국정농단 뇌물 사건 상고심 구속기한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박 전 대통령이 풀려날 것을 감안해, 재판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만큼 천천히 재판을 끌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불황 흐름 유리하지만, 함께 판단은 불리”
정경유착인지, 권력자의 강요인지를 따지는 이번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는 이 부회장에게 득이 될까. “확률은 반반”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그리고 이를 따지기 전에 법원과 이 부회장, 박 전 대통령(최순실 씨 포함)의 각각의 이해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592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첫 정식 재판 참석 당시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 공동취재단
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판단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어떤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의 이름으로 권위를 얻곤 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상무의 ‘땅콩회항’ 사건을 비롯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공작사건, 철도노조 파업, 통상임금 사건 등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통상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면 앞선 판단과 다른 결론이 나오곤 했다. 대법원에 근무한 판사는 “전원합의체는 여러 의견이 분분한 사건에 대해 대법관들이 각각 의견을 개진하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라며 “이 부회장 사건 역시 2심 때보다 유죄 영역이 더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 역시 일부 유죄 영역에 대해서 “무죄를 잘못 판단했다”며 법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주변 상황이 이 부회장에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시간은 이 부회장의 편이 아니다. 대법관들이 바뀌면서, 보수 성향에서 진보 성향으로 쏠리는 추세인 점이 대표적이다. 진보 성향의 김상환 신임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현재 전원합의체 내 진보-보수 분포는 8 대 5로 진보 측이 압도하게 됐다. 게다가 2020년 3월에는 이 부회장 사건 주심인 조희대 대법관이 임기 만료로 교체된다. 이후 대법관 인사에서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성향의 대법관이 임명될 확률이 높다.
박 전 대통령의 592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첫 정식재판에 참석한 최순실. 사진공동취재단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검찰 수사도 불리한 변수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승계 작업을 위해 뇌물을 주고 그 대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할 수 있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금융감독원 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송경호 부장검사)가 칼날을 겨누고 있는 만큼, 사건 수사 흐름에 따라 대법원 재판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씨와 함께 사건에 대한 판단을 받는 점도 부담스럽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나 최 씨의 경우 법리도 있지만 국민적인 분노에 대한 처분을 받는 성격이 강하다”며 “박 전 대통령이나 최 씨가 받은 것을 뇌물이라고 판단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이를 건넨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만 ‘뇌물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않냐. 그 빈틈에 대한 명분을 만드는 게 이 부회장 측 변호인들의 역할”이라고 풀이했다.
그런 이 부회장에게 마지막 희망은 대한민국 대표기업의 오너라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원 고위 관계자는 “판사가 경제인, 특히 대기업 오너를 재판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운 게 경제 흐름에 악재가 될까, 내 판단으로 경제가 마이너스가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라며 “삼성이지 않냐, 전원합의체에 간다고 하더라도 대법관들이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