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고성준 기자
유력 대권주자로 성장시킬 수 있는 인물을 너무 일찍 등판시켜 집중포화를 맞게 했다는 것이다. 자칫 유 이사장이 쌓은 대중적 인기와 신선한 이미지를 대선 전에 소모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 인사는 “다음 대선까지 3년 2개월 남았다.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기대감은 잔뜩 높아졌는데 유 이사장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총선도 안 나간다는데 다음 대선까지 국민적 기대감을 이어갈 어떤 복안이 있는 것인지, 혹시 아무 대책도 없이 나온 건 아닌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치와 멀어지겠다며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자진 하차했던 유 이사장은 최근 유튜브 진출을 선언하며 대권 출마설에 휩싸였다.
유튜브 진출은 정치인 필수코스로 인식되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은 우후죽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있다. 민주당 모 인사는 “차기 총선과 대선은 유튜브가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원내대표단과 오찬에서 “유튜브가 중요한 홍보 방안으로 떠오른다”면서 유튜브를 문재인 정부 및 민주당 홍보 방안으로 적극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유 이사장이 유튜브에 진출한 명분은 정부 여당과 관련된 가짜뉴스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정부 여당을 적극 옹호함으로써 오랫동안 민주당을 떠나 있었던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유 이사장은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냈으나 2009년 국민참여당을 창당하며 갈라섰다. 이후 2012년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가 탈당해 최근까지 정의당 소속이었다.
앞서의 여권 인사는 “유 이사장이 문 대통령 임기 반환점도 돌기 전에 등판하는 바람에 대권 출마설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 됐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많이 남았는데 벌써 ‘나 대권 나갈 거요’ 하면 속된 말로 싸가지 없는 것이다. 대권 출마설에 침묵을 지켜도 마찬가지다. 결국 유 이사장에겐 대권 출마설을 부인하는 선택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서 “아무리 본인이 부인해도 대권 출마설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을 거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대선에 출마하면 ‘출마 안한다더니 했다’는 거짓말 공세에 시달리지 않겠나”라고 우려했다.
이 인사는 “(유 이사장은) 소중한 자원인데 너무 무계획적으로 등판시킨 거 아닌가. 특정 정파에 가깝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예전처럼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기도 힘들 거다. 유튜브 활동이 유 이사장에게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 5일 공개된 유 이사장 유튜브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첫 방송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첫 영상은 16일 현재 조회수 264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채널 구독자수는 자유한국당(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의 ‘TV 홍카콜라’를 단숨에 추월했다.
하지만 이후 유 이사장 유튜브 조회수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약 일주일 후 공개된 영상은 조회수가 97만 회에 그쳤다. 물론 일반인들이 제작하는 유튜브 영상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치지만 첫 회와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다. 홍준표 전 대표는 유 이사장 유튜브 활동에 대해 “좌파 유튜버는 한 달 내로 소재가 고갈될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보수 유튜버는 현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다.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반면 유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를 방어하겠다는 거 아니냐. 아무래도 공격적인 방송보단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소재도 한정적이다. 점차 조회수가 하락하는 현상을 막기 힘들 거다. 골수 지지층만 (유튜브 구독자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당직자는 “유 이사장이 (유튜브 외에) 또 다른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차기 대선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기 힘들다. 차라리 방송을 계속 하는 게 지지율 관리에는 더 유리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당직자는 또 “방송인 유시민과 정치인 유시민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완전히 다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부여할 거다. 오랫동안 정치에서 멀어져 있었던 유 이사장이 이를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례로 유 이사장은 최근 한 방송토론에서 최저임금 논란과 관련해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30년 함께 일해 온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해고했다는 기사를 봤다. 아니, 30년을 한 직장에서 데리고 일을 시켰는데 최저임금을 줄 수 있느냐”고 일갈해 화제가 됐다.
방송인 유시민이 한 발언이었다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다음날 주요언론들은 유 이사장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주요언론들은 해당 기업이 베트남, 중국 등과의 경쟁으로 한계 상황에 몰렸다며 유 이사장이 ‘기업 현실을 모른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 이사장도 이런 부분을 가장 걱정했다. 유 이사장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정치를 다시 시작하면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을(乙)이 될 수밖에 없다”며 “선거에 안 나간다”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반면 또 다른 여권 인사는 “대선 임박할 때까지 꽁꽁 감싸고만 있다가 깜짝 데뷔시켜야 한다는 건가. 역대 대선에 그런 방식이 통한 적이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안철수 전 의원, 문국현 한솔섬유 대표 등 수많은 정치권 밖 인사들이 신선함을 무기로 대권에 도전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차라리 매를 맞을 일이 있다면 일찍 맞고 맷집을 기르는 편이 낫다”면서 “실력도 없이 신선한 이미지 하나만으로 대통령이 된다면 유 이사장 본인이나 국민 모두 불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유 이사장은 친근한 연예인 같은 사람이었는데 앞으론 찬반 진영 논리에 얽매일 수밖에 없을 거다. 마니아층은 더 확대되겠지만 반대 세력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유 이사장이 너무 일찍 정치활동을 재개했다고 본다. 내년 총선 끝나고 대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자연스럽게 등판하면 좋았을 텐데 조급했다”고 평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