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연합뉴스
지난 12월 6일 이서현 전 사장이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급변하고 있다. 이 전 사장의 자리를 박철규 부사장이 이어받았고, 박 부사장이 맡던 상품총괄직은 없어졌다. 남성복 1·2사업부를 통합하고, 임원 수를 줄였다. 삼성물산은 이러한 조직개편에 대해 “경영효율화를 위한 조직슬림화”라고 밝혔으나 당시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매각설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인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투자에 비해 시장에서 존재감이 약하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이와 관련해 매각설은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고 말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로서 패션을 담당해오던 이 전 사장의 이동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데다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보니 패션사업 철수설이나 매각설이 다시 불거진 것 같다”고 전했다.
만일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매물로 나온다면 다른 기업에서 충분히 탐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패션사업 시장이 좋지 않고 삼성물산 패션부문 수익성이 악화됐다 하더라도 패션법인으로서 활용도가 높다는 이유에서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무엇보다 발망, 띠어리, 토리버치 등 다수 해외 명품 브랜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또 빈폴, 갤럭시 등 자체 브랜드를 포함하면 30여 개에 달하는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인수하면 단박에 수십 개 브랜드를 확보할 수 있다. 백화점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국내 패션시장은 하나의 브랜드가 독립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유통 대기업이 패션법인을 인수해 키우고 운영하는 형태가 많다”며 “마땅한 패션법인이 없는 대기업이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인수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점쳐지는 곳은 롯데다. ‘유통 빅3’인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중 롯데만 이렇다 할 패션법인을 보유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신세계그룹은 1996년 신세계인터내셔널을 설립해 패션사업을 해오고 있으며, 현대백화점그룹은 2012년 한섬을 인수해 계열사로 두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가 워낙 M&A를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이라 시장에서 그런 말이 떠도는 것 같다”며 “실제로 나온 이야기는 전혀 없으며 롯데그룹도 지난해 6월 패션전문회사 ‘롯데지에프알’을 신설했다”고 전했다.
신세계나 현대백화점 등 패션법인을 두고 있는 기업도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군침을 삼킬 만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삼성물산 자체 브랜드보다 이서현 전 사장의 힘이 발휘된 해외 명품 브랜드 라이선스가 구미에 당길 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통업계 한 고위 인사는 “각 사별로 백화점이나 프리미엄아울렛 등에 관련 브랜드들이 대부분 입점해 있다”며 “이는 유통망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여서 굳이 라이선스까지 인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패션법인을 갖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더 확장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삼성물산 역시 매각설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좀처럼 매각설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는 “삼성 오너 삼남매가 그동안 각자 분야를 맡아왔는데 패션부문을 도맡던 오너가 물러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며 “기업 내에서는 종종 오너가 아예 다른 자리로 옮긴다는 것은 곧 정리 수순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우후죽순 헬스·뷰티숍 ‘고전’ 에뛰드, 스킨푸드 등 중저가 화장품이 각광받던 로드숍 시대가 저물고 떠오른 H&B스토어(헬스앤뷰티샵, 드럭스토어)가 주춤하고 있다. H&B스토어는 화장품과 생필품, 의약품 등을 판매하는 뷰티 편집매장으로 기존 로드숍과 달리 다양한 브랜드를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CJ그룹은 1999년 ‘올리브영’ 1호점을 출점, 가장 선두로 H&B스토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GS리테일의 랄라블라, 롯데그룹의 롭스, 신세계그룹의 부츠 등이 후발주자로 시장에 나섰지만 여전히 올리브영이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H&B스토어 시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업계 2위 랄라블라의 경우 지난해 상호를 바꾸며 새로운 시작을 야심차게 알렸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해에만 매장 15곳이 폐점한 데다 적자가 20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른 H&B스토어의 출점 속도도 더뎌지고 있다. 유통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매장 수도 포화 상태에 접어든 탓이다. 유통채널의 다양화로 과거 고객 유인력이 높았던 해외 화장품 등의 상품들을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의 특장점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H&B스토어들이 저마다 상권분석 및 차별화 전략을 연구하거나 내실 다지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H&B스토어 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업계 전반이 힘든 데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면서도 “다만 화장품의 경우 매장에서 직접 사용해보고 즉석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타 유통부문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