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동 차기 신한은행장은 당분간 위성호 현 은행장과 어색한 동거를 해야 할 처지다. 매년 2월에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를 열어 자회사 최고경영자를 결정해오던 관례와 달리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이번에는 2개월 앞당겨 자회사 최고경영자 인사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1개월가량 인수인계를 진행하면 승계가 마무리됐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현직 행장과 행장 내정자가 3개월 동안 함께 일하게 됐다.
예년보다 빠른 행장 교체로 신한은행 내에 파벌 갈등 조짐을 보인다는 관측이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위 행장과 진 내정자는 같은 회사 소속이면서도 호흡을 맞춘 경험이 거의 없다. 진 내정자가 신한은행의 일본 법인에서 근무하는 동안 위 행장은 신한카드에서 근무했고 위 행장이 신한은행장에 오를 때 진 내정자는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진 내정자는 2017년 1월 신한은행 일본법인장(상무급)에서 부행장보를 거치고 않고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승진한 뒤 2개월여 만에 다시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렇듯 두 사람 사이에 공통분모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신한금융지주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는 지난 12월 21일 진옥동 신한금융 부사장을 차기 신한은행장으로 내정했다. 통상 신한은행장이 ‘2+1년’으로 3년 임기를 채운 것을 고려하면 위 행장이 사실상 ‘퇴출’당한 셈이다. 위 행장의 임기가 3월까지라 자경위가 1월 말께 열릴 것으로 보였으나 예상보다 빠른 교체였다.
업계에서는 임기를 마친 위 행장이 1년간 고문으로 활동한 뒤 차기 회장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신한금융 CEO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위 행장이 차기 회장 후보로 오를 수 있다. 위 행장도 최근 언론에 “앞으로 시간이 있는 만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 행장이 남은 임기 동안 진 내정자가 연착륙하도록 도와 ‘유종의 미’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있다. 차기 지주 회장에 도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굳이 진 내정자와 각을 세우면서 신한금융에 적을 많이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한금융이 올해부터 상무급 이하 임원 인사권을 자회사에 넘기는 등 인사 절차에 변화를 준 점은 행장 교체 시기와 맞물려 혼란을 불러올 요인으로 꼽힌다. 신한은행은 통상 매년 1월과 7월 두 차례 정기인사를 하는데, 이달 말 부서장급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인사규모는 2000~3000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한은행에서 처음 실시되는 자율 인사의 인사 권한은 위성호 현 은행장에게 있다. 아직 임기가 두 달 남짓 남았기 때문이다. 위 행장 입장에선 1년 뒤 회장직에 도전하기 위해 이번 인사에서 자기 세력을 심어 놓을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은 위 행장이 자신의 최대 우호세력인 라응찬 전 회장 계열 인사들을 대거 중용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 한 인사는 “부서장급 인사에 ‘자기사람’과 ‘라인’을 분류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영향이 간다고 하면 다음 행장이 7월 정기인사 때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이 대구은행장을 겸직하려 하면서 DGB금융 내 파벌 싸움 양상이 보이고 있다. 사진은 대구 DGB금융그룹 본사. 연합뉴스.
DGB금융 자회사최고경영자추천후보위원회(자추위)는 지난 11일 김 회장을 대구은행장 후보로 추천했다. DGB금융 자추위는 “대구은행에서 추천한 후보자 2명 등 6~8명의 역량과 은행장으로서 자질을 종합적으로 심의한 결과 채용비리, 비자금, 펀드 손실보전 관련 등으로 마땅한 후보자를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자 대구은행 일부 경영진과 제2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김 회장이 취임 뒤 수차례 강조했던 ‘회장과 행장직 분리’ 약속을 깼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간단하지 않다. 지난해 6월 취임한 김 회장은 2011년 DGB금융그룹 출범 이후 첫 외부 출신 인사다. 1978년 외환은행에 입행, 하나금융지주 최고인사책임자 부사장, 하나은행 고객지원그룹 총괄 부행장, 하나생명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경북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제2노조는 부점장급 이상 직원으로 이뤄진 노조로, 100명도 채 안 된다. 제1노조는 약 2200명이 가입돼 있다.
이번 갈등은 ‘출신 학교’ 파벌 싸움이 발단이 됐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김 회장 취임 이후 지난해 7월 인사에서 물러난 임원 11명 중 9명이 대구상고·영남대 출신이다. 이른바 박인규 전 회장 겸 대구은행장인 ‘박인규 라인’으로 분류된다. 현재 대구은행 임추위에 속해 있는 서균석·김진탁·김용신·이재동 사외이사 모두 박 전 회장 시절 선임됐다. 이재동 이사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영남대 출신이다. 박 전 회장이 심어놓은 인사들이 ‘기득권 지키기’에 들어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여러 은행간 합종연횡이 많았던 은행업의 특성상 일정 수준의 계파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나치게 폐쇄적인 끼리끼리 문화로 변질되는 모습은 조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