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남는 한 가지 궁금증이 있다. 검찰이 2016년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현금 30억 원이다. 2017년 5월에는 재판 증거로 채택되지 못해 바로 소유주에게 반환돼야 했던 30억 원을 검찰이 1년 가까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시 검찰이 이 돈을 반환하지 못한 까닭은 롯데 형제의 난으로 인해 복잡하게 꼬여 있는 실소유 관계 때문이었다. 롯제 ‘형제의 난’의 잔상을 여실히 보여준 30억 원은 과연 누구에게 반환됐을까.
2016년 6월 비자금 조성 등 롯데그룹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벌이던 검찰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신 명예회장 집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금고를 발견했지만 금고는 텅 비어 있었다. 검찰은 이후 롯데 총수 일가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정책본부 비서실 소속 이 아무개 전무를 소환해 그의 처제가 살고 있는 서울 양천구 집에서 금고 안에 들어있던 장부 등 서류더미와 현금 30억 원을 압수했다.
당시 돈의 출처에 대해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돈이 롯데그룹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전무는 2008년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보좌한 ‘신동빈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는 2015년 초 신 명예회장 비서로 자리를 옮기고 경영권 분쟁이 악화된 그해 8월 김성회 당시 신 명예회장 비서실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신 회장이 신 명예회장과 신 전 부회장을 해임하는 등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이 극에 달하자 신 명예회장은 이 전무를 해임했다.
왼쪽부터 신동주, 신격호, 신동빈 3부자.
신 명예회장의 집무실 관리에 나섰던 신 전 부회장은 이 전무에게 금고를 비롯해 신 명예회장의 자금관리 기록을 인계하라고 요구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이 전무가 요청에 답을 주겠다고 했다가 신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신청이 제기돼 인계를 할 수 없다며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신 전 부회장의 금고 인계 요구는 롯데그룹 수뇌부도 알고 있었던 상황이다. 당시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금고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의무)가 있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 측이 비밀금고를 은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신 명예회장 측은 30억 원이 들어있던 금고의 비밀번호조차 몰랐으며, 은닉했다면 이 전무에게 금고 인계 요청을 했겠냐며 등 은닉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후 서서히 잊혀가던 현금 30억 원은 2017년 5월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국정농단 수사와 롯데 경영권 분쟁 및 비자금 의혹에 이어 신 명예회장의 건강 악화로 인한 한정후견 개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롯데 총수 일가의 경영권 다툼 이후 벌어진 검찰 수사에서 압수된 30억 원을 검찰이 1년 가까이 반환하지 못하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비밀금고에서 발견된 돈의 소유권을 두고 롯데 형제는 대립했다. 결국 검찰은 소유권 분쟁 등을 고려해 30억 원을 향후 법원이 신 명예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를 결정한 뒤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뒤 이 전무가 압수된 30억 원을 돌려달라는 의견을 검찰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신 회장 측의 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명예회장과 신 전 부회장 측도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들 세 부자 측은 모두 당시 법원에 압수물 반환 청구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 수상한 돈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게 당시 재판 등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2015년 10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대표, 민유성 SDJ 코퍼레이션 고문,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 연합뉴스
이후 30억 원의 소유권 공방은 2016년부터 불거진 신 명예회장의 성년후견과도 맞물렸다. 대법원은 2016년 8월 서울가정법원이 지정한 사단법인 선을 2017년 6월 한정후견인으로 확정했다. 성년후견은 당사자의 의사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돼 있다고 판단될 때 개시되지만 한정후견은 의사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산권 행사 등 주로 경제 활동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결정된다.
사단법인 선은 법원이 부여한 권한 내에서 신 명예회장의 재산을 관리하고 의료행위나 주거, 거소지 결정 등을 맡는다. 신 전 부회장은 이에 불복해 항고 및 재항고 절차를 밟았지만 한정후견 확정을 막지 못했다. 신 명예회장의 경제 결정권과 30억 원 소유권이 사실상 신 전 부회장에게 멀어졌다.
롯데그룹과 사단법인 선 등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의 30억 원은 2018년 초 한정후견 자격으로 사단법인 선이 검찰로부터 전달 받았다. 사단법인 선은 “통상적으로 한정후견 대상자의 사유재산 등의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신 명예회장의 한정후견으로서 본인은 물론 신 회장 등 가족들과 함께 모든 절차와 결과에 대해 상의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경영권 다툼은 2015년 7월부터 시작됐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1월 한일 롯데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서 전격 해임됐다. 신 전 부회장은 같은 해 7월 27일 신 명예회장을 내세워 신 회장을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하려다 실패했다.
그 뒤 경영권 복귀를 꿈꿨으나 번번이 신 회장에게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신 명예회장이 머물고 있던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이 개보수 공사에 들어가자 형제는 아버지의 거처를 두고도 갈등을 빚었다. 결국 거처 문제도 법원이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줘 신 명예회장은 지난해 1월 잠실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로 거처를 옮겼다.
결국 30억 원은 신 명예회장에게 돌아갔다. 그렇지만 사단법인 선이 한정후견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사실상 신 회장과 롯데그룹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따라서 30억 원의 행방 역시 롯데 형제의 난과 같은 궤적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