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시사하면서 올해 기업 주주총회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진은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
# 국민연금 ‘선전포고’
지난 16일 국회에서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국민연금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원종현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국민연금연구원은 국민연금의 주요 정책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종의 ‘싱크탱크’다.
이날 원 부원장은 한진그룹에 대해 “그동안 대한항공 및 한진칼 이사진은 회사 이미지를 훼손하였고 그 결과 주식 가치가 크게 하락하며 실질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면서 “특히 한진칼 이사회는 자회사인 대한항공에 이사회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주식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하는데 이를 안건으로 하는 이사회조차 개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한항공의 주식 가치 훼손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점도 국민연금 가입자를 분노케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장기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진칼 관련 안건을 지난해 7월에 도입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맡기기로 했다. 박 장관은 “주주권을 발동하면 첫 사례가 되기 때문에 풍부한 자료 위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을 보면 정부 영향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차관 등 당연직위원 6명이 모두 공무원이다. 위촉위원 14인도 사용자 측 추천 3명, 노동조합 측 추천 3명, 농어업인단체 2명, 자영업자 2명, 소비자 및 시민단체 2명, 전문가 2명이다. 단체 추천은 보수와 진보 간 균형을 맞춘 듯 보이지만 전문가 2명은 단체 추천이 아니어서 사실상 위원장의 영향력 아래로 볼 수 있다.
지난해 7월에 도입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역시 정부, 기업·사용자, 근로자, 지역가입자, 연구기관 추천인사로 채워진다. 정부 우위다. 기금위는 수탁자책임위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주주권 행사 이행 여부와 방식을 2월 초까지 결정하기로 했다.
# 한진칼 이사 선임 두고 전투 예고
지난 4일 국민연금은 한진칼 보유 지분이 8.35%에서 7.34%로 낮아졌다고 공시했다. 지배구조펀드인 KCGI가 보유 사실을 공시하기 전인 지난해 10월 말 60여만 주를 매각해서다. KCGI 10.71%, 조양호 회장 측 28.93%다. 외국인 지분율은 6.85%다.
과반을 확보하는 쪽이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다. 조 회장 일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감안하면 개인들이 KCGI 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자투표 의무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들이 얼마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설지 알 수 없다. 관건은 기관투자자다. 이들에 대한 영향력이 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세(勢) 규합에 나설지가 변수다.
# 국민연금, KCGI와 연대할까
어떤 인물을 사외이사로 추천할지 국민연금과 KCGI의 의견이 엇갈릴 가능성이 있다. KCGI는 결국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본이다. 주주가치라는 명분은 같아도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과 이해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KCGI는 지난해 12월 한진칼 지분율을 1.8%포인트 높이면서 상상인저축은행에서 200억 원을 차입했다. 저축은행 주식담보대출은 고금리로 알려졌다.
공적연금이자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나 지배구조 펀드처럼 배당 확대나 자산매각, 합병과 분할 등을 압박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 한진·대한항공에서 대결 가능성은
지난 4일 한진 지분 6.49%를 보유했던 쿼드자산운용이 무려 55만 주 넘게 팔아 치우며 투자를 회수했다. 앞서 조선내화도 보유지분을 KCGI에 넘기며 한진에서 발을 뺐다. KCGI는 한진칼에 이어 한진으로 전선을 확대(8.03%)했지만, 오랜 기간 한진에 발을 담갔던 이들이 떠난 셈이다. 국민연금 지분율은 7.41%다. 한진칼 등 조 회장 측 지분율은 34.6%에 달한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등기임원 임기가 오는 3월 끝난다. 조 회장 측 지분율은 33%에 달하며 국민연금 지분율 11%선이다. 조 회장이 아예 사내이사 후보에 오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사장의 임기는 2021년까지다. 사외이사 중에는 김재일 이사만 임기가 끝난다.
최열희 언론인
전자투표제 의무화 ‘뜨거운 감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와 맞물려 관심을 끄는 주제가 주주총회 전자투표 의무화다. 의결권 과반을 가진 지배주주가 드문 현실에서 누구든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및 소규모 기관의 표결 참여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여권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서 담고 있는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에 전자투표제도가 시행된 이후 전체 상장기업의 약 25%가 전자투표 서비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집계(2018년 3분기 말)됐다. 하지만 전자투표 계약회사 대비 실제 전자투표를 이용한 회사의 비율은 2018년 기준 37.6%에 불과하다. 2017년 57.8%(계약회사 수 1209개, 이용회사 수 699개) 대비 급감했다. 이러한 현상은 전자투표를 채택한 기업에 대해서 섀도보팅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입법 조치 때문이다. 섀도보팅제도(shadow voting, 의결권대리행사제도)는 발행회사의 요청에 따라 예탁결제원이 주주총회 찬반투표 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1년에 도입됐으나 2013년 법 개정을 통해 2018년에 전면 폐지됐다. 결국 폐지된 섀도보팅제도를 계속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전자투표를 택한 곳이 많았던 셈이다. 주주들의 전자투표는 2018년 3월 말 기준 3.9%로 전년 동기 1.8%에서 두 배 이상 증가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공인인증서를 이용하지 않고는 전자투표를 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에 공인인증서 발급이 불가능한 외국인들은 전자투표를 이용할 수 없다. 3월에 무더기로 주총이 벌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소액주주나 소규모 기관투자자, 외국인 등이 의결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 같은 상황은 일본과 비교된다. 일본은 2001년에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한 이래 주주 수가 1000명 이상인 회사는 반드시 서면투표를 도입하도록 의무화했다. 전자투표는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활성화돼 있으며 대부분 개인투자자는 아직까지 서면투표를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4년 2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시작으로 2014년 6월 사외이사의 자격요건 강화와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회사법 개정이 이뤄졌다. 특히 2015년 기업지배구조 코드 시행을 계기로 기관투자자의 전자투표 행사율이 높아져 2018년에는 96.3%에 달한다. 해외 기관투자자의 전자투표 행사율도 82.1%로 높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