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박정훈 기자
1월 15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추가 기소하면서 임 전 차장이 서 의원 등 일부 정치인들로부터 청탁을 받고 재판에 개입했다는 취지로 발표했다. 해당 정치인들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재판 민원’을 부탁했거나 법률자문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추가 기소 내용 등에 따르면 2015년 5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서 의원은 국회 파견 판사인 김 아무개 부장판사에게 강제추행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지인 아들의 죄명을 공연음란죄로 변경하고 벌금형으로의 선처를 부탁했다. 해당 지인은 총선 당시 서 의원의 연락사무소장 등을 역임한 인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서 의원의 ‘재판 민원’을 이메일로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 임 전 차장은 직접 서 의원 지인의 아들 재판 담당 판사에게 선처를 요구하고 행정처 기획총괄 심의관을 통해 담당 판사의 재정합의부장(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거나 쟁점이 복잡한 단독사건을 재배당 받는 합의부)에게도 청탁 취지를 전달했다.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서 의원의 지인 아들은 혐의 변경 없이 벌금 5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서 의원은 “국회에 파견된 판사에게 억울한 사연을 전달했을 뿐 판사를 만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17일 오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서 의원이 원내수석부대표와 운영위원회 등 당직 사퇴를 수용했다고 자체 진화에 나섰다.
전병헌 전 의원의 경우 2015년 4~5월 임 전 차장에게 자신의 동서인 보좌관의 석방을 청탁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에 임 전 차장은 행정처 사법지원실 심의관에게 예상 양형 관련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전 전 의원에게 검토 내용을 설명했다.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2014년 9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해당 보좌관은 2015년 5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전 전 의원은 과거 이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법원행정처에 민원을 넣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1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검찰은 임 전 차장이 당시에 야당 의원이었음에도 이 두 정치인의 재판 청탁에 개입한 까닭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당시 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으며 전 전 의원은 당시 당 법사위 간사였던 전해철 의원과 친분이 두터웠다.
이외에도 검찰은 임 전 차장이 2016년 8~9월 이군현·노철래 전 의원 정치자금법위반 사건의 양형 검토 문건을 작성해 법률자문을 해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이들 두 전 의원이 재판 상황을 파악해 달라고 임 전 차장 등에 청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5월경 법원행정처 기조실 심의관은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법사위 위원 등 접촉 및 설득 전략을 중점적으로 다룬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 전략’ 문건을 작성해 임 전 차장에 보고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국회 파견 판사가 재판 청탁과 민원을 맞바꾸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심리하는 상고심 사건 가운데 비교적 단순한 일반 민·형사 사건을 별도로 맡는 법원을 의미한다. 관련 법안이 2014년 12월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2016년 5월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폐기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통해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사법부에서 대법원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검찰 역시 임 전 차장의 재판개입 배경에 양 전 대법원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 소환조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