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의 태국 출신 멤버 리사(21)가 국내 포털사이트 네이트에서 인종차별 댓글을 받았다는 내용이 태국 방송사를 통해 알려졌다. 사진=ONE21 캡처
같은 태국 출신인 보이그룹 갓세븐의 멤버 뱀뱀도 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부 사람들만 그런 것이고 리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해명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K팝 문화를 다루는 외신과 유튜브 채널 등 해외 SNS에서는 한국 연예계의 인종차별 문제를 계속해서 지적하는 상황이다.
이런 내용이 국내에 역수입되면서 “한국인은 동남아시아에 대한 인종차별을 멈춰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오히려 K팝을 통해 유입된 해외 팬들이 한국에 대한 날조 소문을 유포하거나 K팝 그룹 멤버들의 루머를 퍼뜨리는 식으로 더 심각한 인종차별을 벌이고 있다”며 맞서는 주장도 적지 않다.
문제의 ‘인종차별’ 악플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털사이트 네이트에는 2019 골든디스크 어워즈 레드카펫에 등장한 리사의 기사가 올라 왔다. 기사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베스트 댓글(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에 오른 “화장하면 완전히 러시아 엘프 미녀 느낌인데, 머리 어둡게 하고 화장 지우니 그냥 태국 여자…”라는 댓글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태국 여자’라는 말에 ‘못생긴 여자’라는 뉘앙스를 담음으로써 인종차별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빠르게 인기 기사가 바뀌는 포털사이트의 특성상 이 문제의 기사는 같은 날 골든디스크 어워즈 레드카펫의 다른 연예인 기사에 묻혀 순위권에 남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런데 약 열흘 정도가 지난 뒤 태국 방송 One31과 유튜브 해외 K팝 채널 등을 통해 갑작스럽게 불이 붙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이 기사의 댓글만을 태국어로 번역해 ‘한국의 K팝 커뮤니티 전문 번역 사이트’에 올렸고, “리사가 한국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살이 덧붙여지면서 보도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게 사건의 전말이다.
포털사이트 네이트에 올라온 리사의 기사에 달린 댓글.
특히 블랙핑크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를 향해서는 “양현석 대표는 블랙핑크에서 제니 만을 편애하기 때문에 리사가 당하고 있는 인종차별을 고의로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 아이돌 가운데 외국인 멤버에 대한 ‘인종차별 이슈’가 이처럼 식지 않는 ‘떡밥’이 된 것은 리사의 사례가 처음이다. 심지어 태국 연예계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리사를 존중하자”는 해시 태그를 달고 응원과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등 집단행동에까지 나섰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이 현상에 대해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 밀집해 있는 K팝 팬덤이 리사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과 리사의 상징성 때문”이라고 짚었다.
국내 모 연예기획사 홍보팀장 A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SM은 NCT의 텐, JYP는 2PM의 닉쿤으로 동북아계이면서 동남아 국가 출신인 멤버를 1명 이상 보유하고 있는데 YG에서는 리사가 최초의 외국인 멤버이자 동북아계 혼혈이 아닌 완전한 동남아계”라며 “일반적으로 기획사에서는 외국인 멤버를 뽑더라도 한국인과 외모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일본인이나 중국인, 또는 해외 교포를 위주로 선별해 왔다. 그런데 YG라는 K팝 팬덤에게 상징적인 소속사에서 첫 외국인 멤버로 뽑은 것이 동북아계가 아닌 리사라는 점이 동남아의 K팝 팬덤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사의 인종차별 피해와 관련한 영상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유튜브
그에 따르면 국내 커뮤니티 가운데 더쿠, 인스티즈, 네이트판 등은 아예 해외 K팝 전문 인터넷 뉴스 사이트의 한국어가 능숙한 직원이 상주하며 각종 이슈나 반응을 번역해 해외 K팝 팬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번 리사의 사건 역시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리사나 동남아시아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댓글이 실시간으로 번역돼 보도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 아티스트 관리부서 관계자 B 씨도 이에 대해 “K팝을 다루는 해외 중소 규모 매체들이 한국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면서 이상한 이미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연예인은 무조건 성형을 해야 하며 성상납이 필수적이다. 자국 이기주의 때문에 아이돌의 경우 해외 멤버들은 전혀 정산을 받지 못하고 나머지 한국인 멤버들만이 돈을 벌며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린다는 식이다. 이런 내용이 단순히 기사 한 줄로만 나가면 별 상관이 없는데 유튜브에 매체 공식 채널로 게시하면서 K팝 스타 실명을 올려놓다 보니 아주 적게 잡아도 10만 뷰 이상은 기본으로 나오는 것”이라며 “그걸 본 해외 팬들이 진짜라고 믿고 실제로 소속사에 단체 항의 메일까지 보낸 일도 있다”고 귀띔했다. K팝으로 한류를 선호하는 팬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지만 이런 영상들로 인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함께 덧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실제 국내 정서에 녹아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한국사회 역시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짚기도 했다. 앞선 두 연예계 관계자들은 “아무래도 한국 연예계는 무조건 한국, 그게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 같은 동북아, 그것도 못 된다면 혼혈이더라도 백인과 황인의 혼혈이나 교포만 받아들이는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예전이야 ‘내수용 연예인’이었기에 그랬다지만 지금은 전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판에 폐쇄적인 시각을 유지한 채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해외 팬덤이 과장된 뉴스에 선동됐다고 판단할 게 아니라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