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AVK 리콜 대상 차량을 구매한 차주가 환경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행정소송은 모두 3건이다. 행정소송은 위법하다고 여겨지는 행정처분을 법원에서 제대로 봐달라는 소송절차다. 차주는 환경부가 AVK 리콜 계획서를 받아 차종에 따라 달리 진행해 승인한 1·2·3차 리콜에 대해 모두 ‘리콜 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환경부가 질소산화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리콜 계획을 승인해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 차주는 “환경부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인증 취소를 진행해놓고, 법에 따른 차량 교체 명령은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폭스바겐 서비스센터 앞에 배출가스 조작에 따른 리콜 대상 차량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실제 대기환경보전법 제50조는 인증 취소 원인에 대한 시정조치(리콜)가 부품 교체로 부족할 경우 자동차의 교체, 환불 또는 재매입을 명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과 환경 관련 법이 유사한 미국 환경당국은 같은 사안에 대해 부품 교체 불가능을 판정, 환불을 명령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1·2차 리콜 승인에 대한 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각하’를 결정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본안 판단 없이 재판을 끝내는 절차다. 차주 이익이 침해받은 사실이 없다는 환경부 주장을 서울행정법원이 받아들였고, 차주는 곧장 항소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3차 리콜 승인에 대한 행정소송은 현재 ‘추정’ 상태다. 전문가들은 환경부가 내린 3차 리콜 승인에 대한 취소 처분 행정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내놓은 추정 부분을 유심히 봐야 한다고 분석한다. 추정은 하급심 판결에 앞서 상급심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의미와 함께 1·2차 리콜 승인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 고등법원에서 달라질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환경부는 일련의 위법 논란을 차주들의 소송 부적격성으로 대응해 왔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공정위 판결을 보면 현재 법원은 차주 권리침해를 인정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은 AVK가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등 시정명령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폭스바겐이 높은 연비와 성능을 유지하면서 친환경성 기준을 충족한 것처럼 허위로 광고해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공정위 판단이 옳다고 봤다. 특히 고등법원은 최근 판결에서 AVK가 수입해 판매한 리콜 대상 차량에 부착된 ‘배출가스 관련 표지판’을 소비자 피해의 주요 근거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출가스 관련 표지판 내 환경부 대기환경보전법 충족 적시가 소유자 보호를 의미함에도 조작으로 이를 침해했다는 것.
법조계에선 배출가스 관련 표지판이 AVK 리콜 대상 차량 차주가 환경부를 상대로 제기한 리콜 승인 처분 취소 행정소송 상급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환경부는 행정소송 제기 자격에 집중해 각하 판정을 유도해왔지만, 공정위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이 소비자 피해로 결정나면서 차주들의 소송 자격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배출가스 관련 표지판에 적시된 내용과 같이 배출가스 사전인증을 받은 적법한 차량을 구매하도록 법이 보장했지만, 차주는 위법하게 인증받은 차량을 구매하면서 권리 침해를 당한 것”이라며 “각하 사유로 작용했던 직접 피해 없는 제3자라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환경부가 AVK에 내린 배출가스 조작 차량 리콜 승인이 취소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AVK가 제시한 전자제어장치(ECU) 업데이트의 배출가스 감소 부적격성을 떠나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의 AVK 차량 배출가스 조작 검사 미흡성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2016년 1월에는 교통환경연구소 내부 직원이 직접 “AVK에 대한 배출가스 조작 검사가 엉터리였다”는 고발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연구소 내부 메일을 통해 “국내 검증이 법을 떠나 AVK에 유리하게 결론 내려졌다”고 토로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하종선 변호사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돼야” “우리나라 법과 제도는 소비자에게 완전히 불리하다.” AVK 집단소송은 물론 BMW 차량 화재 집단소송까지, 이른바 ‘수입차 저승사자’로 불리는 하종선 변호사는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벤츠, 랜드로버 등 수입차 관련 소송만 9건을 맡아 처리 중인 하 변호사를 만나 해결책을 물었다. 하 변호사는 제작사가 결함을 직접 밝히는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첫 손에 꼽았다. 소비자가 결함 원인을 직접 밝히도록 하는 현재 법 구조에서 소송 승리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그는 “기업은 영업 비밀이란 이유로 자료를 주지 않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서 3년 넘게 지지부진한 AVK 보상이 길어지는 이유 역시 제도의 부재라고 봤다. 미국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기반으로 재판에 앞서 상대방 혹은 제3자로부터 소송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요구해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디젤게이트 피해 배상 소송은 9개월 만에 끝났다. 수입차 업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없는 국내 법체계의 미비를 활용, 결함 은폐는 물론 유독 국내에서만 소극적 배상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AVK는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총 보상금만 18조 원을 쏟은 것과 달리 국내에서 차량 1대당 100만 원 상당 수리 지원금만 지원했다. 하종선 변호사는 이를 두고 한국 정부와 법의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는 만큼 수사기관이나 정부 조사단의 역할이 큰데, 제작사에 끌려다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가 기업과 싸워봐야 연전연패”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