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4구역 연합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제4구역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철거 보상 요구를 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 많던 이주보상비는 어디로 갔나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세입자들은 1월 13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성바오로병원 인근 상가 건물에 올라갔다. 이들은 자신의 목에 쇠줄을 걸고 농성하며 투신하겠다고 위협했다. 최소한의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청량리 588 재개발에 책정된 주민 이주보상비는 239억 원이다. 수십 년 동안 청량리 일대에서 집창촌을 운영해온 사람, 주변 상인, 실거주자 등은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만난 원주민 가운데에는 보상은커녕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집이 사라졌다는 사람, 30만 원을 받고 쫓겨난 사람 등도 수두룩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법(도정법)에 따라 청량리 588지역은 ‘토지등소유자’ 방식으로 재개발이 진행된다. 토지등소유자 방식은 조합원 방식과 달리 시행사와 건설사를 재개발 초기 단계부터 선정할 수 있다. 롯데건설이 청량리 재개발 사업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깊숙이 개입된 배경이다. 재개발은 토지등소유자로 구성된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와 삶도시건설이 공동시행을 맡고 있다. 시공사는 롯데건설이다.
이주보상비로 책정된 239억 원 중 예비비 47억 8000만 원을 제한 나머지 금액이 순수 이주보상비다. 하지만 사업 관계자들이 허위로 이주보상비 수십억 원을 가져갔다. 추진위원회 전 감사이자 공동시행사의 실소유주 김인식 씨는 18억 5000만 원에 대한 배임수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주보상비와 용역업체에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는 김 씨는 대검찰청 조직범죄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청량리파 두목이다.
추진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정비업을 담당하던 업체 유한원 대표는 이주보상비를 허위로 15억 원 상당 편취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이 밖에도 동대문구청 전직 공무원, 공인중개사 등이 수억 원의 이주보상비를 편취했다.
# 방만경영 잡음 끊이지 않는 추진위
추진위원회와 시행사의 곪은 비리가 터져 나오며 일단락되는 듯했던 재개발 사업은 다시 내홍에 빠졌다. 현재 임병억 추진위원장은 정비사업 전문관리 업체를 불법 변경하고 용역비를 지급하지 않아 피소됐다.
피해를 주장하는 편 아무개 정비사업체 대표는 “총회를 열어서 정상적으로 용역업체를 변경하는 것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내가 운영하는 A 사 대신 같은 이름의 A 회사와 불법적으로 용역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설립된 편 씨의 회사와 같은 상호의 회사가 2013년에 뒤늦게 설립됐고, 절차를 무시한 채 용역업체가 변경됐다.
복수의 토지소유자와 사업 관계자들은 추진위원회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불투명하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다는 주장이다. 추진위원회가 통신장비 사업 용역업체에 11억 원을 지급했는데 돌연 업체가 망해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된 것이 드러나며 불만이 고조됐다. 이 사업을 담당한 추진위원회는 사업이 불발될 경우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약정 기간이 지난 뒤에야 용역업체의 폐업소식을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토지소유자 A 씨는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 10여 년 동안 추진위원회 임원들이 하는 일 없이 한 달에 수백만 원의 월급을 받아갔다”며 “뿐만 아니라 추진위원회 임원의 단순실수로 주민들의 돈 11억 원을 날리고는 돌연 업체가 망했다고 주장하는 데 의혹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 결국 웃는 자는 롯데건설?
더 큰 불만은 추진위원회가 토지소유자가 아닌 시공사 롯데건설 편에서 사업을 전개한다는 데 있다. 토지등소유자 방식의 재개발에서는 초과 사업이익이 발생해도 시공사는 애초에 계약한 건설용역비만 받는다. 그런데 청량리가 개발 호재 지구로 급부상하며 평당 분양가가 올라가자 롯데건설은 초과이익의 30%를 달라고 주장했다. 재개발 공동시행사인 삶도시건설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정작 추진위원회가 이를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토지소유자의 이익에 전면 배치되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롯데건설은 건설업계에서도 전무후무한 평당분양가와 추가 시공비를 요구했으나 이가 모두 반영돼 의구심을 자아냈다. 롯데건설이 요구한 청량리 재개발 평당분양가는 618만 원이다. 여기에 특화공사비 300억 원도 추가됐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320만~400만 원대가 평당분양가다. 강남도 아니고 분양가가 낮은 청량리에 평당분양가 618만 원을 부른다는 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농성하시는 세입자분들이 명분상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위원장 마음대로 보상비를 집행하는 건 더 큰 문제”라며 “롯데건설 입맛대로 추진위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롯데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토지소유자들이 찬성한 대로 일을 진행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