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상된 수사였다. 금융위원회가 고발한 사건이 아니었던가. 삼성도 대응에 나섰다. 법무법인 김앤장을 선임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삼성은 내부적으로 기소를 막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변호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의 ‘칼’과 김앤장의 ‘방패’ 대결에서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법조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삼바사태는 올해 상반기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될 것으로 주목하고 있다.
서울정부청사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 제재 조치 안 등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 임준선 기자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말, 삼성바이오 회계 감리 결과를 토대로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의혹의 시작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연결종속회사에서 지분법상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고의 분식회계가 있었다는 것.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규모를 약 4조 500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핵심 계열사도 아닌 삼성바이오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승계와 무슨 상관인가’하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바이오는 제일모직 자회사로 기업 가치 평가 대상이었다. 삼성바이오의 기업 가치를 높게 반영하면 할수록, 제일모직이 유리해진다. 손해를 보는 쪽은 삼성물산인데,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63%로 최대 주주였다. 그리고 이 같은 합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이 승계를 했다는 추론이다.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의 가치가 높게 평가될수록, 이 부회장이 ‘포괄적 승계’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의혹이다.
# 몇 단계 넘어야 하는 복잡한 수사
작게는 분식회계부터, 크게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까지 불거질 수 있는 수사인 셈이다. 검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송경호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증선위로부터 자료도 넘겨받았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보는 분식회계와 이를 입증해야 하는 검찰의 수사는 다르다. 금감원 회계감리는 검찰 수사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분식 여부를 판별하기 때문에, 검찰은 분식회계의 고의성을 입증할 추가 증거 자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검찰은 사건 배당 직후 압수수색도 벌였다. 지난 7월 검찰이 금융위원회로부터 관련 고발을 받은 이후 약 5개월 만이었다.
검찰은 지난달 13일 삼성바이오 본사 회계부서와 삼정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 등 관련 회계법인을 압수수색해 회계 관련 장부를 확보했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사무실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40%)인 삼성물산도 압수수색 대상이었다.
서울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여부를 가려내는 감리위원회에 참석하며 취재진을 만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최준필 기자
하지만 쉽지 않은 수사라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검찰 관계자는 “분식회계를 입증해야 하고, 그 판단을 하는데 삼성 내부적으로 ‘이재용 부회장 승계를 위해서 했다’라는 진술이나 서류 증거 등을 찾아내야 한다”며 “이 부회장 승계까지 겨냥하지 않을 수 없는 수사이기에, 어려운 회계 분석은 물론 은밀한 경영 판단까지 증거로 입증해야 하는 수사”라고 풀이했다.
# 삼성 전략은? 김앤장 손잡고 ‘방패’ 세웠다
삼성 측은 분식회계 관련해서는 기소를 피할 수 없다는 내부 판단을 내렸다. 이미 금융위원회 증선위 등의 과정을 거쳐 나온 판단이기 때문. 이를 위해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의 손을 잡았다.
우선 삼성바이오와 김앤장 측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계 해석의 차이”라는 해명이다. 특히 핵심 의혹인 삼성바이오 관계회사 변경 및 공시의 경우, 2015년 합작 파트너사인 바이오젠에 부여한 콜옵션을 지배력 판단에 반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당시 회계처리는 삼정, 삼일, 안진 등 3개 대형 회계법인으로부터 ‘적정’ 판단을 받았다는 점을 검찰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계획이다.
삼성 측 판단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가 고의 분식회계인지,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을 위반했는지가 시작점인데, 공시 누락 등에 대해서는 이미 기소를 피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단계별로 기존 입장 그대로 해명하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향한 승계 수사로 확대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수사 단계마다 법리적으로 대응하되, 내부적으로 이재용 부회장만큼은 지킨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최준필 기자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수사를 통해 검찰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이른바 ‘포괄적 승계’ 여부를 들여다 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대주주로 실질적 지주 회사인 삼성물산까지 압수수색한 점을 볼 때 분식회계와 합병 사이 불법 정황을 찾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특히 검찰의 수사 의지는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게 부담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검사 등 지휘부의 핵심 이력은 기소를 피할 수 없다는 분석에 힘을 보탠다.
두 명의 특수통 검사들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 시절부터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을 수사했다. 이미 2년 전에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려 합병했다”는 결론도 내렸다. 당시 이들은 합병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국민연금공단 수사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으로 부풀렸다”고 판단했다. 이제 와서 다른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지휘를 하는 두 명의 핵심 지휘관들이 이미 ‘승계를 위한 합병’이라고 확신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 부회장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삼성 측은 이 부회장까지 올라가지 않도록 어떻게든 중간에서 수사를 차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