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500여 명(로스쿨 졸업자 중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이 늘어나면서, 얼어붙은 변호사 시장 탓일까. 옷을 벗고 변호사로 ‘업’을 바꾸려고 하는 판검사들을 향한 시선이 따갑다.
가장 큰 비판의 명분은 전관이라는 것인데, 최근에는 한 가지가 더 보태진 분위기다. 검찰 및 법원을 향한 적폐 청산이 2017년부터 계속되면서 변호사 등록을 할 때 적폐 여부까지 본다는 얘기다. 내부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거나 형사 처벌을 받았다면, 등록이 거부되고 자숙 기간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됐다.
# 1년 남짓 자숙 기간 거쳐야 하는 것은 의무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의 등록 반려 후 자숙 기간 트렌드는 1년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형사 사건으로 연루됐다면 말이다. 지하철에서 여성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돼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직 판사 A 씨(33). 현역 중진 국회의원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2017년 7월 서울 지하철 4호선 열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여성 승객의 몸을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휴대폰 안에서 여러 사진이 발견됐는데, 그는 성폭력범죄 전담 재판부에 근무한 적도 있었던 탓에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논란 끝에 법원 내부에서 감봉 4개월의 징계를 받고 지난해 2월 사직 처리된 A 씨. 그는 법원을 나온 지 6개월 만에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다. 1차 심사 격에 해당하는 서울변호사협회의 동의는 받았지만 변협 측의 거부 의사에 신청을 철회해야 했고, 6개월 뒤인 이달 초 다시 변호사 등록 신청을 냈다. 그리고 대한변협은 이달 8일 등록심사위원회를 열어 “전직 판사 A 씨에 대한 등록거부안건에 대해 심의한 결과 위원 9명 중 7명이 반대해 부결됐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등록거부 조치에 대한 부결 형식으로, 변호사 등록을 허가해 준 셈이다.
최근 들어 판·검사 출신이 변호사 등록을 할 때도 ‘적폐’ 여부를 들여다 본다. 일요신문 DB
최근 변협이 문제를 일으킨 전관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변호사로 등록한 검사 출신의 법조인은 “대한변협이 전관에 대해 쉽게 변호사 자격증을 내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법원, 검찰 내부 징계 등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은 기다려야 변호사 등록을 받아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서울변회나 대한변협이 모든 형사 사건에 관대한 것도 아니다. 사건 청탁 대가로 고급 승용차를 받아 ‘그랜저 검사’로 불린 전직 부장검사 정 아무개 씨의 경우 출소 후 변호사 개업을 신청했지만 서울변회에서 거절당했다. 2008년 평소 알고 지내던 건설업자로부터 ‘고소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후배 검사에게 전하는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와 현금 약 4600만 원을 받아 챙긴 정 씨. 그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로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사법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으면 5년 안에 △금고 이상 형의 집행유예를 받으면 2년 안에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으면 유예기간 중에 변호사가 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정 씨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고 2013년 출소해 형 집행 종료 후 5년이 지나 변호사법상 결격 사유가 없다.
그럼에도 서울변회는 정 씨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고, 결국 정 씨는 변협에서 등록심사위원회가 열리기 전 스스로 변호사 등록신청을 철회해야 했다.
‘여론을 감안해 한 번은 거절한다’는 암묵적 룰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또 다른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최근 옷을 벗고 나오는 검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징계라도 있었을 경우 암묵적으로 한 번은 거절할 테니 6개월 뒤에 하라고 메시지를 준다”며 “아무 문제가 없어도 과거 수사 내용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변호사 등록이 깐깐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검사장 출신의 중소형 로펌 대표변호사 역시 “평검사는 2주, 부장검사는 3주, 검사장급은 4주는 무조건 기다려야 하고 문제라도 있었다면 거기서 플러스 알파로 더 기다려야 하는 분위기”라며 “별 문제가 없으면 곧바로 내주면 되는데 변호사들 눈치를 보는 탓에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도 있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 “적폐 출신, 직급 높을수록 더 깐깐”
단순 징계가 아닌, 정치적으로 이름을 알린 판검사들의 경우 최근 변협의 심사를 통과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적폐’로 몰려 검찰의 수사를 받았을 경우 선고가 날 때까지 최소 2~3년은 변호사 개업이 불가능하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될 처지에 놓인 판사 B 씨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형사 사건도 형사 사건이지만, 변호사 등록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B 씨는 “만에 하나 기소되기라도 하면, 형이 확정될 때까지 변호사 등록을 할 수 없지 않냐”며 “기소된 뒤에도 계속 법원에 있기도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해서 나가서 먹고 살 걱정에 막막한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기본적으로 직권남용 등의 혐의는 집행유예 이상의 형(금고 이상 기준)이 나오기 때문에 최소 2년은 변호사 등록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한 것이다.
지난 2017년 국가정보원 2차장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 개업을 했던 최윤수 전 검사장도 비슷한 구조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최근 1심에서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은 최 전 검사장은 이대로 형이 확정될 경우 변호사 자격을 빼앗기게 된다. 서울변회와 대한변협에 다시 변호사 등록을 하는 과정에 추가로 시간이 필요한 점까지 감안하면, 최소 3년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앞선 B 씨는 “변호사 등록이 나올 때까지 대기업 법무실에 가야 하나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는데,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 역시 “실력은 있지만 적폐로 몰린 판검사들이 변호사법과 변협의 까다로운 기준에 옷을 벗고 나오는 것을 주저한다”고 설명했다.
# “눈 가리고 아웅” 결국 내주는 문화도 ‘문제’ 지적
하지만 변협의 이런 행보를 다 좋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특히 ‘눈 가리고 아웅’하는 형식으로, 한 차례 반려한 뒤 다음 차례의 신청 때 무조건 받아주는 것을 문제 삼는 법조인들이 많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심사위는 변호사 4인, 판사 1인, 검사 1인, 법학교수 1인, 비법조인 2인을 포함한 9인으로 구성된다. 9인 가운데 최소 5인 이상이 거부 의견을 밝혀야 등록 거부가 확정된다. 통상 등록심사위원 대다수는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던 사건의 경우 첫 번째 심사 때 거부 의견을 밝힌다. 하지만 두 번째 심사 때는 거의 대부분 변호사 등록을 허가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됐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경우 특수 강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 됐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2014년 한 차례 변호사 등록 신청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다시 변호사 개업을 타진했고, 결국 변협에서 등록을 허가받았다.
공연음란죄로 체포됐다가 병원 치료를 전제로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경우 한 차례 서울변회의 등록신청 반려 끝에 변호사 등록을 허가받았다.
변협의 ‘반대’가 형식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급증하면서 변협이 눈치보기식 반대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선 검찰 출신 변호사는 “변호사들 가운데 음주운전을 하거나 폭행, 사기 등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판검사 출신들에 대해 유독 변협이 더 엄격한 것도 사실”이라며 “다른 변호사 회원들 눈치를 본다면서 한 차례 반려를 하는 게 객관적인 기준으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냐”고 비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변호사 2만 명 시대 위기론 고조…‘전관 출신’ 등록 심사 강화 예고 매년 1500명의 합격자가 쏟아져 나오는 변호사시험. 1월 21일 치러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 유권자 수는 2만 1227명에 달했다. 변호사 2만 명 시대와 함께 포화 상태라고 불리는 변호사 업계. 자연스레 변호사 위기론이 다시 한 번 거론되고 있다. 이찬희 신임 대한변협 회장. 사진 출처 = 서울지방변호사협회 홈페이지 대형로펌 관계자는 “상위 대학 기준으로 600~700명이 아니면, 로펌에 취업하기가 힘든 현실”이라며 “변시 합격 후 개인으로 개업한다고 해도 사건을 가져오는 게 쉽지 않다. 비용을 줄이겠다고 집을 사무실로 등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얘기다. 이같이 악화된 분위기가 자연스레 전관 출신 판검사들의 변호사 등록 심사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평이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전관들은 대형로펌에서 데리고 간다거나 시장에서 전관 특수를 누리려는 의뢰인 수요가 탄탄하다”며 “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있어 대한변협도 이를 의식해 심사가 더 강화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