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화백은 초미세 표현주의 기법으로 한국적 민화와 만다라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 한국 현대사회를 재해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인정받아 최근 한국만다라 박사 1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김 화백을 직접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어봤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 피카디리에서 ‘피카소와 함께하는 김경호 전’을 열고 있는 만해 김경호 화백. 고성준 기자
—‘피카소와 함께하는 김경호 전’을 연 계기와 의미는.
“시대와 시대의 만남, 서양 미술과 동양 미술의 교차라고 본다. 피카소는 회화적인 면보다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다. 내 작품도 영적이다. 그래서 늘 같이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갤러리 피카디리가 개관하면서 피카소전을 열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열었다. 생존하는 작가로는 피카소와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하는 게 최초일 것이다.”
—초미세 표현주의(점, 선, 면과 채색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대상을 묘사하는 것)라는 독특한 기법을 쓰고 있다. 이 기법을 추구하는 이유가 있나.
“보이지 않는 점들이 모여 인간이 되고, 지구가 되고, 태양계를 이룬다. 반대로 먼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미세한 점을 찍으면서 하나의 행성인 동시에 우리 몸의 일부일 수 있다는 철학적 복잡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세밀한 작품을 그리려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나.
“왜 힘이 안 들겠나. 그런데 작품에 들어가면 하루에 1끼나 이틀에 1끼 먹는다. 잠은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잔다. 내 몸무게가 74㎏인데, 작품 끝내고 나오면 56㎏로 준다. 그렇게 해서 1년 6개월 만에 53점을 완성했다. 그렇게 수행하듯 해야만 이런 작품을 그릴 수 있다. 처음에는 먼지보다 작은 점을 찍으려고 하니 눈에 온 정신이 모여 눈물이 나고 아파 못 견딜 정도였다. 그런데 계속 집중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점을 찍어야 하는 공간이 넓게 보이더라. 수행을 하니 요즘은 수월하게 작업하고 있다. 육체적 체력도 필요하지만 정신적 내공도 많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만다라를 그렸던 것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몇십 년 됐다. 처음에는 먹그림(수묵화)을 그렸다. 그러다 보기 좋은 그림보다 ‘홍익이념과 이화세계’ 정신으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작품을 그리자 생각해 한국만다라를 그리게 됐다. 16년 정도 됐다. 그때부터 고행 아닌 고행을 하고 있다.”
—한국만다라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왜 만다라였는가.
“만다라는 우주 법계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를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다. 고대 인도나 티베트에서 주로 그렸다. 만다라는 ‘내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도형화시키고,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그림을 통해 이야기한다. 난 미술 전공이 아니다. 문화재를 전공했다. 그러다보니 장승, 솟대 등 우리 문화를 깊이 들여다보고 그 뜻을 배웠다. 한국에도 우수한 문화가 아주 많다. 만다라에 한국적 전통과 풍습 요소를 넣고 싶었다. 여러 시도를 하다 보니 과거 구전으로, 문서로 내려져오던 이미지·상징 등 민화풍의 요소가 들어갔다.”
‘피카소와 함께하는 김경호 전’에 걸린 작품 ‘원천’ 옆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만해 김경호 화백. 고성준 기자
—그림은 전통적 요소를 따르지만 주제의식은 현대사회에 대한 문제를 담고 있다.
“해학과 풍자가 많다.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다. 물질 역시 마찬가지다. 더 갖고 싶어 하면 분수에 넘쳐 화를 불러일으키고, 없으면 남의 것을 취하려고 나쁜짓을 하게 된다. 작품을 통해 적당선, 중도를 찾아야 할 시기가 됐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삶 자체가 찰나다. 이 찰나를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나도 부족함이 많으니까 고민을 위해 작품을 그린다.”
—앞으로 계획은.
“개인전은 이번이 공식적으로는 처음이다. 그동안은 때가 아닌 것 같고, 그림을 막 그리고 있는 중이라 선뜻 나서지 못했다. 300여 점 작품 중 아직 이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그림이 많다. 일본 오사카에서 오는 4월 1일부터 한 달간 11명의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한다. 한국에서는 수시로 전시회를 할 것 같다. 또 과거 반 고흐, 세잔 등 작가들도 참가한 앙데팡당(1884년 프랑스 관선단체 프랑스미술가협회의 아카데미즘에 반대해 개최된 무심사 미술전람회)이 오는 6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다. 한국앙데팡당 2019에서 초대 작가로 참가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