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승 법무사협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법무사들 “사건 하나 처리하는데 17번 계약” 실무 현실 외면 주장
한 법무사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게 사건의 발단이다. A 법무사는 2010년 2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380여 건의 개인회생·파산사건에서 각종 신청서와 계획서 등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는 업무를 포괄적으로 위임 받아 처리했다는 이유로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소송절차 없이 처리하는 비송사건을 ‘포괄적으로 위임 받아 처리’ 했다는 게 핵심이다. 검찰은 현행 변호사법(제109조 제1호)에 따라 한 번의 의뢰만 받고 서류 작성과 제출 대리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은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법률사무에 대한 포괄적 대리에 해당돼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현행 법무사법에 따라 법무사들은 개인회생·파산사건절차를 한 번에 처리하지 말고 ‘각 단계마다’ 의뢰인의 위임을 받아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사들은 그동안 개인회생 업무는 가압류, 가처분 등과 함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로 대부분 한꺼번에 처리해 왔다. 개인회생 신청은 신청서와 첨부서류가 일체로 ‘하나의 서류’라는 게 법무사들의 주장이다. 실제 법원의 ‘개인회생사건 처리지침(재민 2004-4)’인 재판예규를 보면, 한 사건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서류는 신청서와 변제계획안 등을 포함해 총 17건이다. 앞서의 검찰 판단대로 업무를 처리하면 의뢰인은 하나의 개인회생신청을 법무사에게 의뢰할 때 17건 번에 걸쳐 따로따로 계약한 뒤 위임해야 한다.
법원에서도 포괄 처리를 사실상 인정해 왔다. 법무사들에 따르면 법원은 정해진 서류 양식과 작성요령을 법원과 홈페이지, 법무사 교육자료집 등을 통해 안내하고, 가능한 동시에 제출할 것을 권유해 왔다. 한 지방법원 관계자도 “법무사로부터 한꺼번에 받아 온 건 사실”이라며 “절차마다 서류를 따로 받으면 업무가 상당히 지연되는 등 법원과 신청자 모두 불편해진다”고 말했다.
#항소심서 뒤집힌 판결, 법무사협회 강력 대응 예고
A 법무사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국가는 사법제도의 건강한 발전과 국민 법률생활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 법무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규정에 따라 정해진 여러 종류의 서류를 동시에 제출하는 개인회생·파산사건의 특성상 법무사가 서류를 한 번에 작성해 제출하고 보수를 일괄 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대리’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A 법무사가 위반했다는 변호사법에는 명확한 기준 획정 없이 추상적인 표현에 머무르고 있어 이를 근거로 처벌할 수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에선 다시 유죄로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제반 업무 일체를 포괄처리 한 A 법무사는 사실상 사건 처리를 주도하면서 의뢰인을 위해 모든 절차를 실질적으로 대리했다고 봐야한다”며 “개인회생사건 또는 개인파산·면책사건이 수임한 때로부터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 종료된다거나, 일부 관련 서류를 동시에 접수시킬 필요가 있다는 특징이 있어도 마찬가지로 변호사법 위반이다”라고 판시하면서 A 법무사에게 벌금 2000만 원에 추징금 3억 2000여만 원을 선고했다.
법무사들은 “‘사실상 대리했다’는 이유로 법무사들이 처벌 대상에 올랐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하경민 법무사는 “실무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며 “대리는 수임자의 능력에 따라 소송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변호사의 업무가 맞지만, 비송 사건인 개인회생사건 등은 양식과 규정에 따라 작성해 자료만 제출하면 법원이 인가를 결정한다. 법원 규정과 법무사법 등에 따라 법무사들도 충분히 처리 가능한 업무인데 이를 한 번에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A 법무사는 대법원에 상고했고,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대법원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법무사들의 기존 비송 사건 업무영역이 상당부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법무사협회는 항소심 판결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강력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오는 1월 28일 최영승 법무사협회장을 포함한 지방법무사협회장 18명은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최영승 법무사협회장은 “포괄수임, 사실상 대리를 내세워 사건을 위임받아 처리한 법무사를 처벌 대상에 올리는 건 실정법 해석은 물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회생사건 본래의 입법취지 및 실무 현실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