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실 보좌진들은 오늘도 국회의원 보좌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발로 뛴다. 사진은 늦은 저녁 의원을 기다리는 수행비서들. 박은숙 기자
A 의원실은 ‘짠돌이’로 유명하다. 이 의원은 자신의 의원실에 있는 음료수를 외부 손님에게 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우리 의원실 비서가 A 의원실에 놀러갔는데, 그쪽 비서가 음료수 한 잔도 못 주더라. 그쪽 의원님이 이런 데 엄격하다”라고 밝혔다. A 의원은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역설적으로 A 의원실 직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업무가 없는 경우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의원실은 저녁이 되면 모든 직원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 보고를 하고 퇴근을 허락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모든 직원이 돌아가며 의원실로 출근을 한다.
B 의원실은 여러 국회 관계자들이 ‘최악의 의원실’로 가장 많이 거론한 곳이다. 또 다른 국회 관계자는 “B 의원실은 정말 악명이 높다. 그래서 그곳에 있었던 직원들은 단결력이 굉장히 강한 편이다. 악덕 사장 밑에 있는 직원들이 더 똘똘 뭉치는 것과 같다”며 “의원실에서 해고되고 나와서도 서로 모임을 이어간다. B 의원이 구심점이나 다름없다. 서로 의지하고 의존해 가더라”라고 밝혔다. 다른 국회 관계자도 “저도 거기에 있었는데, 올해에도 보좌진들 서너 명이 이유 없이 바뀌었다더라. 왜 그렇겠냐. B 의원은 무서운 사람이다. 언론 보도가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보좌진을 시켜 언론사에 전화해서 기사 삭제를 요청한다. 만약 기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B 의원은 보좌진을 해고해 버린다”라며 “그곳만큼이나 사람이 자주 바뀌는 의원실도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B 의원은 자신의 의원실 여성 비서들에게 김장을 지시한다고 알려졌다. 김장철이 되면 여성 비서들에게 자신의 집으로 가 김장을 하라고 시키고, 그렇게 만들어진 김장 김치는 자신의 친척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B 의원실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장을 시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 일도 많다”라며 “그 의원실에는 ‘3무(無) 원칙’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 세 가지는 식권, 명함, 생수다. 이 모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인데 B 의원은 직원들 각자 알아서 구매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C 의원도 공과 사의 경계가 애매모호했다. C 의원은 자신의 고향(지역구)에 있는 강아지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보좌진에게 강아지를 데려오라고 시키기도 했으며, 이 일은 국회 내 보좌진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의원은 강아지 복지를 위한 법안을 발의하며 동물 권리를 위해 앞장서던 인물이다. D 의원은 보좌진이 자신의 강아지 산책을 안 시켰다는 이유로 의원실을 나가라고 했다.
E 의원은 자신이 아침밥을 챙겨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의원실에 전기밥솥을 사두고 매일 아침 행정비서에게 아침밥을 차리라고 지시하기도 하고, F 의원은 밥 반찬으로 김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며 김 심부름을 시켜 보좌진이 곤란해 한 적도 있다.
G 의원실은 출근 시간이 새벽 4시로 알려졌다. G 의원이 아침잠이 없어 일찍 출근하는데, 문제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새벽 출근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운행하지 않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는 등 어떻게든 의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출근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G 의원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럴 리가 있겠냐. 국정감사 등 바쁠 때만 종종 일찍 출근하기도 하고 늦게 퇴근하기도 하는 것이지 항상 4시에 출근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며 “그건 어느 의원실이나 마찬가지이며 언론사도 그렇지 않느냐. 업무량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는 것이고, G 의원이 매일 4시에 출근을 시킨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H 의원은 ‘일일연속극 광’이다. 그리고 연속극을 누군가와 같이 시청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H 의원실 직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연속극이 방영되는 8~9시까지 남아서 H 의원과 함께 드라마를 시청한다. 연속극을 보며 같이 호응하고 주인공을 욕하며 의원과 맞장구를 쳐준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업무가 다 끝났음에도 의원이 퇴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원실 직원들도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보통의 사업체와 비슷했다. I 의원실은 직원들 모두 점심약속이 있는데도 I 의원의 점심 약속이 없으면 약속을 취소하고 괜히 자리를 지켰다.
한 수행비서는 J 의원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J 의원은 길을 너무 잘 안다. 그게 문제였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도 뭐라고 하고 자신이 아는 길로 왜 안가냐고 물어본다”며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 4개는 됐었다. 저의 모바일 내비게이션, 자동차에 내비게이션, J 의원 모바일 내비게이션과 J 의원의 입까지. 일정에 따라갈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의원실도 있다. K 의원은 바쁜 일정에 급하게 의원실을 빠져 나가다가도 그날이 직원 생일인 것을 깨달으면 뒤늦게 뛰어 들어와 용돈 30만 원을 챙겨준다. “생일 축하한다. 가족하고 밥 먹어라”라는 말과 함께 다시 일정을 위에 허겁지겁 뛰어 나간다고 한다. L 의원도 어느 날 수행비서의 급여명세서를 보고난 뒤 “너의 월급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 미안하다. 이렇게 고생하는데…”라고 말하며 파격 승진을 시켜주기도 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실의 분위기나 규칙이 각각 다른 게 의원만의 문제겠나. 물론 B 의원은 그 의원 성격 자체가 까탈스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 외에 의원실은 의원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의원들은 일정이 너무 바빠서 의원실 일에 관여하기가 어렵다. 그런 분위기는 선임 보좌관들 때문인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의원님과 직원들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선임 보좌관인데,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들의 출·퇴근 시간은 물론 처우나 복지까지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