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대기오염은 다양한 질병을 유발한다. 사진은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 광화문 일대. 고성준 기자
2103년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9세 소녀인 엘라 키시-데브라의 가족은 런던에서도 가장 번잡한 도로변에서 살고 있었다. 천식을 앓고 있던 소녀가 갑자기 사망한 것에 대해 가족은 얼마 전 국가를 상대로 사인규명을 요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도로의 공기 오염’이 부분적으로 소녀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관련된 연구에 따르면, 심각한 대기 오염은 불면증과 비만을 비롯해 조산, IQ 저하, 치매,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유산 확률도 16% 증가하는데, 이는 간접 흡연으로 인한 확률과 엇비슷한 수치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대기 오염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또 이로 인한 건강상 위험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도로와의 거리
대문 밖의 심각한 교통 체증은 실내의 공기 오염 정도를 세 배 정도 악화시킨다. 다만 집안의 구조에 따라 어느 정도 공기 오염에서 해방될 수 있다. 앞마당이 있거나, 거실이 집안 뒤쪽에 위치하고 있을 경우에는 도로변의 매연 가스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 자체가 도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요컨대 도로와 집 사이의 거리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도로에서 50m 떨어져서 살 경우에는 50m 안에 살 때보다 실내의 공기 오염 정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와 관련, 영국 폐재단의 명예고문인 프랭크 켈리 교수는 “자동차로 인한 미세 먼지가 200m에서 300m 떨어진 곳까지 탐지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만일 자동차 배기 가스가 200~300m 정도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대기 오염 수준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이다.
높은 층에 사는 것도 자동차 배기 가스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5~6층보다 높은 곳에 사는 것이 적당하다.
한편, 런던 퀸메리대학의 연구진들이 런던 도로변의 그을음(자동차 매연의 검은색 그을음)을 측정한 결과, 최악의 도로에서는 공기 중에서 5분마다 1m³당 1만 나노그램이 넘는 그을음이 측정됐다. ‘일간 공기질 지표’에 따르면, 24시간 동안 1m³ 당 3만 5000나노그램 이상의 오염 물질에 노출될 경우에는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매우 혼잡한 도로변에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20분 내에 이 경고치에 도달할 수 있다.
이에 영국의 국립보건복지연구소는 집을 지을 때는 가능한 도로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지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집을 설계할 때는 집 주위에 공기 오염 물질을 흡수하는 나무를 심거나 관목과 같은 식물로 이뤄진 ‘살아 있는 울타리’ 조성을 조언하고 있다.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에는 베란다나 창가에 화초를 키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로수 vs 울타리
나뭇잎은 배기가스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미세먼지 입자를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무를 너무 빽빽하게 심을 경우에는 되레 공기 오염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서레이대학의 연구진들은 나무를 지나치게 촘촘하게 심어놓을 경우에는 오히려 나무들이 지면 근처의 유독 가스를 가둬두는 역할을 하고, 이로 인해 공기 오염이 더 심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관련, 켈리 교수는 “지붕 모양으로 우거진 나무들은 오염 물질이 집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관목으로 집 주변에 울타리를 칠 경우에는 상록수를 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울타리는 포장도로의 매연을 약 3분의 1가량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혼잡한 도로변에 살면 소음 공해로 인한 비만, 난임 등에 시달릴 수도 있다.
#교통량과 비만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도로의 교통량은 비만과도 연관이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 따르면, 혼잡한 도로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중년이 됐을 때 비만이 될 확률이 더 높다. 또한 활주로 근처나 철로 근처에 사는 사람들 역시 비만 위험이 두 배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런던 퀸메리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인 스티븐 스탠스펠드는 “소음이 각성 수치를 높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 몸이 각성되어 있을 경우에는 코티솔,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과 같은 ‘투쟁-도피 반응’ 호르몬이 다량 분비된다. 이 호르몬들은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증가시키고, 비상 지방 공급원이 축적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축적된 지방은 당뇨와 심장질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난임
한 연구에 따르면, 혼잡한 도로변에 사는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아기를 갖는 데 더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마도 출산 주기를 방해하는 소음 공해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차량 소음이 10dB 높아질 때마다 여성이 임신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릴 확률은 5~8% 증가한다.
2011년에 실시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임산부가 번잡한 도로에서 400m 이내에 살고 있을 경우,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2주가량 조산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호주 퀸즐랜드공과대학의 과학자들은 대기 및 소음 공해가 임산부들에게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야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교통이 복잡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은 저체중일 확률이 높다. 조산과 저체중은 발달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훗날 심장질환과 당뇨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심장질환
영국 심장재단의 제레미 피어슨 교수는 “만성적으로 소음 공해에 노출될 경우에는 혈압이 높아질 수 있다. 때문에 심장질환이나 뇌줄중이 발병할 위험도 상당히 증가한다”라고 말했다.
소음 정도는 조용한 교외 지역은 보통 50dB, 교통량이 많은 지역에서는 80dB 정도가 측정되며, 사이렌 소리는 최고 100dB이다.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과학자들에 따르면, 60dB 이상의 주간 교통량 소음에 노출된 성인들의 경우, 55dB 미만에 노출된 사람들보다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5%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도로변 소음이 10dB 높아질 때마다 65세 이상 노인의 뇌졸중 발병 위험은 4분의 1 증가한다.
야간 소음도 건강에 나쁘긴 마찬가지다. 평균적인 야간 소음이 최소 50dB 이상인 도로변에 거주할 경우, 고혈압 발병 가능성은 6% 높아진다. 이에 대해 피어슨 교수는 “시끄러운 소음에 노출된 사람들은 심장병의 위험 요소인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말했다.
#우울증
‘환경보호 UK’ 자선단체는 교통 소음이 인구의 30%에게 ‘불리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심지어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는 야간 소음이 평균 40dB인 경우(30m 거리에서 1분마다 다섯 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경우), 불면증과 함께 우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람들마다 편차는 있다. 임페리얼 공중보건대학의 객원교수인 안나 한셀 박사는 “소음에 더 민감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우울증 등 건강상의 문제를 겪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호흡기 질환
자동차 배기 가스로 인한 공기 오염은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자동차 배기 가스는 만성적인 소아 천식 원인의 14%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간접 흡연만큼이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영국 폐재단의 페니 우즈 박사는 “폐가 발달하는 과정에 있는 어린 아동일수록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 이런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 폐질환을 앓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IQ
하버드대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교통 오염이 심각한 지역에 거주하거나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IQ 점수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평균 3.7점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뇨병
10세 이전에 심한 대기 오염에 노출된 경우, 제2형 당뇨의 경고 신호인 인슐린 저항성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 이 위험은 적게는 8.6%에서 많게는 22.5%까지 증가한다.
배기 가스에 장기간 노출되면 치매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
#치매
자동차 배기가스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치매와 관련된 뇌수축이 일어날 수 있다. 2017년 한 연구에 따르면,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서 50m 이내에 거주할 경우, 300m 이상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번잡한 도로에서 50~100m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치매 발병 위험이 4%, 그리고 101~200m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2%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평생 동안 번잡한 도로에서 5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치매 위험이 12%나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노팅엄대학 치매연구센터의 톰 데닝 교수는 “다만 공해가 치매의 유일한 요소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암
2017년 미국 유방암연구센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한 단위당 미세먼지가 증가할 때마다 유방암의 위험 요소인 고밀도 유방 조직이 발달할 위험은 4% 증가한다. 연구원들은 또한 어린이들이 교통체증이 심한 도로에서 150m 이내에 거주할 경우, 공격적인 골수세포성 백혈병에 걸릴 위험이 30%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대해 우즈 박사는 “특히 디젤 연료에서 방출되는 미립자는 폐암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애완동물
반려견이나 반려묘 등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보다 장기가 작기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나이 든 개나 고양이들이 알츠하이머와 비슷한 뇌손상을 겪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동차 매연이 폐조직과 혈관을 자극해서 염증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치명적인 뇌염이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에서 사는 애완동물들은 악성 림프종의 발병 위험이 교외에서 사는 애완동물들보다 8.5배 더 높다. 또한 화학 오염 물질들이 체지방에 축적되기 때문에 과체중인 경우도 많다.
이에 영국 수의학협회의 부회장인 다니엘라 도스 산토스는 “애완견들을 훈련 시킬 때는 번잡한 도로보다는 녹지가 좋다”고 충고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