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회 동반 활약이 기대됐던 기성용과 이청용.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지난 2010년을 전후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논할 때 ‘양박쌍용’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이용됐다. 이는 당시 대표팀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던 박지성,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이 활약하던 대표팀은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최초 16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뤘다.
선배인 ‘양박’ 박지성과 박주영이 시간차를 두고 대표팀과 멀어진 반면 ‘쌍용’ 이청용과 기성용은 현재까지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다. 다만 이들은 2011년 이후 메이저대회마다 엇갈리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축구계 유명한 ‘절친’이다. 비슷한 시기 프로 무대와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유럽 진출 시기도 비슷했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도 달성했다. 박지성과 함께 2011 아시안컵에서 3위에 올랐던 이들은 이후 대표팀에서 다소 다른 길을 걸었다.
물론 이들은 오랫동안 함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에서의 모습은 함께 웃음을 지었던 이전과 달랐다.
이청용은 2011년 여름 선수생활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정강이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부상은 치료가 됐지만 과거와 같은 기량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기성용은 여전히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막내였던 4년 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청용은 부진한 팀 성적과 함께 질타를 피하지 못했다.
이어진 2015 아시안컵에서 이청용은 또 다시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첫 경기에서 골절상을 입으며 대회 도중 짐을 쌌다. 반면 기성용은 주장 완장을 차고 결승전까지 맹활약했다. 대표팀을 상징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쌍용이 함께하지 못했다.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이청용은 예비명단까지는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 월드컵 본선으로 향하는 23인에 선발되지 못했다. 이청용이 대표팀에서 중도 하차하던 날, 기성용이 그를 배웅하며 슬피 눈물을 쏟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청용은 8강 진출을 확정짓고 ‘절친’ 기성용을 향한 세레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하지만 이들은 대회에서 단 1분도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첫 경기에서 기성용이 부상으로 교체돼 나간 이후 이청용이 투입됐다. 기성용이 대회 기간 내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반면 이청용은 조별리그 2차전부터 매경기 선발로 활약하고 있다. 이전 대회에서 이청용이 부상을 당하고 기성용이 맹활약했던 상황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기성용은 부상 이후 대회가 열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를 떠나며 본인의 소셜 미디어에 대표팀 은퇴를 암시하는 게시물을 남겼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2011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났듯 어느 정도 마음을 결정한 듯 보인다. 다만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은 부임 초기 기성용이 다음 월드컵(2022년)까지 필요하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향후 이청용과 기성용이 대표팀에서 재회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