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규 한국체대 교수가 1월 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빙상계 폭력·성폭력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준필 기자
1월 8일 전명규 한체대 교수의 ‘삼대장’ 사설 강사 가운데 하나였던 조재범 씨의 심석희 성폭행 의혹이 폭로된 뒤 또 다른 ‘삼대장’ 사설 강사 A 씨의 성추행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피해자는 “10대 시절이었던 2016년 A 씨가 자꾸 끌어안고 강제로 입을 맞췄다. 계속 밥을 먹자고 하고 극장에 가자고 했다. 그 사람이 너무 싫었다”고 1월 18일 ‘일요신문’에 밝혔다. (관련 기사: “돼지 같은 x, 폭언하며 강제키스” 빙상계 두번째 미투 피해자 단독 인터뷰)
빙상계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1월 21일 초강수를 뒀다. 그는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을 종목 단체에서 제명할 수도 있다”고 알렸다. 종목 단체가 대한체육회 소속에서 제명되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 그동안 조재범 씨를 두둔하며 전명규 교수의 조력자로 알려졌던 이 회장의 ‘꼬리 자르기’란 비판이 이어졌다. 이튿날 전 교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이제껏 빙상계 내부 문제를 제기해 온 ‘젊은빙상인연대’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갔다. (관련 기사: [단독]심석희 앞에서 “조재범 살려주겠다”고 말했다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1월 22일 한체대 소속 선수 및 강습생 학부모 사이에서는 쪽지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조재범 씨의 무고와 최근 빙상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젊은빙상인연대 폄훼 내용이 담겼다. 쪽지는 “빙상 학부모 여러분. 지금 조 쌤·심석희 언론 보도 내용이 일방적으로 심석희 얘기만 듣고 인격살인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빙상장, 락카서 우찌 성폭행을 하나요. 과장된 진술을 하고 있고, 언론도 일방적 주장에 대대적 홍보하고 이것이 현 선수들, 부모님들이 많이 피해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심석희를 향한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았다. “심석희 황제 훈련 받은 거 아닙니까. 조 쌤이 타 선수들 부러울 정도로 심석희만 애지중지 훈련 신경 쓰지 않았나요. 특히 심석희 아빠도 항상 훈련할 때 같이 지켜보고 했는데 우찌 링크장·로커서 성폭행을 당했다 하니 화가 많이 나네여”라며 “헬멧을 주먹으로, 아이스 하키채로 때린 거 다들 부모님들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 거 아닙니까. 그건 그 당시 선수들 집중해서 실력 향상하라는, 코치가 선수 잘 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거 아닙니까. 빙상 학부모님들 더 이상 기존학생 선수들 피해보지 않게 진실은 얘기합시다”라는 내용도 담겼다. (관련 기사: [단독] 전명규 사태 뒤 한체대 학부모 반응 “폭행은 실력 향상하라는 것”)
이제까지 학부모는 말 못할 피해자로 알려졌다. 허나 이 쪽지를 기점으로 일부 학부모는 ‘공범’이 됐다. 전명규 교수가 공고한 빙상 캐슬을 쌓아 올리는 데에는 ‘폭행도 눈감아주겠으니 성공만 하게 해달라’는 학부모의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 전명규 교수의 빙상 캐슬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① ‘한체대’ 유소년 빙상 엘리트 교육과 입시를 장악하다
한체대는 2003년 빙상장을 완공한 뒤 사설 강습반을 운영했다. 초중고교생 빙상인 가운데 엘리트 교육을 원하는 선수는 한체대 사설 강습생이 됐다. 강습비는 최근 기준 1인당 월 70만 원 정도였다. 이 선수 가운데 선택된 일부는 한체대 대학생이 됐다. 문제는 한체대가 특정 빙상 선수를 입맛에 맞춰 골라 뽑았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최상위권 선수를 정시로 지원토록 한 뒤 이 최상위권 선수가 한체대 수시에 지원했다는 소문을 퍼트려 아무도 수시 지원을 하지 않도록 만들고선 특정 선수를 수시로 먼저 뽑았다는 내부 폭로가 나온 까닭이다. 한체대는 우리나라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수시와 정시 모두 체육 특기생을 뽑을 수 있다.
복수의 전직 한체대 관계자는 “한체대 체육학과가 지난 2008년 하반기에 09학번 체육 특기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수시에 지원하려는 최상위권 선수를 수시에 지원하지 못하게 한 뒤 정시로 지원하도록 유도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서류 바꿔 치기를 준비했다는 내부 폭로도 이어졌다.
전직 한체대 관계자는 “당시 빙상 선수 가운데 최상위권 선수와 차순위권 선수를 모두 뽑자는 내부 합의가 있었다. 둘은 한체대에서 사설 강습을 받았던 선수였다”며 “최상위권 선수는 경력이 좋아 충분히 뽑힐 수 있는 선수였지만 차순위권 선수는 한체대 입학이 어려울 수도 있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상위권 선수가 성적이 좋으니 성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차순위권 선수부터 수시로 뽑고 최상위권 선수를 정시로 뽑도록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한체대는 차순위권 선수보다 우수한 경력의 선수가 소문을 무시하고 한체대에 지원할 가능성 역시 대비했다. 서류 바꿔 치기가 준비됐다. 전직 한체대 관계자는 “수시 지원 마감날 최상위권 선수와 차순위권 선수의 수시 지원서류를 모두 내가 직접 손에 들고 있었다. 소문을 무시하고 차순위권 선수보다 더 좋은 경력을 가진 선수가 지원하는 상황이 생기면 최상위권 선수의 지원서류를 접수하려는 목적이었다”며 “당시에는 인터넷 접수가 없었다. 서류만 접수 받았다. 마감 시간 5분 전까지 접수처에서 서류를 들고 대기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차순위권 선수의 서류만 접수했다”고 밝혔다. 실제 당시 한체대 입학권에 있었던 최상위권 선수는 동계체전 은메달 2개와 아시아 선수권대회 메달을 가지고 정시에 붙었다. 동계체전 은메달 1개만 가진 차순위권 선수는 수시로 먼저 한체대에 입성했다. (관련 기사: 한체대, 사전 합의로 특정 학생 선발 의혹 제기돼)
수업에 빠져도 졸업은 어렵지 않다. 이승훈은 2010년 3월 15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2009년 4월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어떻게 해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올림픽을 목표로 훈련을 했는데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앞이 캄캄했다. 다음 올림픽까지 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래서 운동을 중단하고 3개월 동안 학교 수업만 참석하며 휴식을 취했다“고 말했다.
한체대 특기생은 학기마다 4학점짜리 전문실기 수업을 모두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전문실기란 교수의 지도 아래 자신의 종목을 훈련하는 수업을 뜻한다. 평일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20분까지 3시간, 토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2시 20분까지 3시간 한체대 빙상장에서 전문실기 수업이 진행된다. A부터 F까지 있는 학점제 수업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승훈은 2009년 1학기 때 4학점짜리 전문실기 시간에 운동을 하지 않았다.
당시 이승훈 동기였던 두 선수는 “이승훈은 그 해 4월부터 7월 방학 때까지 교양과 전공 수업 등은 받았지만 전문실기 수업 때는 날마다 조퇴하며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일요신문’에 털어놨다. 이승훈은 2011년 2월 입학한 지 만 4년 만에 정상적으로 ‘칼졸업’했다. 조항민 옛 국가대표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2006년 한체대에 입학한 조 씨는 2010년 2월 칼졸업했는데 그는 2009년 9월부터 프랑스 국가대표 지도자로 활동했다. 한 학기를 빠졌지만 정상 졸업됐다.
② ‘국가대표’ 선발 승부, 운영권, 메달 제작권도 쥐고 흔들다
국가대표를 지낸 한체대 출신 선수 일부는 국가대표 지도자가 됐다. 전명규 한체대 교수가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권을 가진 빙상연맹을 오랜 기간 장악했었기에 어려울 게 없었다. 국가대표 지도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전 교수의 지시를 받아 지도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옛 국가대표 지도자의 문자에는 전 교수의 운동 지시가 세세하게 담겼다. 지난해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도 한체대 사설 강사 B 씨는 태릉선수촌에 잠입해 한체대 출신 국가대표 소속 선수 조련에 힘을 쏟기도 했다.
전명규 교수의 지시가 담긴 옛 국가대표 지도자의 휴대전화 문자
국가대표 선발전 등 승부 조작은 빙상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2010년 4월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빙상연맹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4월 국가대표선발전 3000m 슈퍼파이널 경기를 앞두고 일부 지도자와 선수는 서로 랭킹 5위 안에 함께 들어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있도록 상호 협조하고 시즌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2005년 4월 ‘짬짜미’에 동조했던 한 지도자는 “담합을 주도한 한 코치가 500m 종목 경기 시작 7~8분 전 선수들에게 순위를 정해줬고 이어 다시 2~3분전께 ‘알아서 마음대로 타라’로 했다”고 폭로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짬짜미를 벌인 지도자의 학교 소속 선수 부모는 당시 “경기를 뛰고 난 뒤 아들이 ‘미리 정해진 순위 때문에 앞으로 치고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었다’고 분해했다. 스트레스 탓에 아들이 정신적 공황상태까지 가 결국 학교를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경기에서 1등을 차지한 선수는 옛 빙상연맹 간부의 친척뻘 되는 선수였다. 전명규 교수에겐 자신이 선택한 선수를 1등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승훈이 대표적이었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과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 이승훈이 손쉽게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건 앞서서 바람막이를 자처한 ‘페이스 메이커’의 희생이 컸다. 페이스 메이커를 맡았던 복수의 선수는 ”이승훈을 1등 만들어 주라“는 전 교수의 지시를 듣거나 ”마지막 순간에 이승훈과 경쟁하더라도 네가 1등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지도자의 지시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관련 기사: 매스스타트 국가대표 출신들 “특정 선수 밀어주기 있었다” 미투 폭로)
③ ‘실업팀’ 운영에도 깊숙이 개입하다
실업팀 대다수는 전명규 교수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게 빙상계의 전언이다. 유소년 때부터 한체대, 국가대표 때도 전 교수의 손길을 탔던 이들은 실업팀 지도자로 가도 철저히 전 교수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빙상단을 비롯 여러 빙상 실업팀은 전 교수의 지배 아래 창단됐다. 옛 대한항공 빙상단 감독은 ”전 교수에게 지시를 받은 그대로 빙상단을 운영했다. 세세한 운동 일정을 모두 전 교수가 지시했다. 그러다 보니 선수단 전체가 자신의 말은 듣지 않고 전 교수의 지시만 들었다“고 했다.
실업팀은 소속 선수에게 일정 연봉을 지급한다. 선수의 ‘밥줄’을 쥔 셈이다. 그렇다 보니 실업팀 직행 티켓은 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실업팀 직행 티켓이 성폭력 의혹 등의 문제와 교환되는 사건도 있었다. 2012년 여름 한체대 사설 강사 B 씨는 자신이 지도하던 여자 선수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해 성추행을 시도했다. 화장실로 도망간 피해 선수가 부모에게 알려 큰 화는 피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이 비화된 건 2년이 지난 2014년이었다. 2012년 사건 직후 피해 선수와 전명규 교수 사이 모종의 거래가 있었고 사건은 묻혔다. 전 교수가 피해 선수에게 “실업팀에 가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며 회유해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실제 피해 선수는 실업팀을 갔다. 굴러온 돌 때문에 한 선수는 소속팀을 잃으며 이 사건을 세상에 폭로했다.
빙상계 입시와 메달 획득, 밥줄은 대부분 거대한 빙상 캐슬 안에서만 거래됐다. 빙상 캐슬은 어둡고 높고 공고해서 어떤 균열도 허락하지 않았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전명규 보좌하는 삼대장’ 숱한 추문에도 굳건히 버틴 까닭은? 전명규 한체대 교수를 보좌하는 ‘삼대장’은 최근 제기된 성폭력 문제의 중심에 섰다. 삼대장은 숱한 추문에도 굳건히 버텼는데 그 배경에는 한체대 빙상 캐슬이란 뒷배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심석희를 2014년부터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재범 씨와 심석희 폭로에 이어 제기된 미성년 선수 성추행 의혹을 받는 A 씨, 2012년 제자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 성추행을 시도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B 씨 등 삼대장의 공통점은 한체대 빙상장 사설 강사였단 점이다. 빙상 사설 강사는 지도자 자격증이 없더라도 선수를 가르칠 수 있는 일종의 빙상 과외 교사와 같다. 문제를 일으켜도 이들이 늘 당당했던 이유로 지도자 자격증을 상실하거나 징계를 받더라도 높은 급여의 일자리를 보장 받는 한체대 중심의 빙상 캐슬 구조가 지목됐다. 한체대에서 사설 강습을 받는 초중고생 선수반 70여 명은 달마다 70만 원 정도의 강습비를 냈다. 이 돈을 합치면 약 5000만 원에 이르렀다. 월급 500만 원짜리 일자리 10개는 만들 수 있는 금액이었다. 밥그릇을 쥔 전명규 교수는 삼대장의 든든한 뒷배가 됐다. A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피해 선수는 ”A 씨가 늘 말하는 게 있었다. ‘전 교수가 날 먹고 살게 해줬다. 전 교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B 씨는 2016년 억대 도박을 해온 사실이 발각돼 자격 정지 1년 징계를 받았지만 한체대에서 사설 강사로 계속 활동했다. 아예 한체대 소속 빙상단을 이끌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총지휘하는 모습까지 ‘일요신문’에 포착됐다. 2018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 때 한체대 빙상단을 총 지위했던 한체대 빙상장 사설 강사 B 씨. 징계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곧 취소가 되기도 했다. 억대 도박으로 자격 정지 1년을 받은 B 씨 이름은 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은 체육인 구제 명단에 슬쩍 포함돼 있었다. 전명규 교수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 |
[추후보도] 빙상 선수 A 씨에 대한 B 코치의 성추행 의혹은 검찰 조사 결과 기각 본지는 2019년 1월 29일 특종/단독면에 ‘한체대-국대-실업팀 손아귀에…전명규가 쌓아 올린 빙상 캐슬의 실체’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도에 언급된 빙상 코치(강사)가 “2019년 4월 검찰로부터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청취할 수 없고, 피의사실을 인정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것일 이유로 각하 처분을 받았다”고 밝혀와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