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지난해 11월과 6월 모 대기업을 퇴사한 홍 아무개 씨(31)와 정 아무개 씨(37)는 5월부터 11월까지 이러한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물품 사기 규모는 각각 홍 씨가 1억 5000만 원, 정 씨가 3000만 원 정도다.
피해자들이 제시한 홍 씨와 정 씨 신분증
두 사람의 사기행각과 관련해 경찰과 해당 대기업의 안일한 대처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홍 씨는 이 사기행각 뿐만 아니라 다른 사기 행위로 재판이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출국금지’ 조치조차 이뤄지지 않아 홍 씨는 지난 달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도주한 상태다.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한 경찰은 홍 씨 체포를 위해 인터폴과 협력해 적색수배를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은 홍 씨와 같은 수법으로 돈을 갈취한 정 씨를 경찰에 고소했지만 정 씨는 25일 현재까지 경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정 씨는 퇴사 이후 수개월이 흐른 최근까지 ‘대기업 직원’이라고 사칭하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정 씨를 곧 지명 수배할 계획이다.
해당 대기업은 늑장 대처로 피해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기업은 지난해 9월 대금만 지불하고 물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신고하고 나서야 두 사람의 사기행각을 알았다. 두 사람이 재직시절 대담하게 일과시간에 사기행각을 벌인데다가 이들 외에도 회사 판매점까지 끼어 있었다는 점에서 해당 대기업의 감시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홍 씨와 정 씨는 대기업 재직시절 경기도 오산시에 살면서 인근 평택사업장을 출퇴근했다. 두 사람은 심각한 도박 중독 상태에 빠져 빚에 허덕였다는 공통점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홍 씨는 해외 인터넷 도박 사이트인 ‘N’에 지난해 12월 나흘에 걸쳐 1억 원 넘는 돈을 송금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씨는 도박으로 집과 전 재산을 날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 씨와 정 씨는 멀쩡한 새 가전제품을 인터넷 중고제품 장터인 ‘중고나라’를 대기업 임직원 할인가에 구매대행 해준다고 속여 피해자들을 끌어 모았다. 이들은 대기업 판매점 직원들을 속여 물품을 먼저 받고 판매점에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에 구매자들에게 물품을 배송해주고 물품 값을 받는 수법을 동원했다.
이들은 거래 내역을 증거자료로 제시하면서 피해자들을 속였다. 특히 홍 씨는 “돈을 빌려주면 한 달 후 모두 상환해주고 TV도 무료로 주겠다”고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피해자들은 “설마 대기업 직원이 가전제품 한 두 개 때문에 양심을 팔아 사기를 치고 직장을 그만두겠느냐고 생각했다”며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두 사람이 공범관계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홍 씨가 경남지역 한 대기업 판매점 직원에게 가전제품 12점(2500만 원 어치)을 넘겨받아 대금을 치르지 않고 일부 피해자들에게 배송하고 물품 값을 받았던 과정을 살펴보면 두 사람이 공범관계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품 값 일부가 정 씨에게 지급됐고, ‘중고나라’를 활용했다는 점, 피해자들에게 거래 내역을 제시하는 등 두 사람의 사기수법이 동일했다는 것이다.
홍 씨는 피해자들의 신고로 인해 지난해 9월 해당 대기업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11월 최종 퇴직처리 됐다. 그런데 지난해 11월까지 범죄행각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홍 씨는 경찰 수사를 받고 회사로부터 징계절차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간 큰 사기행각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정 씨는 동료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빚을 돌려막다 적발돼 지난해 6월 퇴직 처리됐다.
피해자 리스트
특히 홍 씨의 사기행각은 물품사기 뿐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홍 씨는 애인 A 씨로부터 1억 1000만 원을 갈취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홍 씨는 2017년에도 동료를 상대로 한 ‘1억 원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모친, 다른 애인, 카드깡 업자 등으로부터 수억 원을 더 가로챈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 강사 A 씨는 홍 씨와 결혼을 전제로 1년 여를 교제했다고 밝혔다. A 씨는 “연하의 홍 씨는 화려한 언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정된 직장과 명문대학교 공과대를 졸업했기에 진지한 만남을 가졌다”고 토로했다. A 씨는 결혼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상황이 되자 홍 씨는 “부업으로 미용용품사업에 투자해 수익을 내고 있다. 내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거나 대출을 받을 수 없으니 돈을 빌려 달라”며 “투자한 5억 원을 상환하면 신혼집을 얻고 (지난해) 8월에 결혼하자”는 말로 현혹했다고 한다. 그렇게 A 씨는 “2017년 8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홍 씨에게 대출 등을 받아 돈을 빌려주다 보니 어느새 1억 1000만 원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빌린 돈 갚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던 홍 씨에게 A 씨가 사업의 실체를 요구하자 동업자를 소개했다고 한다. 바로 공범관계로 강하게 의심되는 정 씨였다고 A 씨는 밝혔다. 당시 정 씨는 A 씨에게 “홍 씨 (미용용품사업) 동업자가 맞다”고 했다.
홍 씨가 미국으로 도주한 사실을 알게 되자 A 씨는 정 씨로부터 “홍 씨와 부서 동료일뿐 개인적으로 잘 모른다. (미용용품사업) 동업자가 아니다. 홍 씨가 전화기를 몇 번 빌려 달라해 빌려줬던 기억만 있다”며 말을 바꿨다고 한다. 현재 정 씨는 일절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또한 홍 씨는 A 씨와 만나는 중에도 다른 여자 친구 B 씨를 만나면서 이른 바 양다리를 걸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 씨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지자 우연히 A 씨를 알게 된 B 씨는 “홍 씨를 3년간 만났으며 돈을 요구해 1억 원을 빌려주고 못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홍 씨는 경상도 지역에 사는 모친으로부터 수억 원을 송금 받았고, 사채까지 동원한 모친의 집과 재산은 결국 압류까지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홍 씨는 사채나 카드깡업자를 통해 돈을 빌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대기업은 전직 직원의 ‘개인 일탈행위’라고 선을 긋고 있다. 결제와 관련해 안심서비스 등이 있음에도 중고제품 사이트에서 물품을 구매한 피해자들의 잘못도 없지 않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은 전 직원들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9월 피해자들의 제보를 받고 확인해보니 일부 사실을 확인해 홍 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이후 정식 징계절차에 들어갔고 결국 퇴직 처리했다”며 “수사기관이 아닌 당사는 사건 발생 이후 조치와 관련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사건은 서울 동대문경찰서와 경기도 오산경찰서에서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홍 씨와 정 씨에 대해 수사중인 상황이라 구체적인 언급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