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6년여의 시간이 지난 2018년 12월, 부산지방법원에서는 이례적인, 그러면서도 매우 의미 있는 항의가 발생했다. 판사회의에서 법관들의 사무분담과 관사 배치 등을 정하는 데 있어 변호사시험 1회로 임용된 로스쿨 출신 판사들이 “납득할 수 없다”며 들고 일어선 것. 그들은 “2012년 4월 법조인 자격을 취득한 만큼, 2012년 1월 수료한 사법연수원 41기와 동일한 업무분담을 해 달라”고 주장했다. 쉽게 얘기하면 ‘1년 더 경력을 인정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로스쿨 출신 판사들이 5%에 불과한 상황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아 표결은 유보됐지만, 한 조직 안에서 조직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사안으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이 법원 내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이번 갈등은 그동안 대학이나 출신 지역 등으로 나뉘어왔던 갈등 양상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법조계는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규모’에서 밀려 제대로 된 얘기를 조직에 하지 못했던 로스쿨 출신들이 처음으로 “대우를 해 달라”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모인 판사들. 박정훈 기자
# 법원에서 시작된 반란 “사시, 로스쿨 존중은 하지만”
변시 1회 출신 판사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사법연수원 41기와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기수는 법원 조직 안에서 매우 중요하다. 법원은 보임이나 사건사무분담, 관사 등을 정할 때 기수에 따라 정한다. 소소하게는 법원 내 주차장 자리가 부족할 경우, 기수 순서대로 주차권을 나눠줄 정도다. 선배와 후배 사이도 검찰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하다. 2개월 늦게 들어온 탓에 서열에서 “1년 손해를 본다”는 게 변시 1회 판사들의 반발의 배경이다.
반면 로스쿨 대신 사법시험을 선택했던 41기, 42기 출신 판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판사 임용일 기준으로 따지면 사법연수원 42기와 함께 2016년에 부임을 했기 때문에 변시 1회 출신 판사들이 사법연수원 42기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반박이다. 이 같은 41기, 42기 사시 출신 판사들의 의견에 가까운 선후배 기수들도 지지를 보내는 형국이다. 결국 변호사 자격 취득 시점과 판사 근무 시작 시점 가운데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해야 하느냐가 쟁점이 된 것이다.
사실 사법연수원 출신과 로스쿨 출신 간 서열 갈등은 2012년부터 예고된 흐름이었다. 사법연수원 출신의 판사는 “사법연수원 출신들은 연수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친해진 인연이 있지만, 로스쿨 출신들은 그런 게 없지 않냐”며 “서로 어울린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좀 있더라, 조직 내부에서 로스쿨 출신과 사시 출신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나뉘어 뭉쳤다는 게 현실이고 최근 이슈 이후 사뭇 그런 분위기가 강화된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 그렇다면 검찰은? 대형로펌만 ‘41기’ 인정
법원과 달리 검찰은 조금은 로스쿨 출신들을 더 존중했다. 사법연수원 41기와 42기 사이에, 41.5기라는 ‘중간 기수 개념’을 도입했다. 같은 해 부임하더라도 먼저 들어온 변호사시험 출신들에게 선배 대접을 받을 수 있게 한 것.
하지만 현실에서 선배로 인정받는 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렸다. 기수가 다르다보니, 따돌림 아닌 따돌림 같은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기득권을 가진 사법고시 출신들이 로스쿨 출신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한 것.
2012년 1월에 치러진 제1회 변호사시험 당시 모습. 연합뉴스
사법연수원 30대 후반 기수의 한 검사는 “처음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로스쿨 출신 검사에게 ‘~씨’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우리는 개인적인 인연이 없더라도 사시 출신들끼리는 쉽게 형, 동생을 하거나 기수 기준으로 말을 놓는 편이었는데 기수가 중간에 떠버린 로스쿨 출신들한테는 더 거리감을 느낀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사법연수원 40대 초반 기수의 한 검사는 더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기도 했다. “솔직히 사시와 로스쿨로 나뉘던 시점에서, 사법고시를 패스한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는 로스쿨에 대한 반발 심리가 없는 게 이상하다”며 “들어와서 함께 일하다보니 능력이 있는 후배들도 있다는 것은 알지만, 불편한 마음이 완전히 없다고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로스쿨 기수 인정에 대한 차이로 드러난 갈등 양상이, 앞으로 더 불거질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오로지 로펌들만이 변호사시험 1기 출신들을 사법연수원 41기로 대우한다. 그러다보니 법원과 검찰, 로펌 업계 사이에서 족보가 꼬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로펌 관계자는 “변시 출신 변호사와 검사, 판사가 만났을 때 조직 내에서 동기로 대접받는 사시 출신 얘기를 하다보면 누군가에는 선배이고 누군가에게는 동기인 경우가 발생한다”며 “로펌과 검찰, 법원들이 보수적인 순서대로 변시 출신 법조인들에게 엄격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로펌이 그렇다고 변시 출신들에게 관대했던 것만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도 있었다. 사시 출신들과 입사를 경쟁하던 초반, 대우와 채용 규모가 달랐다는 게 로펌들의 설명이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당초 로펌에서 사시 출신과 변시 출신을 함께 뽑아야 했을 때 초봉 개념이 살짝 달랐다”며 “그 뒤에는 철저하게 실력으로 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로펌에서도 기수 대우와 달리 다른 차이는 존재했고 입사 규모도 사시에게 유리하게 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 늘어나는 로스쿨 출신 법조인…“지각변동은 이제 시작”
개국 이후 수십년간 이어져 온 폐쇄적 기수문화가 강력하게 남아있는 법조계에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이 입성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많은 법조인들은 “로스쿨 출신들이 임관 10년 차가 넘어가게 되면, 조금씩 조직 문화가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직은 조직 전체를 바꾸기는 규모가 작지만, 앞으로는 로스쿨 출신들이 문화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 고위직 관계자는 “솔직히 로스쿨 출신들이 처음 조직에 들어왔을 때 복장부터 근무태도 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탓에 혀를 차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결국 사시를 볼 친구들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로스쿨을 간 것 아니냐. 일을 잘 하고 조직에 잘 적응하는 친구는 사시랑 똑같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잘하기도 하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향후 검찰 및 법조계 조직은 로스쿨 출신들만의 문화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아직 간부급인 부장검사 위치에 로스쿨 출신이 없지 않냐”면서도 “15년 정도가 흘러서 로스쿨 출신들이 검사장 이상까지 진출하게 되면 오히려 사시 출신들이 소수가 돼서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로스쿨 출신들이 자기네들만의 문화로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기에, 그런 미래의 조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인사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