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 씨.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빅토르 안과의 인연… 이젠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안기원 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안 씨는 러시아 국적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의 아버지다. 최근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하는 빅토르 안의 소식을 접한 안 씨의 생각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는 격한 파도가 수없이 이는 한국 빙상계에서 ‘슈퍼스타’ 안현수를 키워냈다. 한국에서 안현수의 선수생활 지속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러시아 귀화를 추진한 것 역시 아버지 안 씨였다. 안현수가 ‘러시아 쇼트 황제’ 빅토르 안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이면에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 게 바로 안 씨다.
굴곡진 빅토르 안의 인생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안기원 씨. 그가 “빅토르 안과의 관계가 끝난 것 같다”고 체념한 이유는 무엇일까. 1월 24일 ‘일요신문’은 안 씨를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전명규 시대’ 첫 장 연 주인공? 안현수였다”
안기원 씨는 “2002년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 부임 초기. 한국체대 빙상부의 국제대회 실적 대부분을 담당한 건 안현수였다”고 주장했다. 사진=일요신문
안기원 씨와 빅토르 안의 관계를 살펴보기 전에 ‘빅토르 안 연대기’를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빅토르 안은 논란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친 21세기 한국 빙상 역사 중심에 선 인물인 까닭이다. 이런 평가에 안기원 씨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안 씨는 “여전히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대한 말이 많다. 안현수가 선발전 없이 대표팀에 들어간 까닭”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사실 2002년 안현수를 대표팀에 추천한 건 대한빙상경기연맹 전 부회장 유태욱 씨다. ‘비한체대 파벌’의 수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엔 비한체대 파벌이 빙상계 주류였다. 그리고 대표팀에 들어간 안현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한 인물이 바로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전명규 씨다.”라고 회상했다.
고등학생 안현수의 재능은 한국 빙상 양대 파벌의 시선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안현수 쟁탈전’의 승자는 한국체대였다. 한국체대가 안현수를 데려올 수 있었던 배경엔 전명규 교수의 ‘지극정성’이 있었다. 전 교수는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을 마친 뒤 한국체대 교수로 임용됐다.
안 씨는 “사실 주변에서 안현수의 한국체대 입학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전명규 교수가 지극정성으로 안현수를 향한 러브콜을 보냈다. 전 교수가 집에만 10번 정도 찾아온 것 같다. 심사숙고 끝에 안현수를 한국체대에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체대에 입학한 안현수는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에 올랐고, 세계선수권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안 씨는 “부임 초기 전명규 교수 실적 대부분을 챙겨준 선수가 바로 안현수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체대 빙상부는 안현수라는 스타플레이어 탄생을 계기로 급격히 성장했다. 안현수 후발주자로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 김보름, 심석희, 임효준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가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안현수 이후 한국체대가 한국 빙상 스타를 대부분 배출했다. 그때부터 한국 빙상의 ‘파벌 구조’가 무너졌다. 본격적으로 한국체대의 독주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안 씨의 회고다.
하지만 안현수와 한국체대의 ‘긴밀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안현수가 졸업 후 성남시청 실업빙상단 입단을 결정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안 씨는 “2007년으로 기억한다. 안현수가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전 교수가 ‘당시 안현수가 갈 만한 실업팀 창단을 준비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전 교수가 말한 실업 빙상단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다음에 전 교수 측이 추가적인 제안을 내놨다. ‘1년 동안 대학원에 재학하며 한국체대에 더 머물러 달라’는 제안이었다. 안현수 입장에선 선수 생활이 길지 않은데 실업팀 입단을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성남시청 빙상단 입단을 결정했다”며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이어 안 씨는 “(안)현수가 성남시청 빙상단 입단을 결정했을 때 전 교수가 제게 엄포를 놓았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 가 보세요. 어떻게 되나 봅시다’란 말이었다. 그런데 현수가 2008년 성남시청에 입단하자마자 큰 부상을 입었다. 부상을 회복한 뒤 한국 빙상계엔 더 이상 현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안 씨 말대로였다. 부상의 터널을 빠져나온 안현수를 받아줄 빙상장은 없었다. 2011년 한국 빙상계에서 ‘한국체대 독추체제’가 본격화 될 때의 일이었다. 안 씨는 “안현수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2011년, 전명규 교수가 안현수에게 코치직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향한 안현수의 의지가 강했다. 안 씨가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를 추진에 앞장섰던 이유다.
안 씨가 추진한 건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뿐이 아니었다. 아들이 은퇴후 살아갈 삶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안 씨는 러시아 측에 ‘은퇴 후 지도자 생활 보장 조건을 포함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 조건을 보장받으려 안 씨는 불철주야 협상에 매달렸다. ‘빅토르 안 러시아 귀화 관련 협상’ 최전선에 바로 아버지 안 씨가 있었던 셈이다.
안 씨의 고된 노력 끝에 안현수는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보장받는 조건과 더불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
# “빅토르 안의 한국체대행, 이해되지 않아… 서운함 넘어 배신감 든다”
서울 모처에 위치한 안기원 씨의 사무실. 그의 사무실엔 여전히 아들 빅토르 안 사진이 놓여있다. 사진=일요신문
그렇게 안현수는 빅토르 안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빅토르 안 부자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안 씨가 빅토르 안과 우나리 씨(현재 빅토르 안의 부인)의 교제를 반대하면서부터다.
심지어 안 씨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현장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아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안 씨는 “당시 빅토르 안에게 메시지가 왔다.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부인(우나리 씨)과 나를 만나게 하는 게 껄끄러웠다고 본다.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받은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2018년 9월, 빅토르 안은 한국 복귀 의사를 밝혔다. 9월 5일 러시아빙상연맹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회장은 “빅토르 안이 선수 생활을 그만둔다. 그는 가정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한국으로 돌아온 빅토르 안은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300’ 출연을 전격 결정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안 씨는 “빅토르 안은 국적을 바꿨다.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하는 건 본인이다. 빅토르 안은 러시아에서 생활해야 한다. 지도자 생활까지 보장돼 있는 상황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명분이 없다. 부모인 나조차도 빅토르의 한국행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명규 교수의 거점이라 불리는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 역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안 씨는 빅토르 안에게 연락을 시도했다고 한다. ‘일요신문’이 1월 18일 <[단독] ‘쇼트 황제’ 빅토르 안, 한국체대 빙상장 ‘플레잉 코치’ 활동 의혹… 전명규의 마지막 히든카드?> 제하의 기사를 보도하기 며칠 전 일이다.
안 씨가 빅토르 안에게 연락을 취한 사연은 이렇다. ‘일요신문’은 빅토르 안 관련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안기원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자 안 씨는 “마지막으로 빅토르 안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인터뷰에 응해도 되느냐”며 읍소했다.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빅토르. 아버지다. 언론에서 ‘네가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한다’는 내용을 취재 중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 사무실로 와서 이야기를 나누자.” “끝내 답이 없구나. 미련을 가지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 2019년 1월 안기원 씨가 빅토르 안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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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씨가 메시지를 남겼지만 빅토르 안의 답장은 없었다. 안 씨는 아들을 향한 마지막 부정(父情)을 놓아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1월 17일 안 씨는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일요신문’에 “취재하던 것, 마저 하시라”는 말을 전했다.
24일 안 씨는 “이제 아들(빅토르 안)과의 인연이 사실상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답장이 올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이젠 빅토르 안을 향한 마지막 미련을 떨쳐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빅토르 안의 막내동생(안현준, 용인대 입학예정)은 선수생활 내내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훈련하는 선수들과 경쟁했다. 그런데 그 선수들의 날을 빅토르가 갈아주고 있잖나? 냉정한 스포츠의 세계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서운하지 않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겠죠.”라며 못내 아쉬움을 내비췄다.
“어쩌면 서운함보다 배신감이란 단어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어요.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이 원망스럽기도 하지요.” 안 씨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 빅토르 안과의 인연에 ‘끝’을 고한 안기원 씨. 하지만 그의 사무실엔 여전히 빅토르 안의 사진이 놓여 있다. 2011년 러시아 귀화가 확정된 뒤 밝게 웃는 빅토르 안의 사진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