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에서 “앞으로도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말하며 주주권 행사에 무게를 실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입장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둔 대부분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상장사 주식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일요신문’이 시가총액 30위 기업의 국민연금 지분을 분석해봤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 시가총액 1~30위 기업의 국민연금 지분 현황
지난 24일 기준 코스피 시총 1~30위 기업은 삼성전자(보통주)-SK하이닉스-삼성전자(우선주)-현대자동차-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LG화학-포스코-삼성물산-SK텔레콤-네이버-한국전력-현대모비스-신한지주-KB금융-SK-삼성생명-LG생활건강-SK이노베이션-삼성SDS-삼성SDI-기아차-KT&G-LG-삼성화재-하나금융지주-S오일-LG전자-아모레퍼시픽-엔씨소프트 순이다.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의 주식을 개별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시총 5위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한 29개 기업에 대한 지분율은 모두 5%가 넘는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끌며 매년 수십조 원대 영업이익을 거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시총 1위와 2위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보통주 5억 9654만여 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율로는 9.99%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 주식은 6623만여 주, 9.10%의 지분율을 보였다. 국민연금은 시총 3위인 삼성전자의 우선주도 1277만 8825주를 보유, 1.55%의 지분을 확보해놓고 있다.
시총 4위인 현대자동차의 국민연금 지분율은 8.70%(1859만여 주), 시총 7위 LG화학의 지분율은 9.74%(687만여 주)다. 시총 9위 삼성물산 5.7%(1081만여 주), 시총 10위 SK텔레콤 9.22%(744만여 주)로 뒤를 이었다. 특히 삼성SDI와 엔씨소프트 경우 국민연금은 최대주주가 아님에도 각각 11.62% 11.05%로 지분율이 10%가 넘었다.
#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에 올라 있는 기업도 6곳이다. 시총 8위 포스코(지분율 10.72%·주식 934만여 주)를 비롯해 11위 네이버(10.00%·329만여 주), 14위 신한지주(9.38%·4500만여 주), 15위 KB금융(9.50%·3970만여 주), 23위 KT&G(10.00%·1373만여 주), 26위 하나금융지주(9.55%·2868만여 주)다.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에 각각 9~10%의 지분율로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국내 3대 금융사 지주사의 최대주주에 올라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금융권에서는 국민연금이 이들 지주사들의 최대주주임에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최근 몇 년간 경영진의 자질 논란이나 채용 비리가 터졌을 때 국민연금은 최대주주로서 문제제기를 하거나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국민연금 보유 지분 가치평가액 순위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의 평가액이 가장 높은 기업은 어디일까. 1위는 역시 시총대로 삼성전자(보통주)다.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5억 9654만여 주에 대한 평가액은 지난 24일 종가 4만 3050원을 기준으로 하면 25조 6812억여 원에 달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박정훈 기자
시총 7위 LG화학의 국민연금 지분 평가액은 2조 5230억여 원으로 세 번째 자리로 치고 올라왔다. 포스코 934만여 주의 지분 평가액은 2조 4710억 원, 현대자동차(1859만여 주) 2조 4165억여 원, SK텔레콤(774만여 주) 2조 168억여 원, 현대모비스(920만여 주) 1조 9724억여 원, 신한지주(4450만여 주) 1조 8667억여 원, 삼성SDI(817만 9490주) 1조 8445억여 원, KB금융(3970만여 주) 1조 8224억여 원 등으로 뒤를 이었다.
네이버의 경우 국민연금이 329만여 주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분 평가액은 4267억여 원으로 시총 30위 기업 중 30위를 기록했다.
# 총수 일가의 지분율과 국민연금의 지분율
대기업 총수들은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 지분을 확보, 그 회사를 통해 전체 계열사를 지배한다. 그러다보니 계열사에는 오너 개인의 지분이 많지 않다.
시총 1~30위 기업 중 총수가 있는 회사는 23곳이다. 이 중 총수 일가의 지분이 국민연금 지분보다 많은 기업은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삼성SDS, SK, LG, 아모레퍼시픽, NC소프트 7개뿐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오너 개인의 지분이 없거나 국민연금보다 낮다. 삼성전자 보통주의 경우 국민연금 지분율은 9.99%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분율은 4.1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율은 0.07%에 불과했다.
SK하이닉스 역시 국민연금 지분율은 9.10%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는 지분이 없다. LG그룹은 지난해 취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주사 LG에만 지분 15%를 보유했을 뿐 LG화학, LG생활건강, LG전자 등 계열사에는 지분이 없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차에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개인 지분이 국민연금보다 높은 곳이 없어 눈길을 끈다.
# ‘분식회계 논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국민연금 지분
국민연금이 시총 30위권 중 5% 이상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기업은 시총 5위 삼성바이오로직스뿐이다. 국민연금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지침에 따라 시장 영향력 등을 고려해 지분율 5% 미만인 특정 종목의 세부 보유 내역을 6개월 이전 정보만 공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4월 말 기준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203만 주(지분율 3.07%)를 가지고 있었다. 국민연금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이후에도 주식을 추가 매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유재중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연금은 금융감독원이 금융위원회에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을 ‘고의’로 판단한 이후에도 꾸준히 주식을 매입해 현재 거의 300만 주, 지분율이 4%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해명자료를 통해 “11월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지분율은 지난 4월 말보다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이 지난해 4월 공개한 203만 주에 머물러 있다고 가정하면, 보유 지분의 가치 총액은 지난 24일 종가(40만 1500원) 기준 8150억 4500만 원에 달한다.
#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우려 목소리
이 같은 점을 미뤄볼 때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한다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올라 있는 기업들은 경영자율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불거진다. 비록 문재인 대통령이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으로 한정하긴 했지만,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가능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영권 위협은 물론 경쟁력 악화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지난 22일 열린 경총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의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방침’에 대해 “상당히 걱정스러운 시각으로 보고 있다”며 “한진그룹에 대한 행사 방침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총은 앞서 지난해 7월에도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7%에 육박하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설 경우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 요인이 되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는 수탁자 책임 원칙에 따라 개별 기업의 경영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이 없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찬성의 뜻을 밝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오히려 그동안은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함에도 어떠한 권리행사도 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정치적 입김이 작용해 주주행사를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시장의 합리성 차원에서는 국민연금이 최소한의 개입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국민연금이나 문 대통령 역시 경영진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