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민정수석. 박은숙 기자
국토교통부 한 고위급 관료는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 약속을 취소했다. 참석자 중 기자가 포함돼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기자를 만났다가) 혹시라도 오해를 받을까 나가지 않았다. 자칫 (그 기자가 근무 중인) 언론사에서 우리 부처 뉴스가 나가면 곤란해질 수 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느냐고 했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다. 친구 만나는 것도 눈치를 봐야만 하는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기획재정부 소속 관료는 수시로 개인 메시지함을 지운다고 털어놨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이 관료는 “청와대와 총리실 감찰반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 신재민 전 사무관 때문인지 몰라도 기재부가 타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면서 “휴대폰을 제출했다가 업무 관련해선 문제가 없었는데, 부적절한 개인 사생활로 징계를 받은 공무원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휴대폰 정리를 자주 한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사례는 최근 공직사회 모습을 반영한다. 문재인 정부는 설 연휴를 앞두고 공무원 기강 잡기에 돌입했다. 그 강도가 예년에 비해 높아 관가 분위기는 빠르게 얼어붙었다. 친문 핵심 인사는 “청와대부터 모범을 보일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청와대 직원들 기강 해이부터 막겠다는 얘기였다. 그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지 않느냐”면서 “노영민 비서실장이 청와대로 들어온 후 가장 강조하는 것도 이 부분”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1월 25일 퇴근하는 직원들을 상대로 불시에 가방 검사를 했다. 외부인으로부터의 선물 수령, 공문서 유출 여부 등을 집중 단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직원들을 상대로 특별 감찰활동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또한 주간 금주령도 떨어졌다. 홍보·정무 파트 등 내근직이 아닌 부서는 낮에도 반주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앞서 1월 21일엔 민정수석실, 국무총리실, 감사원 3개 기관이 참여하는 ‘공직기강 협의체’를 만들었다. 조국 민정수석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 출범 3년 차를 맞아 음주운전, 골프접대 등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기강 해이가 심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런 기강 해이가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무사안일로 이어진다면 정부가 역점 추진하고 있는 정책 사업 추동력이 크게 약해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범정부 차원의 공직사회 기강 잡기가 이뤄지고 있는 셈인데, 이에 대해 앞서의 친문 핵심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연이은 폭로로 곤욕을 치렀다.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정권이 흔들릴 정도였고, 반대파에 빌미를 줬다. 이런 가운데 통상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나타나곤 했던 권력 누수 조짐까지 감지됐다. 이를 선제적으로 잡지 못하면 대통령 국정 운영은 힘들어진다. 바로 레임덕이 올 수 있다. 경질 여론이 거셌던 조국 민정수석 유임도 이런 차원에서 결정됐다. 여러 업무 중 공직사회를 감찰하고 비리를 적발하는 데 최우선 중점을 둘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관가 시선은 곱지 못하다. 겉으로는 공직사회 기강 해이를 막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빨대’를 색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정권 출범 후 2년 넘게 정권 차원의 적폐청산 작업에 시달렸는데, 또 다시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하느냐는 불만도 뒤를 따른다. 고압적인 조사 행태로 도마에 올랐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전 특별감찰반)이 과거보다 더 ‘독을 품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공무원들은 대부분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장관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태우 신재민 폭로가 설령 옳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앞으로 누가 조직과 정부의 잘못된 점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면서 “힘과 권력으로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빨대를 찾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요즘 세상에 언론사 등에 제보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공직사회 특성상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빨대는) 더 많아질 것이다. 모든 정부에서 그랬다”라고 말했다.
공직사회 내부 갈등이 더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기재부의 또 다른 관료는 “적폐청산 과정에서 직원들이 반으로 쪼개졌다.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동료가 순식간에 적폐로 내몰렸다.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못 할 일이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니 어쩌겠느냐”면서 “그런데 공직 감찰을 한다면서 또 공무원들을 겨누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 경우 심하면 직원들끼리도 서로 감시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권 낙하산과는 아예 말을 안 섞는다”라고 전했다.
공직감찰을 진두지휘하는 조국 민정수석의 ‘령’이 과연 제대로 설 수 있을지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앞서의 전직 장관은 “(특감반) 이름을 바꾼다고 쇄신이 아니다. 특감반 사태에서 과연 누가 책임을 졌느냐. 책임자는 자기 잘못이 없어도 책임을 지라고 있는 자리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라면서 “조국 수석이 아무리 기강을 외쳐도 이게 먹힐지 모르겠다. 윗선의 근본적인 대책이나 철저한 반성 없이 제보자를 색출하거나 일선 관료들만 잡겠다고 나서면 부작용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