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이후 여야 진검승부의 막이 오를 전망이다. 특히 지난 한 달간 탐색전을 벌였던 여야는 ‘포스트 설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한 총력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당장 보수 재건의 분수령인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제3지대에선 바른미래당 최대 주주인 안철수 전 의원 등판론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오는 4·3 재보선 전후로 펼쳐질 정계개편 시계추에도 한층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집권 3년 차 증후군이 엄습한 문재인 대통령도 최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포스트 설 민심의 관전 포인트는 ▲문 대통령의 집권 3년 차 증후군 극복 여부 ▲한국당 당권 및 보수 재편 ▲안철수 등판론을 비롯한 제3지대 정계개편으로 압축된다. 인물 구도는 ‘문재인 vs 황교안 vs 안철수’다. 이 중 핵심은 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회복 여부다. 집권 3년 차를 맞은 기해년은 문 대통령에게 ‘꺾이는’ 해다. 오는 11월이면 임기 반환점을 돈다. 민주정부 3기 성공을 위한 골든타임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과반 회복이냐, 40% 선 붕괴냐.’ 설 민심 이후 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회복 여부는 이 지점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기해년 한 달간 성적표는 ‘중간 이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1월 넷째 주(1월 22∼24일 자체 조사·25일 발표·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46%로, 한 주 동안 1%포인트 하락했다.
‘한국갤럽’의 한 달간 지지도(1월 1주 차 없음)는 ‘48%→47%→46%’로, 단 한 번도 과반을 돌파하지 못했다. 최근 3개월간 최고치(지난해 10월 2주 차 64%)와 비교하면, 2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문 대통령의 잇따른 경제행보에도 지지율 반등은커녕 하방경직성이 고착했다. 같은 기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40%→40%→37%’였다.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과거 사례에서 보면 우리 당 지지율의 하방 지지선은 20% 초·중반대”라며 “이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탄핵 이후 기울어진 운동장이 다시 역전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외치 이슈가 집권 1∼2년 차 때처럼 내치 이슈를 상쇄할 수 있느냐다. 외치의 대형 이벤트는 ‘세기의 핵 담판’인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남북 정상회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줄줄이 예고돼 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남북공동기념사업은 이른바 ‘문재인 발 역사바로세우기’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신남방(아세안·인도), 신북방(러시아·유라시아) 허브 역할론은 진보 지지층 결집에 가속페달을 밟는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2기 비서진 개편에서 ‘친정 체제’를 구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친문(친문재인) 직계인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정권의 ‘호위무사’로 세워 역대 정권마다 홍역을 치른 3년 차 증후군의 ‘출혈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데드크로스’(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선 현상)를 맞았던 문 대통령이 경제행보를 하면 지지도가 상승했지만, ‘손혜원 파문’ 등이 불거지면 어김없이 지지층이 이완했다”며 “답은 나와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월 2일 신년회를 시작으로 ▲3일 서울 성동구 수제화거리 방문 ▲7일 중소·벤처기업인들과의 간담회 ▲15일 기업인과의 대화 ▲23일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 등 1월 한 달간 경제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대통령이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은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내치 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이후 문 대통령 지지도 하락세는 뚜렷하다. 같은 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지만, 이후 김태우 발 청와대 특별감찰반 사찰 의혹, 신재민 폭로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데드크로스가 처음 나타났다. 이후 ‘포스트 문재인’을 노리는 2인자의 반기도 노골화했다. 탈원전을 둘러싼 청와대와 송영길 민주당 의원의 갈등, 당 순혈주의를 비판한 박영선·우상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광화문광장 설계안’을 둘러싼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정면충돌은 여권 내부 권력다툼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적절치 않다”며 두 인사에게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날렸다. 이뿐만 아니다. ‘손혜원·서영교’ 도덕성 논란은 갈 길 바쁜 여권의 발목을 잡았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와 관련해 “의원 개개인의 이탈행위라기보다는 당의 구조적인 문제”라며 “독선이나 오만 등을 끊어내지 못하면 후속타는 계속 터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청 실력이 이 국면에서 바닥을 드러낸다면, 설 이후 최대 10명에 달하는 개각 인선, 4·3 재보선 등에서 최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보수대연합을 노리는 한국당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1차 분기점은 2·27 전당대회다. 한국당 당권 경쟁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입당으로 판이 커졌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그는 신년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차기 대권후보 1위에 올랐다. 보수진영 계륵으로 전락한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도 출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문제는 ‘전당대회 후유증’이다. 이미 계파갈등 조짐은 보수진영 전체를 덮을 기세다. 애초 ‘황교안 등판론’에 불을 지핀 쪽은 유기준 의원을 필두로 한 일부 친박(친박근혜)계였다. 한국당 2·27 전당대회의 최대 변수도 ‘친박계와 황교안의 전략적 연대’였다. 하지만 친박계인 홍문종·김진태 의원은 황 전 총리를 향해 “본인 스탠스를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탄핵에 동조한 사람” 등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친박계가 ‘황교안 옹립’을 놓고 분화 수순을 밟을 경우 판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황 전 총리의 ‘친박계 표 분산’과 ‘친박계·황교안 단일화’에 따라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비박(비박근혜)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황 전 총리를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등 3인방에게 ‘전당대회 링에 오르지 말라’고 압박했다. 김무성 한국당 의원도 김 위원장과 함께 ‘황교안 끌어내리기’ 협공 작전에 가세했다. 비박계 중진 의원은 “황 전 총리가 전당대회에 나올 경우 계파 갈등만 불거질 것”이라며 “이 경우 보수 혁신이 제대로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김 위원장의 전대 불출마 선언에 대해 “대권 출마 선언”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당 당권 경쟁이 계파 극복은커녕 대권 경쟁만 조기에 불붙이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정계개편의 한 축인 제3세력의 변수는 ‘안철수 역할론’이다. 최근 바른미래당 내부에선 ‘안철수 등판론’을 펌프질하는 인사들이 부쩍 늘었다. ‘손학규 체제’ 출범에도 당 지지도가 5% 안팎에 머물자, 안 전 의원의 공간을 열어줬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안 전 의원이) 총선 전에 돌아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안 전 의원과 함께 당 최대 주주인 유승민 의원도 본격적인 재개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7개월 만에 잠행을 깨고 2월 7∼8일 경기도 양평의 한 호텔에서 열리는 바른미래당 연찬회에 참석한다. 친유승민계인 류성걸 전 의원과 황영헌·김경동 전 바른미래당 지역위원장의 한국당 입당이 불허된 이후 유 의원이 재개 신호탄을 쏜 만큼, 제3지대 정계개편을 주도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안 전 의원의 귀국 시점은 오는 8∼9월께로 전망된다. 안 전 의원과 함께 독일로 떠난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안식년도 올해 8월 끝난다. 하반기 국면은 사실상 총선 체제다. 독일에서 다당제 연구를 한 안 전 의원은 귀국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고리로 당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 역시 변수는 ‘문 대통령 지지도 하락 여부→한국당 2·27 전당대회→4·3 재보선’ 등이다. 이 연쇄작용의 결과에 따라 안 전 의원이 ‘제3지대 정계개편을 주도하느냐, 보수대연합으로 이동하느냐’의 포지션을 결정할 전망이다. ‘문재인 vs 황교안 vs 안철수’ 구도로 좁혀진 ‘포스트 설 민심’ 정국에서 이기는 쪽이 집권 3년 차를 지배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