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까지 국회의원회관 지하 1층 의원 전용 주차장에서 살았던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왼쪽부터). 사진 제공 = 임형찬 전 국회 비서
[일요신문] “의원님, 그거 아세요? 여기 지하 주차장에 고양이가 살아요.” 2016년 늦여름 어느 날 외부 일정을 소화한 뒤 사무실로 향하던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좌진의 이 한마디를 듣고 국회의원회관 지하 1층 의원 전용 주차장으로 향했다. 국회의원은 외부 일정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갈 때 의원회관 정문에서 먼저 내린다. 그런 다음 보좌진이 빈 차를 지하 1층에 가져다 놓는 게 보통이다. 한 의원은 그날 지하 1층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냥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였다.
도착해 보니 지하 1층엔 어린 고양이 3마리가 살고 있었다. 각각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불렸다. 권미혁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전동명 비서가 붙인 이름이었다. 20대 국회가 3당 체제로 시작된 데에서 착안된 작명이었다. 고양이를 아끼는 국회 보좌진이 번갈아 물과 먹이를 줘가며 키우던 터였다.
구조 당시 사진. 국민의당(위), 새누리당(좌), 더불어민주당(우). 사진 제공 = 임형찬 전 국회 비서
3마리를 모두 구조하고 보니 고양이 한 마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었다. 한쪽 다리를 계속 절었다. 한정애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병원으로 보내 건강검진을 받도록 했다. 상태는 심각했다. 사고로 요도가 파열된 상태였다. 요도가 터져 소변이 계속 한쪽 뒷다리 근육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퉁퉁 부었다. 바로 수술이 이뤄졌다. 뒷다리 근육에서 소변을 제거하고 생식기 일부를 거세한 뒤 파열된 요도를 배로 연결해 소변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큰 수술이었다. 무사히 끝났다.
한정애 의원과 이 고양이 3마리를 돌봐 온 국회 보좌진은 고양이 입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민의당’이 가장 먼저 주인을 찾았다. ‘국민의당’은 소설가 홍형진 작가에게 가 ‘안나’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새누리당’으로 불렸던 녀석은 ‘고순이’라는 이름으로 노혜경 시인의 품에 안겼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유독 마음이 쓰였던 녀석이었다. 3마리 가운데 대장 노릇을 하며 애교로 ‘구걸’을 주도한 뒤 다른 2마리가 늘 먼저 음식을 먹도록 배려하는 착한 고양이였기에 안타까움은 더 컸다.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 의원은 ‘냥줍(길고양이를 줍는 행위)’ 뒤 집에 들여 봤는데 10년 된 반려견 해피와의 갈등이 너무 심해 쉽지 않았다. 한 의원은 이런 ‘더불어민주당’을 보며 못내 마음 아파했다.
입양된 세 고양이의 최근 모습. 국민의당이던 안나(위), 새누리당이던 고순이(좌), 더불어민주당이던 거련이(우). 사진 제공 = 임형찬 전 국회 비서
한정애 의원은 지하 1층 고양이뿐만 아니라 국회 전체에서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아보니 생각보다 국회 주변에서 ‘로드 킬’ 당하는 녀석도 많았고 이를 치우느라 국회 미화원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의원은 바로 우윤근 전 국회사무총장에게 전화했다. “밥 좀 사주세요!”
설득을 시작했다. 한정애 의원은 우윤근 전 국회사무총장에게 대뜸 “국회 안은 모두 총장님 관할이 맞죠?”라고 질문을 한 다음 “그렇다”는 우 총장의 답변을 받자마자 말했다. “국회 안에 사는 고양이도 그럼 관리 대상이 돼야 하는 게 맞겠네요?” 반박할 논리는 별로 없었다. 한 의원은 계속 원하는 바를 말했다. “별 거 안 바랍니다. 국회 고양이 급식소를 만들게 해주세요.”
2017년 1월 4일 국회 안에는 그렇게 고양이 급식소가 생겼다. 높이 150㎝나 되는 급식소였다. 의원회관 건물 옆과 후생관 주변 등 4곳에 놓였다. 한정애 의원과 동물유관단체대표자협의회의 작품이었다. 동물유관단체대표자협의회와 한국고양이수의사회에서 개당 50만 원쯤 하는 고양이 급식소 설치비용과 사료, 중성화수술 비용 등을 지원했다.
국회 주변에 자리한 고양이 급식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회 사무처는 고양이 급식소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줄 알고 난색을 표명한 바 있었다. 한정애 의원이 나섰다. “관리를 요청하는 게 아니다. 관리는 우리가 하겠다. 그냥 그 시설이 국회 사무처가 인정한 공식 국회 고양이 급식소라는 명분만 달라. 국회 주변에 무언가 ‘시설’이 설치되면 ‘이거 뭐야?’하고 치울 수 있지 않은가. 그것만 막아 달라는 거다. 급식소는 나와 고양이 좋아하는 우리 보좌진이 관리토록 하겠다.” 그렇게 국회에는 고양이가 드나드는 쉼터가 마련됐다.
한정애 의원의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에 고양이 사진이 처음 올라온 건 2016년 9월 9일 ‘더불어민주당’ 구조 사진이었다. 그 전까지 올라왔던 동물은 주로 한 의원이 키우는 10살 난 하얀 푸들 ‘해피’ 등 강아지가 전부였다. 의원회관 지하 1층에 살던 고양이를 구조한 뒤부터 한 의원 인스타그램은 고양이로 가득한 ‘냥스타그램’이 됐다. 고양이의 지분은 날로 커져갔다. 국회의사당 인근 고양이 모두가 한 의원의 모델이 됐다.
한정애 의원이 원하는 고양이와 더불어 사는 세상은 아주 간단하다. 고양이 급식소를 인정해 주고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것 하나다. 그는 “전통적으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게 고양이를 ‘좋아해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다만 고양이 급식소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고양이는 먹이가 정기적으로 공급되면 한 곳에서만 밥을 먹는다. 주변을 돌며 사람에게 피해되는 행동은 되레 급식소가 생기면 줄어든다. 고양이 급식소는 사람과 고양이가 부딪힐 확률을 가장 적게 만드는 장치”라고 했다.
1월 25일 인터뷰 도중 국회 고양이 소개에 여념 없는 한정애 의원. 박은숙 기자
정치인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는 한껏 연출한 사진으로만 치장돼 있기 마련이다. 정치 홍보 수단으로 동물이 또 빠질 수 없다. 정치인은 철만 되면 개와 고양이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곤 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정애 의원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한정애는 달라. 그 사람은 진짜야. 인스타그램 가 봐.”
고양이 3마리를 구조한 이래 한정애 의원의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은 총 156장이었다. 이 가운데 고양이 관련 사진은 73장이었다. 지분율 46.7%다. 고양이를 안고 홍보용으로 찍은 사진도 아니다. 온통 국회 주변을 떠도는 고양이를 담은 사진이다. 사진뿐만 아니었다. 한 의원 사무실 창고에는 고양이 사료가 한가득 차 있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