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대화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메신저 텔레그램. 사진=텔레그램
[일요신문] 이쯤 되면 메신저계 ‘스위스 비밀 금고’라 불려도 무방할 듯하다. 외국계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 이야기다.
‘텔레그램’은 최근 많은 논란 속에서 신 스틸러로 거듭났다. 기해년 들어 불거진 논란에서 텔레그램은 단골손님이었다.
조재범 전 코치 성폭행 의혹,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를 둘러싼 빙상계 논란, JTBC 손석희 대표이사 관련 진실 공방 등 세 가지 논란의 공통분모는 바로 텔레그램이다. 텔레그램은 빠지지 않고 비밀 이야기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추세다.
‘은밀한 대화의 장’으로 급부상한 텔레그램. 이 메신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일요신문’이 살펴봤다.
# ‘비영리 메신저’ 텔레그램 개발자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메신저를 만들 것”
‘러시아 페이스북’이라 불리는 VK의 개발자 파벨 두로프. 그는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메신저’를 목표로 텔레그램을 공동 개발했다. 사진=파벨 두로프 소셜 미디어
텔레그램은 독일 법인이 운영을 담당하는 인터넷 모바일 메신저다. 개발자는 러시아의 ‘두로프 형제(니콜라이 두로프, 파벨 두로프)’다. 텔레그램은 특이하게도 비영리 목적으로 개발됐다. 덕분에 상업적인 이유로 이용자의 편의성을 저해하지 않는다.
전 세계 메신저 업계가 ‘수익성’에 집중하는 가운데 텔레그램의 비영리 경영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텔레그램이 비영리 목적으로 메신저를 운영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개발자 파벨 두로프가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부호인 까닭이다.
파벨은 ‘러시아 페이스북’이라 불리는 브콘탁테(VK) 개발자로도 유명하다. 파벨은 ‘디지털 포트리스’란 펀드를 통해 텔레그램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댄다.
텔레그램의 기술적인 부분은 또 다른 개발자 니콜라이 두로프의 몫이다. 수학자인 니콜라이는 텔레그램 프로토콜(통신 시스템이 데이터를 교환하려 사용하는 통신 규칙) ‘MTProto’를 개발했다.
두 형제가 자본과 기술을 협력함으로서 텔레그램은 온전한 비영리 메신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두로프 형제는 “텔레그램으로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다. 앞으로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이들의 각오는 텔레그램 홈페이지에도 명시돼 있다.
“광고를 넣을 생각이 없다. 외부 투자를 받을 생각도 없다. 다른 기업에 판매할 계획 역시 없다. 우리의 목적은 많은 사용자를 모으는 게 아니라 사용자에게 필요한 메신저를 만드는 것이다.”
# 철저한 보안성… ‘비밀 이야기’의 신 스틸러 텔레그램
빙상계 각종 논란에 휩싸인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 그는 조재범 전 코치 측근에게 “텔레그램을 설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일요신문DB
“너는 텔레그램 안돼? 이거 깔아. 카카오톡은 자료가 남아 있는데 이거는 서버가 독일에 있어서 찾을 수 없어. 비밀 대화가 가능해.”
2018년 10월 23일 ‘일요신문’이 <전명규 녹취 공개 ② “심석희 기자회견 막았다. 조재범 문체부 감사도 나가지 말랬다”> 제하 기사로 공개한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의 녹취록 일부다. 전 교수는 조재범 전 코치 측 관계자에게 “텔레그램을 설치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1월 10일 SBS는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가 심석희에게 ‘텔레그램을 설치하라’고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조 전 코치가 성폭행 증거를 없애려는 의도로 텔레그램 사용을 강요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텔레그램의 신 스틸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JTBC 손석희 대표이사와 관련한 진실 공방에서도 텔레그램이 등장했다. 진실 공방의 주체인 김웅 기자가 손 대표이사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한 것이다.
세 가지 ‘메가톤급 논란’에 텔레그램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세 가지 논란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비밀 소통창구’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램은 뛰어난 보안성을 자랑하는 메신저다. 텔레그램엔 일반 대화와 비밀 대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비밀 대화 기능이다.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 기능은 2014년 11월 전자프론티어재단(EEF)이 발표한 ‘보안메시지 서비스 평가표’에서 7점 만점에 7점을 받았다.
텔레그램 비밀 대화 기능이 자랑하는 철저한 보안성의 비결은 ‘2중 암호화’에 있다. 텔레그램은 서버와 이용자 사이의 보안, 이용자 간의 보안에 있어서 ‘2중 암호화’를 적용했다. 제3의 경로로 다른 이용자의 메시지를 열람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여기다 텔레그램은 독일에 서버를 두고 있어 한국 사정당국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감청영장이 나오더라도 비밀 대화 기능으로 오간 텔레그램 메시지는 열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메신저인 셈이다.
텔레그램은 ‘비밀 대화의 장’으로 본격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엔 공직자들 사이에서 “공공기관 수뇌부가 텔레그램 가입을 부추긴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 정도다. 이런 현상은 비단 공공기관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비밀이 보장되는 소통 수단 ‘텔레그램’의 가치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생활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 텔레그램 개발자 파벨 두로프의 말이다. 텔레그램의 ‘철저한 사생활 보호’ 순기능 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는 뚜렷하다. 논란의 파도가 몰아치는 시대. 메신저계 ‘스위스 비밀 금고’라 불리는 텔레그램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