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작가는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계 인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8일 ‘일요신문’은 화천 이외수문학관에서 만난 그에게 문재인 정부와 최근 한국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집중적으로 물어봤다. 그는 “정치가들은 온 국민을 청맹과니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8일 오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감성마을 이외수문학관에서 소설가 이외수 작가가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문재인 정부 3년차를 맞았다. 어떻게 보나.
“김일성, 김정일을 겪었고 현재 김정은 시대인데 남북 관계 문제에서만은 상당한 진전을 보고 있지 않나. 불안정했던 현실에서 평화적인 모습이 보이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남북 관계를 지탄하고 비난하고 흠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내가 사는 지역 화천이 3개 사단이 주둔한 군사 지역이다. 작년,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은 뻑하면 미사일 쏘아 올리고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를 일삼아 왔다. 그때마다 모든 경제는 위축되고 군사 지역인 화천, 홍천, 인제, 양구 등의 불안정성이나 경제는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전쟁으로 불안정한 나라에 투자를 선뜻 할 수 있는 자본가들이 있나. 그런 위협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외국 자본가들이 한국을 투자처로 주목하고 있다는 발표를 봤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에 점수를 더 얹어주고 싶다.”
―구체적으로 잘한 점을 꼽아보자면 어떤 게 있나.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앞으로는 병사들에게 근무 시간 이외에는 핸드폰 사용을 허용한다고 한다. 위수지역도 확장했다. 군인들의 인권이나 권익을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부정적으로만 보지말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볼 필요도 있지 않나.”
―일각에서는 전방 GP 철수 등 문재인 정부가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어쨌든 전쟁 위협이 더 불안감을 느끼지 않겠나. 이제 전쟁을 전제할 때가 아니라 평화를 전제해야 한다. 어느 것이 더 평화에 가까운지 생각해야지 어느 것이 더 위기에 가까운지를 염두에 두는 시대는 갔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데 앞장 서지 말고 이제는 희망에 찬 구상이나 잘하는 부분에 대해 기대하고 박수칠 줄 아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정치 하시는 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너무 경제 타령만 하지 말자는 거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경제 타령하는 정부, 정치가를 줄곧 만나며 살아왔다. 늘 정부는 국민들로 하여금 오랜 기간 동안 허리띠 졸라 매기를 강요했다. 올해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경제력 10위에 올라 섰다. 그런데 행복 지수도 10위인가.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아간다. 경제력은 올라가는데 행복지수는 바닥친다면 설득력 없는 것 아니냐. 물질의 풍요가 행복으로 직결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정치가들은 시종일관 정치의 결과물을 경제에다 두고 있다. 온 국민을 청맹과니로 알고 있다. 이젠 가치관을 수정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치관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나.
“다소 고전적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전근대적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가슴 안에 사랑이 가득할 때 행복해진다.’ 지금은 사랑보다는 투쟁, 시기, 질투가 넘친다. 특히 정치하는 분들이 보여준 모습은 수십 년 전부터 암투, 음모, 모략이었다. 이제는 그분들부터 바뀌어야 된다. 가장 모범되어야 할 분들이 권모술수, 개인의 영달, 이기심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국민 속이기를 밥 먹듯 보여줬다. 무릎 꿇고 엎드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더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했던 것이 내 생애에 수십 번도 더 된다. 이제는 그분들도 인간다운 면모,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한다.”
―최근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앞서 말한 가치관 수정만으로도 저절로 해결되리라 본다. 사회적으로 반문화적이고 비인도주의적인 문제는 가치관의 잘못에서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외수 작가는 난민 문제는 성급한 부분이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난민 이슈가 사회 논란이 됐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 난민을 수용할 만큼 여유있는 나라가 아니다. 물론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끌어 안는 것은 좋다. 문제는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나 유입이 원만하거나 이상적인 상태를 못 갖추고 있다. 이 상태에서 난민까지 들어오면 야기되는 혼란이나 문제가 많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조금 숙고해야 하지 않나.”
―최근 사회를 보면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분노가 더 커지는 것 같다.
“우리가 엄동설한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촛불 들고 나갔다. 초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 불이 켜져 어둠 속에 갇혀 있고 소외된 다른 사물을 빛의 세계로 끌어낸다는 것이다. 아직도 소외되고 설움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분들이 숱하게 많다. 이런 모습이 불의나 악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 있다. 그런 반발심이 분노를 키울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 갈등 심화의 일환으로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혐오 표현도 커지고 있다.
“악플러들까지 다양성의 범주에 넣고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가지는 거룩함이 있는데 그걸 해칠 때는 반성이나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나도 많은 팔로어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정말로 이건 인간도 아니다 싶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처음에는 회유도 하고 여러가지 방법도 써본다. 심지어 만나서 짜장면도 사줘가며 설득하고 타일러도 봤지만 소용없는 거의 병적인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공권력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선거 때 되면 더 한다. 정치가 사람을 망치는 경우를 숱하게 봤다.”
―트위터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관련됐다는 의혹이 나오는 ‘혜경궁 김씨’ 논란 어떻게 봤나.
“나는 좀 더 지켜봐야 된다는 생각이다.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양쪽 주장이 너무 첨예하고 극명하기 때문이다. 지켜보고 있다.”
―본인이 과거 정부 블랙리스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나는 블랙리스트로 한 10여 년간 고생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안 풀린 것 같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 해체를 선포해줘야 한다. 예술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더 나아지려는 모색도 보이지 않는다. 문화예술 육성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정부처럼 보인다.”
―블랙리스트 해제가 아직 안됐다고 생각하나.
“공식 해제를 아무도 안 해줬지 않나. 하다 못 해 광화문에서 잔치라도 한판 벌여주던지 살풀이라도 한 번 해주든가 해야 한다. 아직도 그때의 공포라든가 위축감이 홀가분하게 해소된 게 없다.”
이외수 씨는 전 정부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에 문재인 정부가 더 앞장서주길 바랐다. 사진=최준필 기자
―배우 김민선 씨나 코미디언 김미화 씨는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화이트리스트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금 풀렸다는 생각은 들지만 공식화되어 있지는 않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분들은 피해를 다 입었다. 전 정부에서 활동의 제약 등 여러 가지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가까스로 TV에 몇 번 얼굴 비친다고해서 심리적이나 생활 전반에 걸쳐 자유로움이 보장된 게 아니다. 과거 정부로부터 피해를 받은 게 있는 만큼 이번 정부가 어느 정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블랙리스트 이후 대응에 아쉬움을 밝히셨다.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노력을 어떻게 보고 있나.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청산을 공언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진행됐나 보면 여전히 적폐는 청산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언론이나 법조계부터 학술, 종교, 예술 등 사회적으로 이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가 되어야 하는 분야들이 오히려 부패 촉진제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학교나 스포츠에서도 썩을 대로 썩은 모습이 표면화되고 있다. 조직력이 원체 막강하고 오랜 인습, 악습, 폐단이 고착화돼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 의지나 분노를 헤아릴 줄 아는 정부가 됐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에 일정 부분 실망하고 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방송에서 ‘문재인 정부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은 부패한 건 썩었다고, 발효된 건 익었다고 그럽니다. 부패한 건 인체를 해롭게 하고 발효한 건 인간을 이롭게 만든다. 김치나 된장, 과일 같은 음식들이 발효됐을 경우 익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부패나, 발효는 둘 다 시간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은 부패나 발효라고 단정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가 아닌가 싶다. 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얘기를 했다. 가장 상식적인 것들이 말살된 경우가 많았던 전 정부들에 비하면 기대하는 마음은 더 크다. 양심, 정의, 민주주의 등 많은 것들이 부패가 되었는데 부패를 다시 발효로 되돌릴 수 있는 그런 기대와 여유가 필요하다. 너무 서둘러 정부를 자꾸 압박하거나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에 당부를 한다면.
“문화, 예술이 꽃 피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면 한국의 위상도 올라간다. 적폐청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현실적 어려움은 있겠지만 의지나 결단이 부족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유치원 문제 등이 터졌을 때를 보면 참 실망할 정도로 여러 가지를 살피며 결단력을 보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추친할 건 추진했으면 좋겠다.”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분류가 되는데 진보가 나아갈 방향은 어떤 것인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인간답게 사유하고 행동하고 인간 대접을 받는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가치관의 수정, 이것이 진보가 해야 할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