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을 남긴 카타르와의 아시안컵 8강전.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대한민국 축구의 아시아 정상 도전이 또 다시 4년 뒤로 미뤄졌다. 유럽 등 다양한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감독, 국내외 최고 선수들을 끌어 모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아시안컵 8강에서 패배했다.
대표팀은 지난 25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이로써 대표팀이 아시안컵 우승컵을 들지 못한 기간은 63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다. 여러 악재가 있었고 카타르가 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겨야 하는 경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큰 저항 없이 카타르의 4강 진출을 무기력하게 바라봤다.
# 어느 때보다 높았던 기대감
과거 한국축구는 아시안컵을 등한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생과 실업선수 위주의 명단으로 예선에 나서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상황이 달라졌다. 대표팀은 본격적으로 아시안컵 우승을 노렸다. 그럼에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경험했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성적에서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07년부터 3개 대회에서 3위→3위→준우승으로 성적을 냈다. 아시안컵 트로피가 대한민국에 성큼 다가온 듯 했다.
최근 대표팀의 상황도 기대감을 갖게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이후 부임한 파울루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 이전까지 치러진 평가전에서 패배를 잊었다. 칠레, 우루과이 등 만만치 않은 팀들을 상대로 했던 경기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 역시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안정적인 모습으로 수비진을 이끈 중앙수비수 김영권. 사진=대한축구협회
오랜 시간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은 불안한 수비였다. 매 대회, 매 경기 수비에서 불안한 장면을 연출했다. 무실점을 기록한다 하더라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했던 지난 2011년 당시에도 무실점 행진을 벌였지만 수비 라인이 자주 교체되며 안정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진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본선까지의 여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벤투 감독 체제에서도 파나마라는 비교적 약체를 상대로도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잃어 2골을 내준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안정감을 보였다. 박문성 SBS 스포츠 해설위원도 이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대표팀은 그동안 불안했던 수비가 김영권-김민재 라인을 내세우며 안정시킨 성과가 있다”면서 “벤투 감독의 축구는 수비가 기본이 돼야하는 축구다. 물론 원하는 축구가 다 구현이 되지는 않았지만 수비면에서는 특별히 꼬집을 부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失) - 반복되는 ‘건강 이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대회 16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쓴 이후 A대표팀은 환희보다는 슬픔에 잠길 때가 많았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던 연령별 대표팀과 달리 A대표팀은 월드컵, 아시안컵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매번 선수들의 ‘건강 이슈’가 발목을 잡았다. 이번 대회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황열병 예방주사 접종 시기가 논란이 됐다. 주사 후유증으로 대회 직전 진행된 미국 전지훈련의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2015 아시안컵에선 선수들이 집단 식중독을 앓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개막을 목전에 두고 강도 높은 체력훈련인 ‘파워프로그램’ 진행으로 갖가지 의견이 쏟아졌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치러도 부족할 메이저 대회를 온전히 치러내기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회에선 개막 직전 부상을 안고 있던 나상호가 결국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급박하게 이승우를 이탈리아에서 호출하며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김진수와 홍철의 컨디션 난조는 같은 포지션의 두 선수였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팠다.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약속이나 한 듯 부상 선수가 속출했다. 기성용과 이재성이 첫 경기 이후 쓰러졌고 이후 구자철, 권경원, 정승현 등이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토너먼트에선 황희찬도 부상을 입어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는 투입할 수 있는 벤치 멤버가 몇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대표팀의 부상·컨디션 관리 능력에 대해 의문 부호가 달렸다. 물론 선수의 부상은 돌발적인 변수로 통제가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유사한 상황이 수년째 반복되며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는 대회 기간 내 재활트레이너가 중도에 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더욱 부각됐다. 재활트레이너 2명이 재계약 관련 문제로 대회 도중 귀국했고 대한축구협회는 대체 인원을 파견했지만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김판곤 협회 부회장이 지난 24일 현지에서 직접 기자 간담회를 열고나서 “행정적 실수”임을 인정해야했다.
재활트레이너 교체와 선수들의 부상을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잡음이 나오며 분위기를 해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부회장도 “대회 중 이런 이슈로 팀과 팬들에 부담을 드렸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2018 러시아 월드컵 직전까지 A대표팀에서 활약을 펼치던 권창훈. 사진=대한축구협회 부임 후 첫 메이저 대회인 아시안컵을 아쉽게 마무리 지었지만 벤투 감독은 아직 부임한지 갓 5개월이 지난 감독이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체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그는 부임 직후 선수 구성과 관련해 아시안컵까지 선수 파악에 나설 시간이 부족함을 언급하며 “월드컵, 아시안컵, 청소년월드컵 등 최근 대회에 나선 선수들을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향후 선수 발탁의 풀이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또한 대표팀은 이번 아시안컵을 마치고 세대교체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수년간 대표팀을 지탱해온 선수들이 작별을 예고했다. 구자철이 카타르전 직후 대표팀 은퇴를 직접 이야기했다. 기성용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시사했다. 같은 세대 이청용 또한 대표팀 유니폼을 벗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벤투 감독도 귀국 현장 인터뷰에서 “선수 의사를 존중한다”는 말을 남겼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이른바 ‘런던세대’로 불리던 구자철, 기성용, 이청용 등이 대표팀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히 이들의 포지션을 대체한다는 개념보다는 다른 팀으로 거듭나야 한다. 벤투 감독의 전술 완성도가 완전하지 않은 시점에서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0여 년간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해온 이들 3인의 평균 A매치 출장 수만 평균 90여회다. 올림픽 등 연령별 대표로 범위를 넓히면 이들의 경험치는 대표팀 내 절대적 수준이다. 이들의 포지션이 미드필드에 몰려있다는 것 또한 주목할 점이다. 향후 벤투 감독의 시야 확장이 점쳐지며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미드필더들에게 시선이 쏠린다. 향후 대표팀 미드필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있는 첫 주자는 권창훈이다. 프랑스 디종에서 활약 중인 그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활약이 기대됐지만 부상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 소속팀 주축 자리를 다시 꿰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소년 시절부터 유럽에서 성장한 선수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이들이 당장 구자철, 기성용 등의 자리를 메울 것이라는 시각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테스트를 해볼 가치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 발렌시아 하부팀 소속 이강인은 최근 1군 경기에 나서는 빈도가 늘었다. 7경기에서 434분을 소화, 그의 기용이 단순한 테스트 차원을 넘어섰음을 증명하고 있다. 스페인 지로나의 백승호도 최근 스페인 1군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로나 1군의 비유럽 선수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그는 최근 3경기에 출장했다. 3경기의 상대 모두가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였기에 큰 주목을 받았다. A매치 16경기 출전 기록이 있는 권창훈과 달리 이강인과 백승호는 이제 갓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선수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현재와 같은 활약이 지속된다면 곧 이들이 벤투 감독의 레이더망에 포착될 것으로 보인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