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과 전명규 교수의 재결합의 연결고리로 ‘나리팩’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일요신문]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의 갈지(之)자 행보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2011년 한국 쇼트트랙의 대들보 안현수는 러시아 귀화를 선택했다. 빅토르 안으로의 변신이었다. 그가 귀화한 이면엔 ‘한국 빙상 카르텔’에 대한 염증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18년 9월, 빅토르 안은 한국 복귀를 전격 결정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가정 문제’였다. 러시아 빙상연맹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회장이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빅토르 안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19년 1월 ‘일요신문’은 <[단독] ‘쇼트 황제’ 빅토르 안, 한국체대 빙상장 ‘플레잉 코치’ 활동 의혹… 전명규의 마지막 히든카드?> 제하 기사를 통해 빅토르 안의 ‘플레잉코치’ 의혹을 처음 제기한 바 있다. 모순적인 대목이었다. 한국 빙상 카르텔에 누구보다 상처가 많은 빅토르 안의 행선지가 ‘카르텔의 중심’으로 알려진 한국체대였던 까닭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한국 국민들은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에게 변함없는 성원을 보냈다. 하지만 빅토르 안의 ‘한국체대 복귀설’이 일자 국민 여론은 혼란에 빠졌다. 어딘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빅토르 안의 ‘갈지(之) 자 행보’에 해답이 될 만한 또 다른 정황이 포착됐다.
제보자 A 씨는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의 품으로 돌아온 이유는 ‘가정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며 “빙상계 거목 둘이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우나리 씨(안현수 부인)가 생산하는 ‘나리팩’이 연결고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A 씨가 제기한 ‘나리팩 특혜‘ 의혹의 핵심은 무엇일까. ‘일요신문’이 짚어봤다.
# 2017/2018 ISU 쇼트트랙 월드컵 로컬 후원사 ‘Nari’, 선정 과정은 깜깜이
‘2017/2018 ISU 4차 쇼트트랙 월드컵’ 당시 목동빙상장 트랙 내부에 ‘Nari’ 광고판이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 빙상연맹은 빅토르 안에게 ‘지도자 생활 평생 보장’이란 파격적 대우를 약속했다.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측이 ‘코치 빅토르 안’에 제시한 보수는 월 2만 5000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빅토르 안이 한국행을 선택한 것은 러시아 측에서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빅토르 안의 마음은 다시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를 향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와 관련해 빅토르 안의 부친 안기원 씨는 “빅토르 안이 우나리 씨와 결혼을 한 뒤 ‘다시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 쪽 노선을 타는구나’라고 느꼈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을 느낀 건 안 씨뿐이 아니었다. 빙상계 일각에선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로 돌아온 배경에 부인 우나리 씨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화장품 업체 ‘Nari’ 홈페이지 회사소개란에 걸려 있는 우나리 씨와 빅토르 안의 사진. 사진=Nari
그러면서 B 씨는 2017/2018 ISU 4차 쇼트트랙 월드컵(4차 월드컵) 이야기를 꺼냈다. 2017년 11월 서울 목동빙상장에서 열린 국제대회였다.
“4차 월드컵은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은 대회였다. TV 생중계까지 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국제대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빙상인들이 고개를 갸웃할 만한 상황이 펼쳐진다. 빅토르 안 부인 우나리 씨가 운영하는 화장품 회사 ‘Nari’의 광고판이 떡하니 등장한 것이다. 빙상인들은 ‘뭔가 있다’란 것을 직감했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했다.” B 씨의 말이다.
대회 당시 빙상연맹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빅토르 안의 부인이 운영하는 화장품 회사 ‘Nari’ 4차 월드컵 로컬 후원사로 선정됐다. ‘Nari’는 이번 대회에서 현금과 현물을 후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Nari’가 4차 월드컵 로컬 후원사로 선정된 과정과 관련한 빙상연맹의 공식적인 언급이 없었다. 빙상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전명규 교수가 ‘Nari’의 후원사 선정에 힘을 보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4차 월드컵이 열리던 2017년 11월은 전 교수의 힘이 막강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다. 빙상연맹 부회장 겸 평창올림픽 부단장직을 수행하며 빙상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까닭이다.
빙상계에선 “Nari를 후원사로 선정한 것은 특혜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입찰 절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로컬 후원사 선정 사실이 알려지기 앞서 빙상연맹은 ‘4차 월드컵 티켓 판매 대행업체 선정’, ‘4차 월드컵 수송업체 선정’ 등 2건과 관련해 공식 입찰을 진행했다. 로컬 후원사 선정 관련 업무는 빙상연맹의 마케팅 대행사가 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Nari’가 후원사로 선정된 배경엔 여러 가지 의문이 있다. 대회 당시 Nari는 마스크팩 사업을 론칭한지 3개월이 조금 넘은 신생기업이었다. ‘빅토르 안 부인이 운영하는 회사’란 점을 제외하면 특별한 점이 없는 기업이었다. ISU가 개최하는 국제대회에 신생기업이 후원사로 참여하는 일은 드물다. 이와 관련해 B 씨는 뼈 있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만약 Nari가 빅토르 안 부인의 회사가 아니었어도, 4차 월드컵 로컬 후원사로 선정될 수 있었을까? 대다수 빙상인은 이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 ‘나리팩 후원’ 전후로 포착된 빅토르 안의 한국체대 복귀 사전포석 정황
2011년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빅토르 안은 2015년부터 줄곧 한국체대에서 개인훈련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2017/2018 ISU 4차 쇼트트랙 월드컵 로컬 후원사로 신생 화장품 업체 Nari가 선정된 사건의 상징성은 뚜렷했다. 이때부터 “빅토르 안이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빙상계에서 떠돌던 소문은 더욱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빙상 지도자 C 씨는 “사실 4차 월드컵때 Nari가 로컬 후원사로 선정되기 전에도 빅토르 안의 한국체대 복귀를 예측할 만한 실마리는 충분했다”고 주장했다. C 씨는 ‘일요신문’에 “빅토르 안이 러시아인이 된 뒤 한국체대 개인훈련에 참가한 시점을 주목하라”고 귀띔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빅토르 안이 러시아로 귀화한 뒤 처음으로 한국체대 빙상장 훈련을 재개한 건 2015년 12월이었다. 빅토르 안은 2015/2016 시즌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개인훈련에 매진했다.
이때도 우나리 씨의 이름이 등장한다. 당시 우나리 씨는 출산을 2주 정도 남겨둔 상황이었다. 빅토르 안은 공식적으로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려 귀국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빅토르 안과 전명규 교수를 둘러싼 ‘갈등 논란’은 본격적으로 해빙무드에 돌입한다.
2015년 12월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빙상연맹 관계자는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과 빅토르 안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오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에서 훈련하겠느냐”고 언급했다. 빅토르 안이 공식석상에서 전명규 교수와의 불화설을 일축하기 시작한 시기 역시 이때부터다.
그리고 2016년 3월 18일, 빅토르 안은 한국체대 합동강의실에서 ‘개교 38주년 기념 자랑스런 한국체대인 상’을 수상한다. 2017년 여름 빅토르 안은 다시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올림픽 대비 몸만들기’를 개시했다. 이후 빅토르 안은 2018년 1월 ‘맥라렌 리포트(러시아 도핑 파문 관련 조사 보고서)’에 이름을 올리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때까지도 한국체대에서 개인훈련을 지속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빅토르 안과 전명규의 재결합… 효과 보기도 전에 갈라설까
빅토르 안과 전명규 교수. 사진=일요신문 2018년 9월 한국 복귀를 선언한 빅토르 안은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빙상인들이 “빅토르 안이 쇼트트랙 훈련과 더불어 선수들의 날을 정비하는 ‘플레잉코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빅토르 안과 전명규 교수가 다시 의기투합했다’는 가설에 방점을 찍는 의혹이었다. 하지만 두 거물급 인사의 의기투합은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명규 교수는 빙상계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서며 한국체대 대내외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3월로 예정된 전 교수의 ‘안식년’도 전격 취소됐다. 한국체대 교수회의에서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선 전 교수의 안식년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린 까닭이었다. 한편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 빙상장에 계속 남아있을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빅토르 안의 유력한 차기 행선지로 중국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빙상계 소식통은 “왕멍 코치가 이끄는 주니어 팀이 빅토르 안에게 코치직을 제의했다”고 귀띔했다. 한국-러시아-한국을 거친 빅토르 안이 다시 중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빙상 카르텔’의 중심에서 풍운의 선수 생활을 보낸 빅토르 안. 그는 한국 빙상계 카르텔 격파 선봉에 설 만한 몇 안 되는 유력 인사다. 하지만 빅토르 안이 선택한 노선은 ‘혁신’과는 정반대 양상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할 유력 정황 근거가 바로 ‘카르텔의 중심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와 재결합설’이다. “가정적인 이유로 한국행을 결심했다”는 빅토르 안의 선택엔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가 뒤따랐다. 많은 빙상 지도자와 선수, 학부모들은 “빅토르 안이 한국체대 빙상장으로 복귀하면서 ‘불사조’라 불리는 전명규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개인의 영광을 목표로 한 빅토르 안의 삶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에 따른 책임 역시 빅토르 안의 몫이다. 빅토르 안은 한국과 러시아 두 국가 모두에게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끊임없이 ‘개인과 가족의 안위’에 따라 명분 없는 행보를 이어간 까닭이다. 빅토르 안의 선수 생활 마지막장이자 지도자 생활 첫 장이 우리 사회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