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이러한 내용을 대표에게 보고했고, 변호사와 1000억 원가량의 돈을 투자받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A 씨는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마음으로 변호사를 만났다”면서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얘기를 들으니 믿음이 갔다. 우리가 확인을 해보니 그 변호사가 말한 외국인 투자자는 홍콩에서도 잘 알려진 회사였다”라고 귀띔했다. A 씨에 따르면 계약 체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00억 원가량이 회사 계좌로 입금됐다고 한다.
부동산과 건설업계에선 이 돈의 출처를 두고 수많은 뒷말이 나왔다. 유력한 정치권 인사가 조성한 비자금이 해외를 거쳐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는 설도 그 중 하나였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검에선 이 돈과 최순실의 연관성에 대해 확인 작업을 했지만 별다른 실적은 거두지 못했다. 본지가 A 씨에게 연락을 취해 온 변호사, 그리고 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홍콩계 회사에 대해 장기간 취재한 것 역시 여러 의혹들이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돈의 흐름이 석연치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우선 A 씨와 변호사 간 작성된 계약서와 입출금 내역 등을 통해 드러난 투자자의 정체는 홍콩계로 알려진 외국계 사모펀드의 한 자회사였다. 이 자회사는 2014년 7월경 설립됐다. 한국 부동산 프로젝트 투자를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졌을 개연성이 높은 대목이다. 이 외국계 사모펀드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지난해 12월 국내로 들어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세회피지역에서 여러 차례 거액을 송금한 고객이 있었다. 2012~2015년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쪽에 돈 관리를 맡겼다. 정확한 액수는 밝히기 어렵지만 내가 회사를 나오기 전 (2016년)까진 1000억 원대였다. 우리도 그 돈이 어떻게 조세회피지역으로 흘러들어갔고, 또 누가 진짜 주인인지 알지 못한다. 고객 측에서 한국 부동산 투자를 원했고, 이를 위해 자회사를 만들었다. 투자 규모가 클 경우 이런 방법이 있긴 하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우리 회사에 계좌를 개설한 이는 중국인이었지만 실제 돈의 소유주 한국인이었다. 차명계좌인 셈이다. 계좌에 적혀 있는 중국인은 우리도 잘 아는 브로커다. 계좌를 관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자다. 대부분 ‘검은 돈’이다. 떳떳하면 왜 브로커를 통하겠느냐. 그 브로커가 우리 쪽 임원에게 자신이 만든 계좌의 주인은 ‘한국인’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 한국인 돈이 여러 경로를 거쳐 조세회피지역 페이퍼컴퍼니로 유입됐고, 다시 우리 쪽으로 들어왔다는 설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한국인이 해외에서 세탁한 돈이 결국 국내 부동산 투자에 사용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인물은 시행사 임원 A 씨에게 먼저 접촉해 온 변호사다. 홍콩 현지에선 이 변호사가 계좌 진짜 주인의 대리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앞서의 사모펀드 전직 임원은 “계좌를 만들 때 중국인 브로커와 함께 한국인 변호사가 나타났었다. 그가 실제 주인과 브로커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A 씨 역시 “(그 변호사가) 여러 번 자신은 소개만 하는 것이고 돈 주인은 따로 있다고 언급했다”고 했다.
정치권, 특히 한 전직 대통령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역시 이 변호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가 전직 대통령 최측근 인물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최측근은 전직 대통령의 자금 관리인으로 거론된다. 변호사가 과거 법무팀 소속으로 근무했던 기업들은 그 전직 대통령 임기 때 특혜설에 휩싸였던 곳이기도 하다. 한 변호사는 “그 변호사가 전직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법조계에선 익히 알려져 있는 얘기”라고 귀띔했다.
이런 정황들은 전직 대통령이 최측근을 통해 해외 비자금을 조성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이 전직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은 기자로부터 이런 내용들을 전해들은 뒤 “거론되는 최측근과 변호사가 오래 전부터 VIP의 정치 자금을 관리했던 것은 맞다. 선거를 치를 때 큰돈이 필요하면 어김없이 그들이 움직였다”면서 “돈을 모으고 관리, 집행하는 일은 전적으로 둘을 포함한 소수가 도맡았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또 무슨 과정을 거쳐 세탁이 됐을까. 자금의 주인이 누군지와 더불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부적절한 돈’일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자금추적을 전문으로 했던 한 검찰 인사는 “전형적인 비자금 세탁 경로다. 해외를 거쳐 페이퍼컴퍼니까지 갔다가 다시 국내로 들어온 돈을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비자금을 만드는 방법으로 활용된다”고 말했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이 돈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면서 자금 흐름을 쫓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5월 해외범죄수익환수합동조사단(단장 이원석 부장검사)을 꾸려 유력 인사들의 해외 재산 추적에 착수한 바 있다. 그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자금 추적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실패했던 사례가 대부분”이라면서 “일단 국내에서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 것 같다. 이 정도 규모의 돈 세탁은 전문가 조력 없인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들을 상대로 관련 첩보를 모으는 한편, 부동산 프로젝트 투자에 관여한 변호사 등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