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과 마찬가지로 농심신라면배에서 한국은 박정환 혼자 상하이로 출격한다.
박정환이 갑자기 슬럼프에 빠진 걸까? 그러나 국가대표팀 감독 목진석은 “최근 부진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항상 이길 수는 없다. 잠시 이러다가 또 자신의 바둑을 보여주는 기사다. 무엇보다 최근 박정환의 바둑이 변하고 있다. 두터움에 대한 이해가 한 차원 더 높아진 모습이다. 현재 그의 바둑 수준은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해있다”라며 강한 신뢰감을 표시했다.
#2월 출시, 박정환 업그레이드판 기대하라!
황금돼지해를 기념해 특별 대담을 한 돼지띠 프로기사들은 “지난 2018년은 인공지능 바둑이 상용화된 첫해다. 바둑 기사들은 모두 AI를 깊이 이해하고 흡수하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AI를 통해 가장 많은 비밀을 채굴한 기사가 박정환과 신진서라고 생각한다. 특히 박정환은 AI 출현 이전부터 인공지능과 가장 흡사한 기풍이어서 흡수력이 남달랐다. 2019년은 정말 기대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공부량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기사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생각이 박정환 실력을 의심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요즘 뭔가 달라졌다. 박정환이 새로운 바둑 세계에 적응하는 기간이라고 본다”라면서 “이번 농심신라면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박정환은 외로웠다. 세계무대에서 또래 기사들이 보조를 맞추지 못해 혼자 한국바둑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주 컸다. 지금은 신진서와 신민준이라는 양 날개가 생겼다. 이제는 박정환이 져도 한국바둑이 무너진 게 아니다.
2019년 한국바둑을 이끌어갈 투톱인 박정환(오른쪽)과 신진서.
최근 신진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다는 바둑팬도 많지만, 신진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사다. 이번에 준우승 두 번 한 경험은 미래를 위해 ‘백신 주사’를 맞았다고 보면 정확하다. 지난 1월 백령배 4강 출국 전 신진서에게 “혹시 백령배 결승에 올라가 다시 천야오예를 만나면 어떡하나?”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신진서는 “결승에서 세 판이나 뒀는데 이제 다 파악했죠. 천야오예는 전형적인 중국바둑 스타일이고, 더는 지지 않는다”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애석하게 백령배 결승에선 천야오예가 아닌 커제와 만났다. 마지막에 커제와 대결에서도 패했지만 여기서 무엇을 깨닫고 얼마나 발전했을지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다.
#‘오관참장’ 마지막 관문은 ‘커제’
제2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최종 3차전은 2월 18일부터 22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다. 작년 11월 말 벌어진 2차전(본선 5국~9국)까지 국가별 남은 선수는 한국 1명(박정환), 일본 1명(이야마 유타), 중국 4명(당이페이, 구쯔하오, 스웨, 커제)이다. 판윈뤄, 퉈자시, 롄샤오, 커제까지 중국 선수구성만 다를 뿐 딱 2년 전 박정환이 직면한 상황과 똑같다. 지난 18회 농심배도 7연승 한 판팅위를 박정환이 막았고 3차전에 홀로 출전했다. 당시 박정환은 본선 10국에서 이야마 유타를 이겼지만, 중국 판윈뤄와 겨룬 11국에서 패해 우승트로피를 중국팀에 넘겨줬다.
농심신라면배에서 박정환이 ‘오관참장’에 나선다. 그 마지막 상대는 커제(사진)가 될 것인가.
물론 이번에도 험로다. 첫판부터 일본 일인자 이야마 유타를 넘어야 한다.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중국 당이페이와 대결할 가능성이 크다. 당이페이는 유연하게 균형을 잘 잡고 큰 약점이 없는 기사다. 그 뒤의 구쯔하오도 펀치력이 매섭고, 스웨도 이기기 아주 까다로운 기사로 정평 나 있다. 모든 고비를 넘어도 마지막 관문에는 중국 최강기사 커제가 있다.
커제는 간명하게 두는 스타일이다. 일감에서 자신이 편안하고 익숙한 길을 빠르게 찾아낸다. 기복이 없어 쉽게 불리해지지 않는다. 또 만만치 않은 형세가 되면 오히려 승부집중력이 더 높아진다. 대부분 기사가 이런 커제에게 초중반부터 쉽게 무너지지만, 박정환은 다르다. 커제와 최종 대결까지 간다면 사실 실력보다 체력이 문제다. 판팅위는 7연승을 거뒀지만, 1차전 3연승 후 한 달을 쉬고 나와서 2차전에서 4연승을 더했다. 선수 면면을 떠나서 5연승 자체가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다. 그래도 박정환이기에 모두 이기고 ‘오관참장’ 영웅으로 귀환하는 스토리를 기대해본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