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멤버 3명이 포함된 다국적 걸그룹 트와이스.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본인 멤버 3명이 포함된 다국적 걸그룹 트와이스의 성공으로 발판이 마련된 JYP엔터테인먼트는 ‘일본판 트와이스’의 준비를 마쳤다. 전원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걸그룹을 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걸스 그룹 프로젝트(GIRLS GROUP PROJECT)’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JYP와 일본 소니뮤직이 공동으로 진행하게 된다. 박진영 JYP 대표프로듀서는 “1단계의 K팝은 한국 콘텐츠를 수출하는 것이었고, 2단계는 해외 인재를 발굴해 한국 아티스트와 혼합하는 것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해외에서 직접 인재를 육성해 프로듀싱하는 것”이라며 프로젝트 목적을 밝힌 바 있다.
앞서 JYP는 처음 선보였던 한일 걸그룹 트와이스로 일본에서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다. 트와이스는 동방신기와 카라 이후 다소 주춤했던 일본 내 한류 열기에 다시 불을 지피면서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일본의 유명 연말 방송 ‘홍백가합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K팝 걸그룹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YG보석함’을 통해 데뷔를 앞둔 YG의 신인 보이그룹. 일본인 멤버가 포함됐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앞서 2PM이나 원더걸스 등으로 일본에서도 알려진 JYP라는 대형 기획사에 일본인 멤버가 데뷔했다는 것은 K팝에 대한 일본 내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도 일조했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로 이어지다가 6년 간 얼어붙어 있던 K팝 한류가 부활한 것도 이런 이미지 완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가요계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일본 내 K팝 한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외국인 멤버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던 YG엔터테인먼트도 일본인 멤버를 포함시킨 새 그룹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트레저’로 알려진 YG의 7인조 신인 보이그룹에는 일본인 멤버 하루토가 포함됐다.
여기에 ‘매그넘’이란 이름이 붙여진 또 다른 6인조 보이그룹에도 요시노리, 아사히 등 일본인 멤버가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트레저13’이라는 한 팀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할 경우 YG의 첫 한일 다국적 그룹이 되는 셈이다.
반면 3대 기획사 가운데 ‘차이나 드림’에 변함없이 중점을 두고 있는 건 SM엔터테인먼트다. 2006년 보이그룹 슈퍼주니어(한경)를 시작으로 2009년 에프엑스(루나, 빅토리아), 2012년 엑소(타오, 크리스, 루한, 레이), 2016~2019년 NCT(쿤, 윈윈, 샤오쥔, 헨드리, 런쥔, 천러)에 이르기까지 SM은 중국 시장을 지속적으로 겨냥해 중국인 멤버를 주축으로 한 그룹을 제작해 왔다.
현재까지 SM 소속 일본인 멤버는 NCT의 유타가 전부인 상황이다. 트와이스의 성공만으로 일본 자체 프로듀싱에 자신감을 얻은 JYP와는 달리, SM의 경우는 보아나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등 선배들이 이미 충분한 사업 발판을 만들어 놓았으니 섣부른 ‘모험’은 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형기획사가 아니더라도 일본인 멤버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신인 걸그룹의 일본인 멤버는 2010년대 중반과 비교해도 확연히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중반부터 올해 초까지 데뷔한 아이돌 그룹 대부분이 일본인 멤버를 명단에 올렸다. 지난해 8월 데뷔한 n.CH엔터테인먼트의 9인조 걸그룹 네이처에는 하루가, 9월 데뷔한 키위미디어그룹의 7인조 걸그룹 공원소녀에는 미야가 포함됐다. 또 지난달 데뷔한 FNC엔터테인먼트의 10인조 걸그룹 체리블렛은 레미, 메이, 코코로 등 세 명의 일본인 멤버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한일 합작의 프로젝트 걸그룹이긴 하지만 지난해 10월 데뷔한 12인조 걸그룹 아이즈원은 국내 대중들의 일본에 대한 허들을 낮춰주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유명 걸그룹인 AKB사단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동 중인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 혼다 히토미 등 3명의 일본인 멤버가 포함된 아이즈원은 한일 양국에서의 활동이 보장된 신인 아닌 신인 그룹이기도 하다.
FNC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체리블렛. FNC최초의 다국적 그룹이다. 사진=FNC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이어 “대중들 가운데는 아이돌 업계에서 점차 커지고 있는 일본인 멤버의 비중을 놓고 ‘일본이 K팝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니냐’ ‘도리어 일본에 먹히는 게 아니냐’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동남아 시장을 노려 해당 국가 멤버를 한 두 명 포함시켰던 것과 달리, 이미 한국 가수들만으로 K팝 시장이 형성된 일본 진출을 목적으로 일본 멤버들을 굳이 여러명 넣을 필요가 있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3세대 이후 아이돌의 완성형은 ‘현지형 아이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현지 멤버들이 필연적으로 필요하고, 그 비중도 높아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며 “국내 대형 기획사들이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 엔터테인먼트와 합작해 ‘한국인 없는 K팝 그룹’을 만드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다. 결국 가장 이익이 될 시장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