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기간인 지난 4일 오후 6시경, 응급의료계의 영웅이자 버팀목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행정동 2층 자신의 집무실 책상 앞에 앉은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고도의 관상동맥경화에 따른 급성심장사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윤 센터장의 갑작스런 죽음을 믿기 어려운 마음에 부검을 요청했다. 응급의료의 영웅조차 변변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채 홀로 숨을 거둔 현실에 대한 충격과 함께 고인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윤 센터장은 연휴를 하루 앞둔 2월 1일 공식 일과를 마친 뒤에도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각지에서 생기는 돌발 상황을 챙기는 등 재난응급의료 상황실을 점검하는 것이 응급환자가 몰리는 명절엔 통상적인 일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국내 응급의료 인력과 시설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대형 교통사고로 환자가 한 곳에 몰려 의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전국에 응급실 532곳과 권역외상센터 13곳을 관리한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빈소. 고성준 기자
결국 윤 센터장은 설 명절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퇴근을 미룬 채 초과근로를 하다 과로사한 것으로 보인다. 윤 센터장은 평소에도 주중엔 거의 귀가하지 않고 센터장실에 놓인 초라한 간이침대에서 쪽잠 신세를 이어가며 응급의료 업무에 몰두했다고 주변인들은 전했다.
동료 직원들은 “윤 센터장의 야근은 일상다반사로 쪽잠을 취한 간이침대 역시 열악한 상태였지만 동료 의사들에게 오히려 이 같은 처우와 환경을 개선하지 못해 미안한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윤 센터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누구보다 애통해했다. 이 센터장은 “응급의료계에 말도 안 될 정도로 기여해온 영웅이자 버팀목이었다”며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비통한 심정”이라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윤 센터장이야말로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묵묵히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이끌어왔다고 평했다. 이 센터장은 자신의 저서인 ‘골든아워’에도 윤 센터장을 자세히 소개하며 존경과 애틋함을 표하기도 했다.
의료원 경비원은 “평소처럼 야근을 하는 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고 전했다. 병원 직원들이 윤 센터장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월 1일 오후 8시경으로 동료 의사와 저녁을 함께 먹고 각자 업무 위치로 돌아갈 때였다. 윤 센터장의 부인은 윤 센터장이 가족과 함께 설에 귀성하기로 했는데 주말 내내 연락이 닿지 않자 4일 직접 윤 센터장의 집무실을 찾았다가 숨진 그를 발견했다. 윤 센터장은 슬하에 대학생과 고등학생 등 2명의 자녀가 있다.
가족과 주변 의사들도 과로가 걱정은 됐지만 나름 건강관리에 신경 썼던 윤 센터장의 갑작스런 죽음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평소에도 위장약 외엔 별다른 약 복용조차 없었던 터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응급의료 체계의 모순과 대안에 대해 전면에 나섰던 윤 센터장은 최근까지도 응급의료 체계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부 의료계에선 응급의료수가나 응급구조사 등으로 그와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는 환자들의 편에 선 것 자체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응급의학회는 2월 7일 성명을 내고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에 학회 모든 회원은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학회는 윤한덕 회원을 떠나보내고 크나큰 슬픔에 잠겨있을 유족과 생전에 함께했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모든 선생님들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한다”고 발표했다.
여야 정치권의 조문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윤 센터장의 순직을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고인은 정말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명예로운 대한민국의 아들이었다. 진심으로 국민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싶다”며 “설 연휴에도 고인에게는 자신과 가족보다 응급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윤 센터장의 조문은 그의 일터이자 마지막 생사의 장소였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이뤄졌다. 애도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무실 한편에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를 생각하며 그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러하기에 윤 센터장의 뒷모습은 더 씁쓸하다. 심장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시민들에게 친근한 용어인 ‘심쿵이’(심장충격기) 알리기에 나선 그의 사인 역시 심정지였다. 우리 응급의료 현실의 처참한 민낯을 자신의 죽음으로 다시 한 번 보여준 셈이다. 영웅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
고 윤한덕 센터장은...응급환자 전용 ‘닥터헬기’ 도입 주도 1968년생인 고인은 전남대 의대를 졸업했다. 모교에 응급의학과가 생긴 1994년 ‘1호 전공의’로 자원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됐다. 2002년 중앙응급의료센터 창립과 함께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낙후된 응급의료 현실을 직접 겪고 ‘응급의료 체계’ 개선에 몰두하게 된다. 2012년 7월 센터장이 된 그는 이에 대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다. 닥터헬기와 권역외상센터 도입 등 국내 응급의료계에 일어난 주요한 변화 대부분에 항상 윤 센터장이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에는 국내 응급의료의 구멍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지휘체계 통합과 효율적이고 전국 의료기관 협력 체계 개편 등 대응책을 내놓아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의료계의 반발에도 응급구조사에 대한 규제개선을 직접 피력하는가 하면,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부위원회에 출석해 닥터헬기 착륙장 부족에 대한 호소로 눈길을 끌었다. 윤 센터장은 오직 환자를 살리는 데에만 열중했으며, 이에 걸림돌이 된 문제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먼저 나섰다. 동료 의사들은 정부의 응급의료 전담 신설 자체나 각종 지원 등 도움의 손길이 윤 센터장의 작품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서동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