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재판을 두고 나오는 단어들이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안 전 지사가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완전 뒤바뀐 법원의 판단을 두고 이처럼 ‘극과 극’, ‘오락가락’ 판결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는 2월 1일 안 전 지사를 ‘위력에 의한 여비서 성폭행 혐의’ 등으로 징역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안 전 지사 측은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리자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다. 또 같은 쟁점의 성폭행 사건에서도 정반대 판결이 나오자 법조계 안팎에서 재판부의 극과 극 판결로 사회적 갈등이 조장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마저 제기되고 있다.
# 180도 뒤집힌 1심과 2심 판결, 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혐의’ 1심 선고 당시 모습. 일요신문DB.
이번 사건은 안 전 지사 측과 피해자 김지은 씨 측의 진술밖에는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1심에선 안 전 지사 측의 진술이, 2심에선 김 씨 측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졌다. 이 가운데 핵심은 안 전 지사의 위력, 즉 지위나 권세가 행사됐느냐 여부였다. 이를 두고 1심은 ‘피해자다움’을 2심은 ‘성인지 감수성’을 중요한 판단 잣대로 삼았다.
1심 재판부가 안희정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도지사와 수행비서, 상하관계를 이용해 성폭행한 게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 판결 근거 중 하나는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했다는 것, 즉 ‘피해자다움’에 판단 논리가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달랐다. 위력이 존재하는 건 물론이며 위력을 행사했고, 그 결과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위나 권세 같은 무형적 위력뿐 아니라 물리적 힘까지 동원됐다고 봤다. 2심은 “씻고 오라”는 말에 저항이 없었던 건 수행비서로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것이고, 사건 전후 친근감 있게 주고받았다는 이모티콘 등 메시지는 젊은 사람들이 특별한 의미 없이 사용하는 표현일 뿐이라고 봤다. 피해자답지 않아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는 건 정형화되고 편협한 관점이라고 꼬집으며 1심에서 전부 인정되지 않았던 피해자 김 씨의 진술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운전비서 성추행 폭로 건’을 김 씨가 ‘학습된 무기력’ 상태로 안 전 지사의 반복된 성폭력에도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문제제기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인정하는 근거로 삼았다. 또 1심에서 첫 번째 성폭행이 벌어진 2017년 7월 러시아 호텔 사건 뒤 김 씨가 다음날 안 전 지사의 식당을 찾고 저녁에는 와인바에 가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과 7개월이 지나서야 폭로한 점을 든 ‘피해자다움’이란 잣대도 2심에선 뒤집혔다.
실제로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0차례 성폭력 과정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업무상 관계, 피고인과 피해자의 감정과 심리 상태, 개별 사건에 관련된 주변인들의 유무와 경험, 주변 상황 등이 모두 동일하지 않고 점차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각 범행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른바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는 ‘성인지 감수성’을 근거로 삼았다는 설명이다. 1심 판단근거인 ‘피해자다움’이 2심에선 ‘성인지 감수성’으로 바뀌며 판결 자체가 180도로 변한 것이다.
# 같은 재판부 다른 판결
김 씨 측도 2심 판결을 두고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며 피해자 진술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배척하고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위력은 존재하지만 행사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바로 잡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안 전 지사 측은 2심 판결이 오로지 피해자의 진술만 가지고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판단하지 않고 개별적인 사건 하나하나에 대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양측이 첨예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안 전 지사의 재판 판결 논란에 불씨를 붙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안희정 전 지사가 2심 선고 공판 후 구치소 버스 차량에 올라타는 모습. 임준선 기자.
이 사건도 안 전 지사 사건처럼 성폭행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있는지가 쟁점이었는데 A 양은 “이 씨가 원하는 대로 안 하면 다 소문내 버린다고 말하면서 겁을 주고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성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1심은 “A 양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다. 성폭행을 당한 뒤에도 이 씨를 만나 식사를 하고 옷 선물을 받은 점도 이례적”이라며 이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도 “A 양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피해 사실을 생생하게 주장해 성폭행에 대한 상당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A 양이 성폭행 피해 횟수를 번복했고, 수사기관과 1심에서 말하지 않은 내용을 추가로 말하는 등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며 “그런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에게 설령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잇따른 무죄 판단에 검찰은 상고하지 않았고 이 씨는 무죄가 확정됐다. 이 씨는 1심에서 구속된 기간에 대한 형사보상금을 국가에 청구한 상태다.
그러자 1심 판결을 뒤집은 안 전 지사 사건과 이 사건을 비교하며 재판부의 오락가락 판결을 향한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두 사건의 2심을 판결한 재판부가 같기 때문이다. 이미 1심과 2심 재판부의 천양지차인 판결 내용을 두고도 말들이 많았다. 1심은 ‘위력은 있지만 행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안 지사의 혐의 모두를 무죄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10차례의 범행 가운데 강제추행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법조계에서조차 하급심 결정이 뒤집히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진 않지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위력 해석을 두고 재판부의 판단이 극과 극인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적 자기결정권·피해자다움·위력의 존재와 행사 등 주요 쟁점 사안에 대해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정반대로 나타나면서 법리와 객관적인 증거 대신 재판부의 가치관이나 성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안 전 지사의 재판이 자칫 여혐과 남혐 등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성별 갈등으로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안 전 지사의 2심 선고 공판날 모인 여성시민단체들은 안 전 지사의 2심 재판 결과를 두고 안태근 전 검사장, 이윤택 전 감독, 김기덕 감독, 배우 조재현 씨, 고은 시인, 조재범 전 코치 등 앞으로도 계속될 ‘미투’ 재판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여혐을 조장하는 일각에선 미투 운동을 꽃뱀이나 여성들의 면피성 폭로전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피해가 있는 여성이 아닐 경우에 남성들이 대응할 수 있는 법적 환경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 2심의 판단이 정반대로 나온 가운데 안 전 지사의 대법원 판결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