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국정원은 ‘끈끈한’ 관계다. 정확히 공안 수사 라인에서 검찰과 국정원은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국정원이 1차 수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검찰이 기소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런 끈끈한 관계 속에 진행됐던 수사가 검찰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일명 ‘유우성 씨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검찰총장이 사과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데다, 더 나아가서는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의 징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 “국정원 믿는다”며 5년 전 ‘강경했던 검찰’
5년 전인 2014년 4월. 서울중앙지검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 씨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강하게 반발했다. 탈북자 200여 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유우성 씨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윤웅걸 당시 2차장검사는 법원이 유우성 씨 여동생이 한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유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출입기자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당시의 유우성 씨. 임준선 기자
윤웅걸 2차장검사는 몇 달 뒤에는 간첩혐의로 기소된 홍 아무개 씨에 대해 법원이 또 무죄를 선고하자 선고 직후 기자들을 모아 놓고 “법원의 잇따른 무죄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 사건에 대해 증거 여부만 따져 무죄를 선고하고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국정원과 함께 수사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연달아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에 불편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공안 라인 검사들의 불만도 상당했다. 법원이 ‘증거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는 등 수사기관의 맥을 꺾는 판단을 잇따라 내렸다는 것. 사건을 담당한 윤 차장검사도 “이렇게 가다가는 모든 간첩을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민을 얘기했다. 당시 공안 라인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이 아무나 기소를 하지 않는다. 국정원이 준비한 여러 증거 자료들 중 한두 개만 문제 삼아 사실관계를 제대로 다투지 않고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국정원 관계자 역시 “한 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남한) 쪽으로 넘어오는 줄 아냐. 그 가운데 우리가 간첩으로 판단하는 것은 한두 명도 안 된다”며 “확신이 없으면 기소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등 무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 5년이 흐른 지금, 검찰총장 고개 숙일 판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검찰과 국정원이었지만,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검찰총장이 기소 자체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 검찰총장이 유 씨 남매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수사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유우성 증거조작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지난달 28일 심의를 거쳐 나온 권고 사안이다.
지난 5년 동안 국정원의 출입국 기록 증거 조작이 드러나는 등 박근혜 정권 당시 간첩 1호로 지목됐던 유 씨에 대한 부실 수사의 총체적 결과라는 게 이미 드러나 있었다.
과거사위는 유 씨를 조사했던 국정원 직원들이 유 씨의 여동생에게 가혹행위를 해 자백을 받아낸 점, 이 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된 점, 별다른 증거가 없음에도 무리하게 사건을 기소한 점 등을 문제 삼아 검찰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당시 수사·공판기록과 대검찰청 감찰기록, 법무부·국정원 회신 자료 등을 검토한 과거사위는 수사 검사의 책임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과거사위는 수사 검사가 국정원 수사팀과 협의해서 변호인 접견을 차단하고 참고인 신분을 유지토록 하는 등 국정원의 위법한 처분을 용인하거나 협력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 씨 동생 역시 피고인 신분이었는데, 변호인 접견을 차단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사위는 “극히 제한된 사진 정보만을 갖고 수사보고서가 작성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당시 국정원 수사팀이 증거로 제출될 사진 등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고, 수사 검사 또한 이를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을 조작한 것은 국정원이지만, 이에 대한 확인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일요신문 DB
자연스레 검찰 내 책임론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한 검사는 “증거 조작으로 이미 대검 감찰은 물론, 피의자로 수사까지 받았던 사안이지 않냐”며 “관례적으로 국정원에 편의를 봐주면서 수사를 함께 진행한다고 하지만, 공소 유지는 검찰의 권한인데 너무 지나치게 국정원의 편의를 봐 준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사과 등은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이 1차 수사를 주도했고, 국정원이 준 자료를 토대로 보강 수사 및 기소를 한 것인데 자료를 조작한 국정원 대신 검찰이 총대를 메고 책임을 지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기소권이 검찰에 있다고 하지만 홀로 수사할 수 없는 사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나친 권고사항”이라고 반발했다.
# 공공수사부로 간판 바꾸는 공안부
하지만 당시 수사라인이 뒤숭숭한 것은 불가피한 흐름. 이름까지 바꿔달게 되면서 공안 라인은 완전히 붕괴된 모양새다. 실제 검찰은 공안부라는 이름을 46년 만에 바꾸기로 결정했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지난해 말, 공안부의 명칭을 공공수사부로 바꾸기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지만, 대공 영역에 대한 수사가 완전히 ‘죽어버린 것’에 대한 반증이라는 평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정권이 바뀔 때부터 공안 라인 검사들에 대한 살생부가 돌았다”며 “지금 거론되던 검사들은 이미 다 인사로 불이익을 받았거나 옷을 벗고 나갔다. 공안 라인에서 ‘적통’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이제 검찰 내에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평가했다.
한때 특수통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공안통 검사는 피해야 할 인사 루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전에는 ‘공안 검사’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이제는 공안 수사 라인 경력을 언급해도 “나는 공안 검사가 아니다. 기획 경력이 더 많다”고 얘기하며 말을 아끼는 검사들이 상당수다. 이미 능력 있는 검사들은 특수 수사 쪽으로 라인을 바꿔 탄 지 오래다.
공안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정권에 따라 공안 라인이 다소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보다 더 심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통해 공안 검사들이 10년 정도 맥을 이어왔다면 지금은 북한과 관련된 대공 수사 영역은 진행되는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