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영화 촬영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흥행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따르기도 했다. 감독의 입장으로서는 “어려운 질문이고 드러내기엔 예민한 지점이 있다”면서도 “그래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배우들의 명연기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라며 출연진에게 공을 돌렸다.
휴먼 감동 코드가 없는 ‘정통 코미디 장르’로 ‘극한직업’의 기록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이른바 ‘이병헌 식 코미디 감수성’으로 이름 붙여진 이 영화의 분위기에 대해 이 감독은 “저는 진부한 것을 한 번 더 비틀어 재사용하는 것을 즐긴다. 클리셰를 깨고 웃음을 유발하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 오는 쾌감이 크기 때문”이라며 “감동 코드를 섞지 않은 건 싫어해서가 아니라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라고 덧붙였다.
코미디 영화의 매력에 대해서는 “당연히 웃음이다. 웃음은 행복을 유발한다. 코미디는 그런 면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미디 장르 한 우물만을 팔 것이냐는 질문에는 “사실 정통 코미디는 처음 한다고 생각했다. 이전 작품들은 웃음보다 감정을 따라가는 게 더 중요한 작품이었고, ‘극한직업’은 상황을 따라가는 코미디로 웃음 자체가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어떤 이야기인가, 필요한 이야기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이것이 우선인 것 같다. 그 이야기에 코미디가 어울리지 않는다면 굳이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극한직업’의 성공으로 “이병헌 식 코미디는 말맛이다”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이병헌 표라는 말에 대해 아직 좀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말맛이 주요하단 평가는 고맙게 생각한다”라며 “시각적인 표현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진 평범한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런 영화를 해왔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했고, 수없이 수정하며 만든 대사들인지라 (이런 평가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감독이 꼽은 영화 제작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은 “캐스팅이 완료된 시점”이라고 했다. 류승룡의 캐스팅으로는 안정감이, 신하균과 오정세로는 자신감이, 다른 캐스팅까지 모두 완료되고 나서는 신뢰감이 샘솟았다는 것.
반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역시 첫 시퀀스의 추격씬과 차량 추돌씬이었다. 이 감독은 “기상 관측이래 111년 만의 폭염 아래 4일간 촬영했다. 여건상 피해갈 수 없는 날짜였기 때문”이라며 “살인적인 폭염에 충분한 휴식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제한적인 상황에서 정확한 계산 아래 꼭 필요한 커트만, 최소한의 테이크로 찍어야 했다. 힘들어하는 배우 스탭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집중해서 철저히 계산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다”고 당시의 일을 회상하기도 했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대신 가장 애정이 가는 씬도 이 두 씬이었다. 이 감독은 “다른 영화인이 보면 엉성하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르는 그 장면이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할 수 없는 걸 스탭, 배우들이 그렇게라도 해낸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감독은 현재 드라마 ‘멜로가 체질’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촬영에 돌입하는 이 드라마는 올 하반기 편성이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0대 여자 친구들의 일과 연애담을 소소한 수다로 녹여내는 작품”이라며 “이후의 차기작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고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 그에게는 각각의 작업이 가진 매력이 가장 큰 힘이 됐다. 이 감독은 “여름에 겨울이 그립고 겨울에 여름이 그립듯 현장에 있으면 책상이 그립고 책상에 있으면 현장이 그립다”라며 “연출가를 그리워하게 해주는 작가, 작가를 그리워하게 해주는 연출가. 그게 매력인 거 같다”고 말했다.
다시 ‘극한직업’으로 돌아가서, 흥행 기록을 이어가는 ‘극한직업’을 놓고 2탄을 기대하는 대중들도 많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저도 궁금하다. 저는 아직 아이디어가 없고 사실 투자사, 제작사와도 깊게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그는 “배세영 작가가 초고를 써 준다면 해보겠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밝혔다. 그는 “극한직업 가족 시사회 때 온 가족이 다 함께 봤다. 영화를 10년이 넘게 했고, 네 번째 장편인데 관람 후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처음봤다”라며 “그들이 꾸준히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