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정태영 부회장 페이스북
이러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카드 수수료체계 개편 등 업황 악화와 3사 실적의 버팀목인 현대차와 기아차마저 부진에 빠지면서 3사의 실적이 악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은 지난해 3분기까지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30%, 75.5%나 감소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80%에 달하는 현대캐피탈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 부회장은 도마 위에 오른 경영능력을 인력 구조조정으로 타개하려 한다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앞서 그는 현대라이프생명(현 푸본현대생명) 이사회 의장을 맡아 경영 전반을 이끌었지만 만성 적자 끝에 점포 폐쇄, 설계사 감축, 내근직 대규모 감축을 단행하다 지난해 12월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여기에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현대카드 등 3사의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이 현대카드 등 3사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 배경에는 지난해 상반기 컨설팅을 의뢰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400명 감원’ 제안이 자리하고 있다. BCG는 현대카드 200명, 현대캐피탈과 현대커머셜 각 100명을 감원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BCG가 제시한 감원 대상은 정규직이다.
지난해 3월 말과 9월 말 기준 3개사 전체 직원 수를 비교해 보니 367명(정규직 126명, 비정규직 241명)이나 줄었다. 현대카드는 3월 말 2444명에서 9월 말 2277명으로 109명(정규직 90명, 비정규직 109명)이 감소했다. 현대캐피탈은 2764명에서 2651명으로 113명(정규직 16명, 비정규직 97명)이 줄었다. 현대커머셜은 682명에서 627명으로 55명(정규직 20명, 비정규직 35명)이 감소했다. 3사 평균 감소폭은 6%대다.
3사는 비정규직 감축을 위해 계약 만료된 비정규직에 대해 신규 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을 동원했다. 정규직은 3분기까지 감소폭이 120명대에 그쳐 BCG의 감축안에 못 미치자 3사는 11월 설립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컨설팅 결과일 뿐 강제로 이행해야 하는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인력감축 필요성은 있었다”며 “2015년부터 창업지원프로그램인 ‘CEO플랜’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개별 창업만을 지원하던 기존 프로그램에 프리미엄 독서실과 까페 등 프랜차이즈 창업을 포함시켰고, 이를 퇴직 대상자들에게 제안해 퇴직을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현대카드·캐피탈 본사. 사진=고성준 기자
지난해 3사의 정확한 감원 규모는 오는 4월 중순 사업보고서 공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카드의 경우 정 부회장이 ‘빅데이터’ 분야 강화 방침에 따라 IT관련 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고 있어 이를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정 부회장의 경영능력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는 생명보험의 특성을 간과한 안일한 접근으로 현대라이프생명을 만성적자에 시달리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2012년 현대라이프생명을 출범할 당시 “2년 내 흑자에 성공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쉬운 보험’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마트’에서 파는 보험상품을 판매했지만 저가 상품을 팔다보니 낮은 수수료로 설계사 이탈이 발생했고 불완전 판매로 인한 해약도 늘어났다.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퇴직연금 자산관리보험(DC·DB)’과 ‘개인연금보험’ 등을 안정적으로 지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
현대라이프생명 문제가 한창 구설에 오르던 2016년 9월, 정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요즘은 때로 은퇴 후의 생활을 설계하면서 너무 신남. 은퇴하면 현카(현대카드)가 (법인)카드 한도를 줄이려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에게서 ‘은퇴’라는 단어가 나오자 당시 정몽구 회장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이에 현대카드 관계자는 “누구나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거 아니냐”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결국 지난해 대만 푸본생명이 현대라이프생명 지분 62.45%를 보유하면서 사명을 푸본현대생명으로 변경했고, 사실상 현대차그룹에서 계열 분리 수순에 들어갔다. 정 부회장도 이 회사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